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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계 여성들의 지위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ㅠㅠ;;

헬로우 럭키 찬! 2013. 7. 5.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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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제목 : 비구니, 여성 목사 '우리도 평등해 지고 싶다.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130705032904778

 

♣ 위 기사를 읽다가 이어진 나의 생각 하나.

 

"본래 종교의 규율을 깨뜨려서는 안 된다"

 vs “시대 상황에 대한 고려 없이 율장의 '자구'에 집착한다면 평등과 화합이라는 불교 정신의 본뜻을 잃게 될 것" 이라는......

 

본래의 종교 규율.....

남녀 차별이 극심했던 2600년 전의 붓다도 여성의 출가와 집단 수행을 과감하게 허용했는데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바야흐로 확대되고 있는 오늘날엔 안 된답니다. 붓다를 흠모하여 출가한 승려들이 나서서 할 말은 아닐 것 같습니다.

 

‘여자는 교회 안에서 잠잠하라’는 2천 년 전 신약이 기어코 지켜져야 한다면 (그들의 방점인) 구원인들 공평할까 싶은 구절입니다. 자신의 딸을 사회적 약자로 방치해 둔 채 성경책 끼고 열심히 기도만 하고 있으면 신이 알아서 진보적인 세상으로 인도해 주나요.

빗나간 믿음이 삶을 더 복잡하고 고달프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이런 생각도 맹신의 범위에 들지 않는 사람이라야 가능하겠지요만.)

 

단언컨대 오늘날의 종교 이론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의 정점을 찍어버렸습니다.

 

인구에 회자되는 많은 구도자들의 일화를 보면 항상 수행이 먼저였습니다.

수행이 부족한 인간이 교단의 권력을 쥐게 되면 신으로 군림합니다. 종교는 인간이 인간을 가장 쉽게 통제할 수 있는 절대적인 힘이지요. 많은 종교지도자들이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생각이 얕은 자는 원래의 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탐욕스런 종교지도자를 우러르며 복종합니다. 대한민국의 대형 교회는 유독 별난 신심을 가진 그런 신도들이 만들어 낸 결과물입니다.

생각만으로도 공포스러운 중세는 이러한 권력이 지배하는 세상이었습니다.

  

  

원글에서 김은혜 교수의 "교회부터 수직적 위계구조와 가부장적 문화를 극복하고 성차별을 없애야 한다"는 진일보적인 지적도 뿌리 깊은 남성 위주의 교계를 변화시기엔 요원해 보입니다.

여자가 없으면 교단도 존립하기 힘든 오늘의 현실 일진대, 그들의 목소리를 싹뚝 잘라 먹은 종교에서 진정한 개인의 평화가 존재하기는 할까요? 그러고 보면 현재 교회에 여신도가 넘쳐나는 현상의 이면에는 목사들의 교묘한 설교도 한 몫 했다는 결론에 근접합니다.

'남자가 아닌 넌 입 닫고 살아야 한다.'는 선언과 함께 교계에서조차 지우고 싶은 많은 구약의 행적들을 충실히 전달하고 있는데도 (여)신도가 많다면 말입니다. 굳이 유대 신화를 믿어야 하겠다면 경전을 제대로 읽고 종교지도자들의 편리에 의한 주관적 해석이 아닌 오로지 자신의 의지만으로 숙고 할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유대인 조차도 '창조 신화는 광활한 사막을 전전하던 선조들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 낸 동화 같은 이야기인데 그것을 왜 남의 나라 사람들이 멋대로 왜곡 해석하여 자신들의 편리에 이용하는지 모르겠다.'고 비웃더군요.

 

암튼, 불교를 종교라기 보다 수행의 일환으로 보는 나로서는 대부분의 종교의 근원이야말로 샤머니즘이라는 생각이 조금 많습니다. 신 앞에 개인적인 소원을 이루어 달라고 조르기 보다 만물이 존재함으로써 자신의 삶이 가능함에 감사한다는 의미입니다. 평일 대낮에, 일용할 양식 걱정 없는 많은 여자분들이 전도, 또는 신자들끼리의 교제를 명목으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것을 보면서, 조용한 시간, 홀로 가부좌 틀고 앉아 자신의 밑바닥으로 내려 가 보는 것이 훨씬 더 깊은 영적 경험을 할 수 있지 않을까 .... 생각해 봅니다.

  

사진 출처  blog.daum.net/jchson1  

 

오늘날 여성의 지위 변화에 따른 사회적 갈등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내재되어 있던 여성 종교인의 불만이 표면화된 이 사태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실체를 깨닫는 순간 마음이 더 불편해지는 것이 종교가 아닐까 싶습니다.

 

......  

기독교에서의 봉사는 선교나 교회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동기이고, 일반인은 단지 '선한 동기'에서 봉사한다. -『종교전쟁』의 공저자 장대익 교수의 말씀....흐-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