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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따라서..../단상 또는 일상

Noblesse Oblige의 실천과 어느 신도의 흥미로운 글

헬로우 럭키 찬! 2012. 7. 20.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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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650억의 교회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선언한 분당우리교회 이찬수 목사. 그는 내실 없이 외향적으로 비대해져만 가는 교회의 대형화를 우려하며 약한 교회 및 사회를 위해 양심에 따른 과단성을 보여 줬다.

미욱한 신도들을 부추겨 축적한 헌금으로 세운 바벨탑을 마치 개인 소유인양 3대 세습 까지도 불사하는 대형교회 목사들의 후안무치한 행태와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일대 사건이라 할 수 있겠다. 오늘날 초대형 건축물과 해외 선교 사업단의 크기로 자신의 능력과 권위를 과시하는 교만의 대마왕들은 이찬수 목사의 이 같은 선각자적 돌발 행위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골고다에서 피땀 범벅으로 기도했다는 예수의 절박한 심정도, 막장을 향해 달리고 있는 현 교계에 경종을 울리고자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그의 고뇌를 넘어 서지는 못 할 것 같다. 이미 개인사업체로 변질되어버린 교회와 사주(목사)를 여전히 신으로 받들고 있는 신도들을 보면서 장차 그들의 목적대로 모든 사람들이 교화된다면 이 곳이 바로 지옥이 되지 않을까 싶다.  북한의 공산체제와 다를 바 없는 1인 독재. 그것이 신을 빙자하여 인간을 도구로 사용하며 권력을 휘두르는 많은 목사들의 실체이기 때문이다. 천국은 목사가 손가락으로 가르키는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바로 이 곳, 현재 내가 딛고 있는 이 땅에 실현되어야 함이 옳다.  삶과 죽음의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 하는 인간들의 약점을 능숙하게 끄집어 내 멋지게 요리까지 할 줄 아는 그들의 언변에 사람들은 너무 쉽게 마음을 허락하는 것 같다. 

그래서...‘시키면 무조건 한다.’

이거, ‘약간 위험한 방송’의 대신맨 이야기가 아니다.  목적에 맞게 성경을 해석하여 인간의 삶을 좌지우지하는 목사의 말에 맹목 상태로 정신줄 놓고 따라가는 좀비가 되지 말라는 말이다. 꼭 교회가 필요한가? 반드시 대형교회로 키워야 믿음도 커지나? 그런 것을 강조하고 자신과 가족은 호의호식하며 어리숙한 선교사들 사지로 몰아넣는 목사의 설교에 진심으로 감동하는가?

선교라니......

중세는 차치하고라도 근현대 세계사를 조금이라도 들춰 본 사람이면 한 번쯤 의문을 가질만도 할 터. 무엇이 교인들을 그토록 유대의 '야훼'에 열광하게 만드는 것일까...참으로 불가사의한 일이라 생각하는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더라..

아! 그렇다고 구교의 영향을 받은 많은 예술 작품들까지 폄하하려는 건 절대 아니다. 할 수 없쟎나. 예술은 시대의 반영이라......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버린다면....

암튼, 썩을대로 썩어버린 한국교회의 양심적 부활을 위해 스스로 십자가를 지고 사심없는 결단을 내려준 이찬수 목사님께 종교를 떠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하며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한국 교단이 진정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 한 걸음이 Noblesse Oblige의 상징으로 한국 기독교에 길이 남기를.....

 

다음은 인터넷에 돌고 있는 한 때 신도 출신(^^;;)이었다는 분의 글을 퍼 왔다.

꽤 흥미로운 부분도 있더라는...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등 얼핏 눈에  띄는 몇 곳 손 본 것 외에 원문 그대로다.

 

* 21C 대형교회들 타락과 폐기처분 될....

지금은 2011년, 인류문명이 태동된 이래 얼마나 시간이 지나온 것일까?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디아, 황하문명 등은 기원전 5,000년 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생각하면 엄청난 시간이 지나왔다. 어찌 보면 문명 발전 속도는 그리 빠르지 않았다. 1900년대를 기점으로 급격히 문명이 발전되었다. 수 천 년 기간 동안의 변화 발전보다 100년 간의 변화와 발전이 눈부시다.

교회 이야기로 말들이 많다. 교회! 교회는 역사를 담고 있다. 헬레니즘과 히브리즘이 교회의 기초정신이다. 서양 정신세계가 21C 까지 이어져 온 것이다. 장구한 역사다. 대단하다. 인류문명의 변화와 발전에도 불구하고, 수 천 년 전의 정신세계는 이 시대까지 함께 공존하는 것이다. 놀라운 일이다. 인류 조상의 DNA를 유전적으로 이어 받아서일까? 우리에게는 아직도 "신에 대한 갈망"이라는 원초적 본능이 내재한다.

한국의 천주교, 기독교 신도가 1,000만을 훌쩍 넘는다. 정확한 통계는 아니다. 통계상 중복되게 집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쨌건 웬만한 국민이라면, 설사 지금은 불교신자라 해도 교회를 한번쯤 다녀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정도로 천주교, 교회에 교적을 올려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어쨌든, 국민 대부분이 교회에 대해 알고, 다녀보기도 한 것이 한국의 실상이다.

교회는 정신세계를 대표한다. 나약한 인간의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기도 하고, "원초적 고독"에 대해 갈급함을 채워주기도 한다. 긍정적인 요인이다. 해방 후 교회가 급격히 늘어났던 것은 어려운 시대상황에서,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교회가 위안을 많이 주었던 것일 것이다. 결코 이 사회에 교회가 나쁘다고만 할 수 없는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지금도 물질적, 정신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교회가 부르짖는 "사랑"은 큰 힘이 되리라 본다.

하지만, 최근 교회는 본연의 역할에서 너무도 크게 탈선을 하고 말았다. 대형교회들의 성장과 발전을 보면 외견상 대단하다. 하나님의 은총으로, 또 크신 뜻으로 대형교회가 되었다고 변명할지 모른다. 어찌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거대한 성전과 엄청난 신도를 가진 맘모스 대형교회가 되었을까? 신은 존재하며 은총을 베푸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지 모른다. 외견상 보면 웅장하고, 신성해 보이는 성전들을 보면 신의 위대함과 권능을 나타내는 듯하다.

그간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것이 있었다. 이런 대형교회들의 목사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신과 교통하는 신성의 권능을 부여 받은 사람들일까? 이들은 정녕 하나님을 보았고, 보지 못했다면 신이 존재하며 자신들과 함께함을 의심없이 느끼기는 하는 것일까? 내 결론은 아닌 것 같다. 신을 보지도 듣지도, 느끼지도 않고 있는 것이 대형교회 목사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들에게는 절대 가치인 "사랑"을 찾을 수 없다.

몇 년 전에 우연히 사회복지에 대해 조사하다가, 한국 제일의 대형교회가 초라하리만큼 형식적인 사회봉사 활동 및 자금지원을 한 것에 대해 경악을 했었다. 원장이 ‘ㅈ’ 당회장으로 되어 있는데, 요양원의 수용 인원이 고작 수 십 명? 그런 시설 운영을 하지나 말지, 그 많은 돈을 다 어디다 쓰고 있는 것이야? 이 교회를 본인도 십 수 년간 열정적이진 않아도 매주 갖다 바친 돈은 1만원~2만원? 52주 X 10년이면 천 만원 가까이 되려나?

생각해 보면, 내가 뭔가에 홀려서 중독되었다는 생각, 나처럼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중독되어 있다는 생각, "사랑"이라는 말에 고독에 사랑이 갈급해서 무지개를 쫒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런 순수한 마음들이 모여 대형교회가 되었다. 하지만, 사랑은 거기에 없었고, 목사들은 순수함을 돈과 권력으로 바꿔 챙긴다. 원래 교리 자체가 허상인데, 그 허상에 더해, 마치 자신들이 신 인양 잘못된 진리에 덕지 덕지 거짓으로 덧칠을 하기 일쑤이다.

말도 안 되는 성경 해석, 코에 걸면 코걸이식인 자의적 해석들.....한심한 건 자신들의 영혼을 타락시키는 이들을 신을 보듯 하는 멍청한 신도들, 헌금 받은 돈을 가지고 싸움질 하는 장로들.....다들 이미 아는 일이고, 말이 길어지니 그만하자.

어찌 보면 교회는 그간 존재의 이유와 가치가 있었으나, 퇴락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도 줄곧 교회가 번성(?)할까? 아닐 것이다. 니체처럼 "신은 죽었다"라고는 말 못하겠지만, 적어도 신은 이제 그 영향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임계점에 다다른 교회의 타락상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실제로 기독교 신도는 정점이었던 1,000만 명이 최근 700만으로 줄었단다. 머지않아 500만, 400만, 300만으로 급격히 줄어들 것이다. 저주를 퍼붓는 것은 결코 아니다.

사람들이 이제 세상을 이루는 본질에 대해 자각을 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한 인류 문명 얘기로 돌아가 보자. 문명의 여명기에도 사람들은 지금과 같이 자신과 인간, 그리고 세상의 본질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많은 가설이 세워진 것이 대표적인 그리스 문명 아닌가? 세상이 무엇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근원은 무엇인가’에 대한 가설은 대표적인 것이 地水火風으로 불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4원소론이다. 이것이 곧 철학의 시발이 되었다.

하지만, 철학은 가설에 불과했고, 이를 증명할 방도가 없었다. 증명할 수 없는 가설은 가설에 불과했다. 모든 학문은 說을 시작으로 증명하고 결국은 현실에 적용해야 한다. 그래야 흥미롭고 흡족하다. 증명할 길이 없던 당시의 사람들은 소피스트들의 논쟁이 현실과 말장난일 뿐이라 여긴다. 가설과 논쟁은 식자들의 유희에 불과했다고 여기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현실에 적용할 뭔가가 필요했다. 문명이 시작되고, 원시인류에서 문명화된 사회를 이루긴 했어도, 여전히 많은 삶이란 척박했다. 예기치 못한 자연재해, 질병, 전쟁 등 고통은 항시 곁에 있었던 시대였기에, 말장난보다는 비록 비현실적이지만, 현실처럼 받아들일 진리 아닌 진리가 필요했다.

어려울 때 고통스러울 때 말장난이 아닌, 힘이 될 무언가가 필요했고, 그리하여 신이 창조 되었다. 히브리즘은 고통과 함께한다. 신은 고통 때문에 존재한다. 인류는 신을 수 천 년 전에 창조했고, 수 천 년 동안 사용하여 왔다.

그럼 앞으로도 신이 여전히 존재할까?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부 사람들에만 국한 되지 않을까? 신의 영향력은 퇴락해감을 느낀다. 이건 분명히 문명이 가게 될 트렌드다. 왜일까? 그토록 오래도록 DNA에 각인된 "신"이 어떻게 지워질 수 있을까? 의문이 많이 들 것이다.

그건 의식에 있다. 그리고 수 천 년 전에 종교로 대체되었던 철학이 과학과 조우하며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수 천 년 전에 말장난으로 치부되며, 종교로 대체 되었던 과학과 평행선을 달리던 철학은, 과학철학이라는 신조어로 살아나게 되었다. 철학과학이기도 하다. 인류는 이제 신을 버릴 가장자리에 서 있다. 한국교회의 타락상은 가장자리를 훌쩍 넘어 새로운 세계로의 갈망을 견인한다.

알은 깨어져야 한다. 악하던 선하던 새로운 세계 아프락사스의 세계는 열리고 있다. 많은 의식들은 이제 깨어나게 되며 , 자신들이 만든 신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고 있다. 물질과 정신을 구분했던 이분법적 정신세계는 하나로 통합되며, 인디비쥬얼로 나뉘었던 정신세계는 하나로 통합된다. 적어도 미시세계에서는 우리는 하나란 말이 설득력이 있다. 현실에 반영되지 않은 생소함이 있을 뿐, 하나라는 것은 가설 아닌 정설이다.

싸움질은 ‘하나’라는 진리를 망각한 탓이다. 하나임을 알게 되는 것은 싸움이 멈추는 것이다. 이쯤 되면 과거의 선민을 가려 받던 신은 사라지는 것이다. 편 가르고, 쌈박질을 부추긴 것이 신인 것이다. 극악한 종교전쟁을 부추긴 건 사랑을 표방한 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사랑 때문에 인류는 총칼로 서로를 죽였다.

그런 신은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 어쩌면 우린 새로운 세계에 새로운 신을 찾는 여정에 들어섰는지 모른다. 하지만, 새로운 신이란 바로 자신임을 자각하게 되며, 자신은 또 타인이며, 모두가 하나이며, 그 하나가 신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새로운 세계인 것이다.

대형교회의 타락상이 공개되는 것을 보면서, 신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인가? 세상은 또 무엇인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보게 된다. 확실한 신념은 기존 종교는 머지않아 사라져간다는 생각이 든다. 과연 이런 생각이 나만의 상상일 뿐일까?

 

* 첨언

신은 인간이 창조했지만,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존재하지 않는 신을 떠받드는 것처럼 어리석은 것은 없습니다. 어리석음 때문에 대형교회는 유지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이 교회를 만들어내고, 목사들은 이들 위에 군림합니다. 종교! 신앙! 신! 믿음! 무조건 믿으라면 믿어야 할까요? 비판없이 맹신만을 강요하는 교회는 인류문명에서 사라질 시점입니다. 21c 과학과 철학은 다행히 모호했던 "신의 영역"을 찾아내 버렸습니다. 그리고 신을 확실히 저편 너머로 밀어내 버리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그 답을 이미 찾아냈는데, 아직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답을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