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끝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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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숨 쉬는 너희가 좋아^^

시간을 따라서..../2021년, happy ever after

꿩 대신 닭이라도...기장 안적사

헬로우 럭키 찬! 2021. 5. 15.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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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아직 늙지 않은 거?^^;;

나이 들면 시끌벅적하게 어울려 다니는 걸 좋아하게 된다더니만 난 여전히 호올로 호젓한 곳만 찾아 두리번 거리고 있다.

 

안적사 원통문[펌]

비가 예보되어 있던 전날, daum 메인 기사를 훑던 중 가장자리의 작은 스틸컷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기장 소재의 사찰로 찍어 올린 그 풍경 속에서 얼핏 저물녘 스산한 바람의 술렁임을 느꼈던 순간이다.

 

참.....우연치고는 얄궂네 그랴.

정치적.사회적 이슈가 넘치는 가운데, 최근 유독 눈길이 달려가 멈추는 기사들이란.ㅎ

 

기왕 석가탄신일도 코앞인데, 눈에 든 김에 성자의 가르침을 현장에서 되새겨 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어느 님은 장산 자락이라시고 어느 블로그엔 ’앵림산 안적사‘라던 생소한 사찰.

 

지금은 절판이 되어버린, 기업 C.I.분야의 아트디렉터이며 독실한 기독교인인 채 사찰에 매료당한 심인보씨의 ’곱게 늙은 절 집‘에도, 문화사학자이며 도보 여행가로 알려진 신정일씨의 ’암자 가는 길‘에서도 찾을 수 없는 사찰이지만 내력이나 사연만큼은 그에 못지않은 안적사였다.

 

인간이 신으로 군림하는 현대의 종교엔 벽 쌓아 두고 살면서도 그나마 고찰을 가끔 찾는 이유는 수백, 수천 년 전 선사들의 고행과 민초들의 애환이 켜켜이 쌓인 그 길, 그 터의 흔적에서 잠시나마 내 걸음을 돌아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천왕문 안에서 바라본 삼층석탑과 법당[불교신문 펌]

앞뒤 재지 않고, 블로그 정보만으로 성급히 보따리 챙겨 나선 토요일 이른 아침.....

아.... 비가 이렇게나 쏟아질 줄은 몰랐다.

그래도 간다.

그리고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았다.ㅠㅠ;;

계단 위는 LG건영 아파트 앞 담안골 공원
계단 중간 쯤, 장미터널
표지판에도 안적사는 없다.ㅎ
삼환5차 아파트 사잇길(뚠뚠한 사람은 다닐 수 없다.)로 들어서면 나오는 등산로
비 맞은 낙화. 지금도 호르르 떨어지고 있는 떼죽나무 하얀꽃
저 길 오른쪽에 체육공원이 있다.

 

8시 반에 나섰다. 

부전시장에서 99번 버스 환승 후 안락로타리 지나 부산은행 하차, 189번 버스로 한 번 더 환승하여 카카오 맵이 알려 준 대로 반송 2동 남흥아파트 하차. 여기까지 1시간 30분 여분.

 

헐, 아무리 둘러봐도 어느 길로 들어서야 할지....이정표 하나 없다.

원효,의상대사의 수행설화까지 전해지는 고찰이건만, 심지어 지나다니는 아파트 주민들도 죄다 모르심.

지금도 수행에만 정진하는 사찰인가?

그렇다면 굳이 사람 꼬여드는 이정표를 세울 이유가 없긴 하다.

겨우 만난 친절하신 아줌니께서 알음알음으로 전화 넣어 주시고 .... ^^;;

 

따악 나 하나만 지나갈 수 있는 아파트 사잇길. 초행자는 절대 못 찾는다.

산속 깊이 들어앉은 사찰이나 암자가 알려진 데는 여기저기 길 뚫고 다니는 등산객이 홍보 매개체였던 셈이다.^^

 

우산 받쳐 들고 무모하게 산길을 올랐다.

그래도 이정표가 없다.

 

갈림길에 올라서니 오른쪽으로 체육공원이 보이고 아저씨 한 분이 빗속에서 으쌰으쌰 중이시다.

여쭙자마자 ’제법 먼 길 인데다 비까지 와서 힘들 텐데‘하신다.

역시, 좋은 날 등산 겸해서 다시 와야겠다.ㅜㅜ;;

 

되돌아서면서도 아쉬워 비 구경차 일주 한 셈 치자고 자위하며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리니....

아, 송상현 광장의 연등축제를 잊고 있었구나.

누군가 내리려는 듯 부저가 울리길래 부리나케 따라 내렸다.

 

꿩 대신 닭, 아님 봉황이든지. ㅎㅎㅎ

뜻밖에 보게 된 올해까지 세 번째. 해마다 등의 종류가 다양해지는 것 같다.

내년엔 꼭 밤에 와야 하리.^^

 

전시기간은 점등식 1일을 기점으로 16일까지... 내일이 마감일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도 새옹지마로세.^^

실패한 행군이 아쉽긴 하였으나 빗속에서 마주한 사물에 대한 느낌이 오히려 더 특별한 기억으로 남았다. 

바짓가랑이 흠씬 적신 채 호젓함을 즐기며 걸었다. 비 쏟아지는 송상현 광장에서^^

무엇이 그리 외롭냐?

무엇이 그리 그립냐?

바쁘기만 일상을 잠시 접어 두고 떠나자.

내 그리움을 찾아

내 외로움을 묻으러.

 

채곡채곡 내 등에 쌓인 시간들이

버겁게 느껴지거나

겹겹의 인연들이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삶이라는 것이

밑도 끝도 없는 허공처럼,

출구 없는 미로처럼

내 앞에 다가설 때,

 

그럴 때마다

싸워 이겨야 하는 것이

세상 이치인 줄 알았다.

바득바득 대들고, 욕하고, 비아냥거리며,

 

그러나

가끔은 질러가는 것에 익숙한 습관을 털고

빙 둘러서도 가고

세상일 남의 일 보듯 무심해져야 한다는 것을

늦게나마 깨달았다.

그것이 쉼이고 여유라는 것도.....

그런 마음을 함께 나누고

사랑하고 슬퍼할 절을 찾아 떠난다.

 

심인보 '곱게 늙은 절 집'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