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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5.16 처녀보살의 한풀이?

헬로우 럭키 찬! 2012. 9. 1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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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현재 인터넷을 달구고 있는 ‘인혁당’, ‘민청학련’사건을 되돌려 보자면

 

* 인혁당 사건 : 첨부한 문서(상당히 잘 정돈된 내용이었다.)

 

박정희정권의 세계 최악의 사법살인 인혁당 사건.hwp

 

이토록 절절한, 다시 되돌아 보아도 숨길이 끊어질 것 같은 이 역사적 사건을 박근혜는 어찌 그렇게 담담하게 말 할 수 있는지...이 사람, 꼭 자기 아부지 닮았구나...언제든 같은 상황이 오면 ‘배운 게 도적질’이라고 똑 같이 할 수 있을 위인이구나....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아니면 여전히 박정희의 그림자를 놓지 못 하는 인간들에게 사로잡혀 싫든 좋든 그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꼭두각시 일 수도.... 외유가 잦을수록 점점 더 그녀의 무지가 드러나는 것 같다.

 

* 민청학련 사건

1974년 4월 유신정권의 긴급조치에 의해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약칭 민청학련)을 중심으로 180명이 구속·기소된 사건. 1973년 8월 일본 도쿄[東京(동경)]에서 일어났던 김대중(金大中) 피랍귀국사건으로 크게 자극을 받은 반유신체제의 국내여론과 더불어, 10월 서울대 문리대생의 유신반대데모를 기점으로 하여 전국적으로 반독재·반체제운동이 파급·확산되었다.

 

'5.16 처녀보살의 한풀이'라는 제목으로 올라 온 그림

최근, 박근혜 후보의 ‘인혁당 발언’에 의식있는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 아니, 어이없어 하고 있다. 온실 유리창을 통해 본 ‘역사 속 사건들’에 대한 발언이 어찌나 해맑으신지....(?이 시점에 왜 영화 '피에타'가 떠 오를까?)

오체투지로 이마 껍데기가 벗겨지도록 아비와 그 일당들의 죄악에 대해 용서를 구하며 바닥을 기어도 모자랄 판에 오히려 비호성 발언이라니....

구시대 몰표를 의식해서? 진짜 역사의식의 결여?(그것도 정도正道의 치세가 필수인 대권 주자가...))

속속 올라오고 있는 공분의 목소리를 몇 개 모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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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의 역사인식이 논란이 되고 있다. 5.16쿠데타를 “불가피한 최선의 선택”이라고 말하고, 유신독재에 대해서는 “역사의 판단에 맡길 문제”라고 주장한다.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도 ‘역사적 판단’ 운운하며 사법체계를 무시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을 키웠다.

박근혜 인혁당 발언, 생각해보면 섬뜩하다

최근 박근혜는 1964년 인혁당 사건과 1974년 ‘인혁당 재건위 민청학련 사건’을 혼동하고, 1974년 인혁당 사건에 대한 2007년 대법원 재심 판결까지 부정하는 발언을 했다. 지난 10일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인혁당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 여부를 묻는 질문 받자 이렇게 대답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서도 앞으로의 판단에 맡겨야 되지 않겠는가....”

<중략>

보수층과 새누리당의 ‘뿌리’는 박정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정희 향수’에서 비롯된 ‘박정희 효과’가 새누리당의 지지율에 그대로 반영된다. 새누리당 지지층의 90%가 가장 훌륭한 대통령으로 박정희를 꼽는다. 민주통합당 지지자 중에서도 박정희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역대 대통령 업적 평가에서도 민주통합당 지지자 중 절반 정도가 박정희를 1순위에 올릴 정도다.

먼저 박근혜의 지지율과 박정희 호감도와의 상관관계를 살펴보겠다. 여론조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박근혜 지지율은 대략 45% 정도다. 이 수치는 응답자를 토대로 파악된 것일 뿐, 무응답자까지 포함된 건 아니다. 무당파가 제외된 상태에서 나온 수치다.

희한한 지지율 일치, 박근혜 33.8%, 새누리 35%, 박정희 34%

박근혜 지지율 45%를 실제지지율로 보정하려면 무당파 비율을 감안해야 한다. 각종 여론조사 기관의 발표에 의하면 무당파 비율은 전체 유권자의 25% 정도다. 그렇다면 박근혜의 실제 지지율은 ‘75%(유당파) X 0.45’가 된다. 즉 33.8%가 실제 지지율인 셈이다.

박정희 지지율은 어느 정도일까? 여러 자료가 있지만 그중 2010년 시사IN이 발표한 게 가장 합리적이라고 판단돼 그 자료을 인용하겠다. 박정희 지지율은 35% 정도로 나타난다. 꾸준히 하락세를 보이면서도 그런대로 강고하다. 노무현 지지율(25%)과 김대중 지지율(18%)을 상회한다.

여기에서 몇 가지 수치가 거의 일치한다는 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새누리당 지지율과 박정희 지지율, 그리고 박근혜 지지율이 비슷하게 나타난다. 새누리당 지지율(전체 유권자의 35%)은 박정희 지지율과 일치하고, 박근혜 지지율과도 일치한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지지기반이 박정희라는 게 입증된 셈이다.

 

5.16과 유신 긍정할 경우 부정할 경우, 그 득실은?

이래서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박정희를 떠나지 못하는 거다. 박정희를 붙들고 있어야 35% 정도의 지지율이 확보되니, 지탄을 받고 손가락질을 받아도 어쩔 수 없이 5.16과 유신까지 감싸고 돌 수밖에 없는 거다.

5.16과 유신은 박정희의 ‘랜드마크’다. 이를 긍정하는 경우와 부정하는 경우를 상정해 놓고 박근혜 입장에서 각각의 득실을 따져보겠다.

긍정할 경우 지지율 35%가 확보된다. 또 아버지를 잘 감싸고 숭상하는 효자라는 덤도 챙길 수 있어 35%라는 지지기반을 견고하게 다질 수 있다는 득이 있다. 반면 중도진보층으로 지지세를 확대시킬 기회를 놓치게 된다는 실도 생각해 봐야 한다. 하지만 실로 인해 잃을 건 거의 없어 보인다. 어차피 그에 대한 지지가 매우 낮은 층이기 때문이다.

이러니 변함없이 5.16과 유신 두둔할 수밖에

박근혜가 5.16과 유신에 대해 부정적으로 돌아선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불 보듯 뻔하다. 얻는 건 거의 없고 잃을 건 엄청날 것이다. 보수층 지지(35%)를 송두리째 잃게 되는 참상이 벌어질 수 있다. 대신 얻는 건 고작 진보진영의 비난과 공격에서 벗어난다는 것뿐이다. 아버지 시절을 부정하고 나온다 해도 그것으로 진보지지자의 표심을 얻는 건 불가능해 보인다. ‘유신의 딸’이라는 이미지가 워낙 강고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변함없이 “5.16은 바른 판단”이었으며, “오늘의 한국을 있게 만든 초석”이라고 주장하는 거다. 또 유신에 대해서는 역사를 방패막이로 삼는 거다. 논란이 되면 “국민의 삶을 챙길 일도 많은데 계속 역사 논쟁을 해야 하느냐”며 빠져나가는 거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5.16과 유신 논란에서 벗어나려면 5.16과 유신을 ‘긍정적인 역사’로 안착시키는 방법밖에 없다. 때문에 교과서를 개정하려 하고, 박정희를 미화하는 데 그토록 공을 들이는 거다.

[서프라이즈] 무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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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종·여정남·김용원·이수병·하재완·서도원·송상진·우홍선 등 8명은 인민혁명당 재건위 사건으로 지난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를 받고 18시간 만인 이튿날 형장의 이슬이 됐다. 2007년 1월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3부는 죽은 이들에게 전원 무죄 판결을 내렸다. 검찰은 항소를 포기해, 1주일 후 무죄는 확정됐다. 1974년 4월 도예종 등 피해자들이 영장 없이 체포된 후 33년 만에 형사 소송 절차가 완료된 것이다.

 

이같은 사실과 관련해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는 10일 MBC 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그 부분에 대해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느냐"라고 언급했다. 박 후보는 이어 "그 부분에 대해서도 앞으로의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할 것"이라고도 말했다.

 

박 후보의 인식 체계에 따르면 한 번은 유죄, 한 번은 무죄다. '사법 살인'으로 사망한 8명을 포함해 25명 이상이 피해를 입은 인혁당 사건과 관련해 공존하는 "두 가지" 판결 내용이다. 대한민국 사법부의 74년도 판결과 2007년도 대법원 판결을 동시에 인정하고 있는 셈이 된다. 모순 화법이다.

<중략>

그러나 인혁당 사건 등 민주화 운동 관련 전문가들과 법조계 인사들은 박 후보의 발언에 대해 첫째, "2007년 법원의 최종심을 인정하지 않는 듯한 태도"라고 지적한다. 대법원이 현행 형사소송법상 절차에 따라 2005년 재심 결정을 내렸고, 서울중앙지법이 33년 전 판결을 뒤집은 것까지가 '인혁당 사건'의 최종 결론이다. 즉 박 후보가 언급한 대법원 판결 중 과거 판결은 대한민국 사법 체계상 무효가 된 상황인 것이다.

 

두 번째, 인혁당 사건 판결은 기본적으로 '위헌'이라는 인식이 박 후보에게는 부재한 상황이라는 지적이다. 인혁당 사건 피해자에게 적용된 혐의는 긴급조치 1호, 4호 위반이다. 긴급조치 1호, 4호는 유신헌법 53조에 근거한다. 유신헌법 제53조 제1항에는 "대통령은 천재지변 또는 중대한 재정경제상의 위기에 처하거나 국가의 안전보장과 관련해 신속한 조치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때에는 내정·외교·국방·경제·재정·사법 등 국정전반에 걸쳐 필요한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고 돼 있고, 제2 항에는 이를 위해 "헌법에 규정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잠정적으로 정지하는 긴급조치를 할 수 있고 정부나 법원의 권한에 관하여 긴급조치를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그러나 이같은 유신헌법 53조와, 긴급조치는 대법원, 헌법재판소 등에 의해 수차례 위헌이라는 판단을 받았다. 결국 박 후보는 위헌에 근거한 74년 대법원 판결을 현재 인정하고 있는 셈이 된다.

 

4.9통일평화재단 이창훈 사료실장은 "박근혜 후보의 말을 들어보면 사법체계에 대한 이해가 있는지 의심이 가는 수준"이라고 비판했다. 이 실장은 "지금 진행중인 과거사 관련 재심 사건이 무수히 많은 상황에서, 이들이 무죄를 선고받더라도, 박 후보의 논리대로라면 '판결이 두개'가 돼 버린다. 이는 앞으로 굉장히 우려스러운 상황"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박 후보의 인식대로라면 현재 진행중이 모든 민주화운동 사건 관련 '재심'은 판결이 나와도 '논란거리'가 돼 버린다.

- 프레시안 박세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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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혁당 사형 참관 목사 “박근혜가 유가족에 사과해야…”

인혁당 사형집행 입회한 박정일 목사의 증언

 

▲‘사법살인’으로 불리는 2차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의 사형집행 때 군종참모로 입회한 박정일 목사가 11일 <한겨레>에 당시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1975년 군종참모때 현장 차출 8명중 누구도 기도요청 안했다.

나는 새누리당 지지자지만 피해자들 애국자라 생각해 박후보, 유가족에 사과해야'

 

인혁당 사건 관련자 8명이 사형당한 1975년 4월9일 박정일(70) 목사는 군종참모였다. 당시 33살의 육군 대위였던 박 목사는 2차 인혁당 사건 피해자들의 사형집행에 입회했다. 11일 <한겨레>와 한 인터뷰에서 박 목사는 그들의 마지막 모습을 생생히 회고했다.

 

1975년 4월8일 오후 5시 육군 제1교도소 군종실장 박 목사는 “본부로 올라오라”는 교도소장의 연락을 받았다. “내일 사형에 종교 담당으로 참관하게 됐다. 비밀 유지 때문에 육군교도소 인원이 차출됐다. 집에도 알려서는 안 된다”고 교도소장은 말했다.

교도소장은 군용 지프차를 내줬다. 박 목사는 군의관과 함께 경기도 성남시 육군 제1교도소를 출발했다. 소장은 출발 직전에야 “인혁당 사형 집행일이니 임무수행 잘하고 오라”고 박 목사에게 귀띔했다. 저녁 7시께 박 목사는 서울 서대문에 있던 당시 서울구치소(현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근처 여관에 도착했다. 다음날 새벽 4시 서울구치소 사형집행장으로 들어갔을 때는 육군본부 법무관과 검찰 수사관 등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 4시30분 흰색 죄수복을 입은 첫번째 사형수가 들어왔다. 백열등이 환하게 켜진 방안으로 들어온 그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여기가 어디야? 도대체 무슨 일이야?” 주위를 둘러본 그가 물었다. 법무관은 그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대신 사형을 집행한다는 판결문을 읽고 유언을 물었다.

“난 억울해. 하지만 언젠간 모든 일이 밝혀질 거요.” 사형수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집행관은 사형수의 머리에 검은 복면을 씌웠다. 목에 밧줄도 감았다. 잠시 뒤 버튼을 누르자 사형수 발밑의 송판이 열렸다. 군의관이 다가가 숨진 것을 확인하고 주검을 치웠다. “한 사람당 30분씩 걸렸다”고 박 목사는 회고했다.

뒤이어 들어온 사형수들도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마지막 가는 길을 위해 목사님이 오셨습니다. 기도를 요청하겠습니까?”라는 질문에도 답하는 사형수는 없었다. 박 목사 역시 사형수들에게 말 한마디 건네지 못했다. “저도 너무 긴장해서…. 마음속으로만 기도했지요.”

 

어느 사형수는 마지막 소원이라며 “아들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법무관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담배 한 개비 피우고 싶다”는 소원도 허락되지 않았다. “새장에 갇힌 새가 날지도 못하고 억울하게 죽는다”, “언젠가 이 더러운 정권은 망한다.” 마지막 소원조차 들어주지 않는 이들에게 남긴 사형수들의 마지막 말을 박 목사는 기억한다.

 

그 가운데서도 박 목사는 이수병씨를 잊지 못한다. “나는 유신체제에 반대한 것밖에 없고, 민족과 민주주의를 위해서 투쟁한 것밖에 없는데 왜 억울하게 죽어야 되느냐! 반드시 우리의 이번 억울한 희생은 정의가 밝힐 것이다!” 그렇게 외친 이씨가 교수대에 올라가는 모습을 박 목사는 뇌리에 새겼다.

 

8명의 사형집행이 끝난 아침 8시, 밖으로 나온 박 목사는 흰 봉투를 받았다. 특별근무수당으로 3만원이 들어 있었다. “죄책감이랄까…. 이런 일을 하고서 이런 걸 받아야 하는가 갈등을 느꼈죠.” 구치소 정문에서 유가족들이 거칠게 항의하고 있었다. 박 목사를 태운 지프차는 흐느끼는 유가족을 지나 구치소를 빠져나왔다. “그 뒤로 저는 사형제 반대론자가 됐지요.” 박 목사가 말했다.

 

15년간 군 복무한 박 목사는 1984년 소령으로 전역했다. “오랜 군 생활을 한 만큼 나는 보수층에 속해 있으며 새누리당 지지자”라고 스스로 소개했지만, 당시 형장에서 스러져간 이들에 대한 각별함을 박 목사는 간직하고 있다. “인혁당 재건위 사건 피해자들 역시 애국자입니다. 사건의 모든 책임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유신 독재는 잘못한 것입니다.”

 

박 목사는 2002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가 이 사건을 ‘고문에 의한 조작’으로 결론내리고, 2007년 서울중앙지법이 인혁당 관련자들에게 무죄를 판결한 것 등도 잘 알고 있다. “늦었지만 잘된 일이죠. 억울하게 목숨을 빼앗겼으니까, 유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였겠어요. 그동안 숨어서 살고 소외되고 세상에서 완전히 짓밟히고 살았는데….”

 

최근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의 인혁당 판결 관련 발언에 대해 박 목사는 한마디 했다. “일국의 대통령이 되고 싶다는 사람이면 진심으로 유가족에게 사과한다고 말해서 모두를 아우르고 상처를 싸매줘야 하는데, 그런 식으로 대답하면 안 됩니다.” (한겨레 / 김지훈 기자 / 201-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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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비밀문서, "최태민, 박근혜의 '몸과 마음'을 통제했다" 소문 보고

'박근혜 최태민 소문' 관련 미 비밀문서 언급 내용을 밝힌다

 

최근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로 공식 선출된 바 있다. 이와 동시에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에 대한 여러 의혹들이 다시 인터넷을 휘감고 있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이러한 여러 의혹 중 최근에 다시 제기된 박근혜 후보와 최태민 목사(?)와의 관련 루머에 관해 미국의(정확히는 주한 미국 대사관의 본국 보고서) 비밀문서가 이에 관해 어떠한 언급을 하였는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위키리크스에 의해 폭로된 미국 비밀문서는 그 양이 워낙 많고 한국의 박근혜 정치인에 대한 기록도 엄청난 언급을 곳곳에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모든 제반 사항에 관해서는 차후 글을 올리기로 하고 이번에는 여러 의혹 중 최태민과의 관계만 언급한 부분을 밝히기로 한다.

우선,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한국의 인터넷에서는 위키리크스 폭로 비밀문서가 박근혜의 사생아 존재까지도 언급했다는 등 여러 사실이 아닌 것들이 유포되고 있어 본 필자가 해당 미 외교 비밀문서의 내용을 밝히는 것임을 미리 전제하고자 한다.

 

사생아 관련 언급은 없으나, 최태민 관련 의혹(소문)은 정확히 보고

박근혜 후보와 최태민과의 관계에 대한 의혹을 보고한 미 비밀문서는 더 있을 수도 있으나, 필자가 파악한 바로는 2007년 7월 20일 당시 버시바우 주한 미 대사가 본국으로 송고한 비밀문서에서 언급되고 있다.

 

이 문서는 '여전히 혼란스러운 정치'라는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당시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가 한국의 정치인들이 특히, 당시 한나라당의 이명박(MB), 박근혜 등이 서로의 과거사를 들추어내는 데 혈안이 되어있다는 보고를 미 본국에 정치 상황 보고한 문서이다.

 

이 문서의 요약에는 당시 한나라당 안에서도 박근혜의 과거사를 들추어 내려는 시도들이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즉, 이를 번역하자면, "박근혜는 또한 자신의 과거를 해명하도록 강요받고 있는데, 그녀의 반대자들은 “한국판 라스푸틴”이라고 규정을 한, 최태민 목사와의 35년 전에 관계를 포함한, 그리고 그녀 모친이 암살된 이후 그녀가 영부인 역할이였을 당시, 청와대 안에서 그(최태민)가 어떻게 박근혜를 통제했는지도 해명을 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정도일 것이다.

이는 그 당시 대통령 후보감으로 자리매김하던 박근혜 후보에 대한 소문이나 의혹을 비교적 자세히 본국에 보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최태민을 '한국의 라스푸틴'이라 이색 평가 보고 눈길

또한, 최태민을 '한국의 라스푸틴'이라고 표현한 점도 눈길을 끌고 있다. 라스푸틴은 시베리아의 엉터리 승려였으나,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때 사술(詐術)로써 황후를 손에 넣은 뒤 황제마저 장악해 온갖 못된 짓을 다 한 음란한 간신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리고 이 비밀보고서의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즉, 밑줄 친 내용을 번역하면, "아마도 그녀가 모친이 암살되었을 당시 자신을 희생해서 나라에 봉사했다는 이미지에 가장 심한 손상을 입게 된 것은, 박근혜가 카리스마가 있던 죽은 최태민 목사와 연결되는 있다는 점이다. 죽은 최 목사가 그녀의 인성 형성기에 박근혜의 몸과 영혼을 완전히 통제했으며, 그런 결과로 최태민의 자녀가 막대한 재산을 축적했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정도가 될 것이다.

이 역시 미 외교 비밀문서가 이러한 소문이나 의혹의 사실을 보고하는 것이 아니고 그러한 소문이 널리 퍼졌다(rife)고 본국에 보고하고 있는 것이다.

 

미 외교 비밀문서, 최태민 소문은 보고, 사생아 관련 언급은 없어

다만, 외교관인 버시바우 대사가 소문을 전달함에 있어서도 왜? 최태민이 박근혜의 '몸과 마음(body and soul)을 완전히 통제했다'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는지는, (또는 소문이외의 어떤 근거를 미국 정보기관이 가지고 있었는지 등을 감안할 때) 참으로 외교적 표현으로는 이해할 수 없다고 하겠다.

본 보고서 요약에서처럼 그냥 통제라고 해도 충분할 내용을 (아무리 소문을 전달하는 차원이지만) 몸과 마음을 다 통제했다고 보고서를 작성한 것이 이채롭다고 할 수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이 사항이 2007년 7월 20일에 보고된 주한 미국 대사관의 본국 비밀 송신 보고서 중 박근혜와 최태민의 관계를 언급한 내용이다.

 

이미 언급한 대로, 새누리당 후보로 확정된 박근혜에 관한 여러 내용의 보고서도 많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나, 최태민 등 여러 관련 의혹이 제기되고 있고 많은 루머가 확산하고 있는 관계로, 본 필자는 폭로된 미 비밀보고서가 언급한 최태민과의 관계된 부분에 있어서 보고서에서 언급된 사실(fact)만을 다시 언급한 것임을 밝히고자 한다./뉴요코리안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blu2sky7&logNo=10145973981

 

 

 

 

 

박정희정권의 세계 최악의 사법살인 인혁당 사건.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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