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끝의 집

I’ll always remember us this way

내가 숨 쉬는 너희가 좋아^^

시간을 따라서..../긴 여정, 창 밖의 풍경

나는 내일의 나를 만나러 간다.

헬로우 럭키 찬! 2018. 12. 2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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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여 줘야지. 더 건강한 내일을 위해^^


기승을 부리던 미세먼지가 잦아들고 오랜만에 하늘 먼 곳까지 시야가 닿았습니다.

어디가 되었든 나서야 할 것 같다는 무의식이 얼굴에 물을 뿌리고 점퍼를 걸쳐 준 뒤 신발 까지 챙겨 주더군요.^^


아직 많이 이른가 보옵니다. 터엉~~~~빈 입구.^^;;

덕분에 호젓한 숲길을 거의 독차지 하다시피 했어요.

가깝기도 하고, 큰 길과 인접해 있으나 그 울창함이 도시와의 단절감을 아낌없이 채워 주는 곳....

마지막으로 들어 가 본 것이 언제였더라?

성지곡수원지를 블로그에서 뒤져보니 최종 방문일이 20161월의 끝날....

그것도 딸, 손주와 입구의 동물원까지만 이었네요.^^;;


수원지에서 당감동의 선암사로 이어진 코스를 몇 번이나 걸었던 그 기억은 도대체 언제 적 것이었나 싶었어요.


 

크리스마스예요, 오늘.

좋구나....하던 맘 곁에 따로 열리기 시작하는 마음이 있더라고요. 


우린 언제부터 이스라엘의 성인 탄생에 열광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어떤 연유로 기독교 국가도 아니면서 정확하지도 않은 25일을 예수 탄생일이라며 휴일로 지정까지 했을까 .....

새삼스런 질문에 분기탱천^^;;하신 것 같은 어느 분이 답변을 올리셨더라고요.


우리나라는 기독교 국가가 아니라 크리스마스가 기념일이 될 이유는 없는 나라입니다.

물론 전 세계의 많은 나라가 기념하는 날이고 또 즐기는 날이라 같이 즐길 수는 있지만 휴일로 정해 기념할 이유는 없던 거죠.

하지만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이 골수 개신교 신자입니다.

거기에 대한민국을 자기 소유물로 여긴 독재자죠.

자신이 개신교 신자니 크리스마스를 휴일로 정하고 기념한 겁니다.

 

참고로 여기 다른 분이 부처님 오신 날을 말하는데

부처님 오신 날을 공휴일로 하면 기독교에서 난리 날 테니 바뀐 겁니다.

크리스마스를 공휴일로 한 것이 사람들이 반발하니 부처님 오신 날도 공휴일로 정한 겁니다.

불교신자들은 의문의 개꿀이었던 거죠.‘


'의문의 개꿀'이라....ㅎㅎㅎㅎㅎㅎ

마지막 멘트에 뿌앙 터져버린, 허나 대체로 건강한 답변이었네요.^^

그나저나 막 노예의 굴레에서 벗어난 한국을

머저리 이승만이가 미국과 기독교에 최소한 절반의 의지는 되팔아 먹었다는 거......

해방 후 미국의 주요 목표 중 하나가 한국을 기독교화 하는 거였고(물론 음흉한 컨스피러시가 있는)

이후 교인수가 가파르게 증가하면서 지금까지 20%대를 유지해 왔으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현재는 세계적인 현상에 맞물려 점차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고 해요.

얼마 전 읽었던 필 주커먼의   '종교 없는 삶'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거겠지요.


내 나라 역사책 한 줄 읽지 않으면서 이스라엘 역사서인 바이블만 달달 외우는 기독인이 있다면

바라건대 그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행위인지 깨달을 수 있기를..........




평화.....




수원지의 여러 곳에는 역사 속의 선현들이 터 잡고 계십니다.

오늘은, 여유롭게 걸으며 온전한 이 나라를 물려주신 그분들을 길게 만나 뵈었고요.^^

이스라엘의 예수보다, 인도의 붓다보다, 아랍의 알라보다 오늘의 우리를 있게 해 주신 그분들게 먼저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옳을 것 같습니다.


독립운동 중 27세에 옥사하신 박재혁 의사 동상입니다.

(내가 당시에 태어나서 20대였다면 .....창씨개명도 모자라 실실대며 비열하게 살지 않았을까......ㅠㅠ;;)



6.25 전쟁에 참여한 육군헌병학교 제7기 학명 1,661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기념비입니다.





사명대사 호국광장


호국불교의 상징 사명대사를 만날 수 있는 곳입니다.

불교가 한반도에 전래된 지 1700여 년.....

한국불교의 핵심사상을 호국불교라 칭할 수 있었던 것도 어쩌면 가장 많이 알려진 이분 때문일 수도 있을 거예요.

사실, 지금까지 승병들의 전공을 기념하는 비석은 거의 발견할 수 없었는데요, 그 이유를 옮겨 봤습니다.

 

서산대사와 사명대사 등의 승려들의 하나같은 결론은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전쟁에 참전하여 부지기수로 일본군을 죽인 것에 대하여 이렇게 주장했다고 한다. “일본군도 중생이다. 그들을 죽인 것을 전공으로 삼아 후세에 전공비(戰功碑)로 세우는 것은 부처님의 불살생계를 범한 불제자의 입장에서 합당하지 않다는 취지로 전공비(戰功碑)를 세우지 않고, 무명용사처럼 역사속에 사라져간 것이다. 바꿔 말해 나라와 백성을 위해서 목숨을 바친 것으로 의승병들은 자족하고 부처님께 참회하며 죽어간 것이다. 따라서 당시 의승병들은 속세의 명리에 초월한 것이다.  




6.25 전쟁 참전용사 기념비

바람이 활동 개시를 알려 오네요.

잎을 다 떨군 마른 가지가 조금씩 흐려지는 겨울 하늘을 무심히 긁어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