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끝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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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따라서..../2022년, hrer and now

가재가 노래하는 곳

헬로우 럭키 찬! 2022. 11. 27. 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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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생태학자이자 환경보호론자로도 유명한 델리아 오언스는 조지아대에서 동물학을 전공했다. 캘리포니아대에서 동물행동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23년 동안 아프리카에서 야생동물을 관찰·연구하며 보냈다. 이때의 연구 성과를 정리한 논픽션의 공동저자로서 훌륭한 자연도서에 주어지는 존 버로스상을 수상했다. 다수의 저명한 학술지에 글을 실으며 명성을 얻었다. 2014년에는 로버트 레드포드가 내레이션에 참여한 다큐멘터리 <새로운 환경운동가들>에 출연하기도 했다.

펌]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9&artid=202210281100331

 

그저께 알라딘에서 담아온 델리아 오언스 가재가 노래하는 곳’, 이틀 만에 완독했다.

시력이 급격하게 저하되면서 글 읽는 시간을 최대한 줄여가던 와중에 안통을 감수하고 달려든 이 책의 매력이라니!

완독 후 알게 되었다. 지난 112일 동명의 영화로 개봉되었다는 거.

 

메인 예고편 몇 장면만으로도 소설의 모티브를 잘 집어낸 것 같아 영화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현재는 상영관이 없는 것 같다.)

특히 카야와 테이트역의 배우들이 내 상상 속의 캐릭터에 근접한 이미지여서...

 

 

 

‘무우나, 배추나 감자나, 양파나, 맛있는 꿀사과나.....

이른 시간이건만, 트럭 아저씨의 열정 넘치는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사정없이 거실 창을 두드려댄다.^^;;

흠머, 부지런하시기도!

그리고 간간이 들리는 오토바이 소리.

그 생활소음이 싫지는 않았으나 지속적인 집중을 위해 창을 모조리 닫고 편안한 첼로 소리를 덧씌운 뒤 책상에 앉았다.

 

쓰담쓰담, 포레 무언곡 3번에서 리스트 위로, 차이코프스키 안단테 칸타빌레로 주욱 이어지는 곡에 심취해 있다 어느 순간 스르르 잠에 빠지듯 책 속으로 빨려들었었던 것 같고.

 

’암여우는 배를 곯거나 지독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새끼들을 버리고 떠난다. 새끼들은 죽지만 어미는 살아서 상황이 나아지면 다시 번식한다.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에서는 이렇게 잔인무도해 보이는 행위 덕분에 실제로 어미가 평생 키울 수 있는 새끼의 수를 늘리고, 힘들 때 새끼를 버리는 유전자가 다음 세대로 전해져. 그렇게 계속 끝없이 이어지는 거야. 인간도 그래. 지금 우리한 테 가혹해 보이는 일 덕분에 늪에 살던 태초의 인간이 생존할 수 있었던 거라고.‘-내용 중

 

아버지의 모진 폭력을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한 엄마가 떠나고, 나머지 4명의 형제들도 7살짜리 카야만 남겨두고 뿔뿔이 흩어졌다.

1960년대 노스캐롤라이나의 황량한 습지.

어느 날 아버지마저 홀연히 자취를 감추고 홀로 남게 된 어린 카야는 세상과 철저하게 격리된 채 태고의 습지에서 홀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해 간다.

게다가 당시의 사회적, 정치적 상황으로 인한 절대적 편견은 카야가 맞서야 했던 또 하나의 버거운 시련이었다.

 

’그녀가 아는 것은 거의 다 야생에서 배웠다. 아무도 나서지 않을 때 자연이 그녀를 기르고 가르치고 보호해 주었다. 그 결과 그녀의 행동이 달라졌다면, 그 역시 삶의 근본적인 핵심이 기능한 탓이리라.‘

 

미스터리, 러브 스토리, 법정 스릴러 등이 흥미롭게 버무려진 내용이지만 내겐 그저 거대한 태고의 자연과 그것을 끝없는 애정으로 품어온 한 작은 소녀의 외로움이 보였을 뿐.

저자의 전문적인 지식 없이는 불가능했을 습지에 대한 극강의 묘사가 그만큼 절대적이었다.

 

카야 사후, 마지막 반전의 여운이 오히려 진하게 전해져 왔던 오언스의 소설.....’가재가 노래하는 곳‘

오랜만에 한참을 턱 괴고 앉아 삶과 자연,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의 고질적인 탐욕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짚어 본 계기가 되었네.

'테이트의 헌신으로 카야도 결국 인간의 사랑이 습지 생물들의 엽기적인 짝짓기 경쟁보다 훌륭하다는 사실을 믿게 되었지만, 삶은 또한 태고의 생존본능이 복잡하게 꼬인 인간의 유전자 어딘가에 여전히 바람직하지 못한 행태로 남아있다는 가르침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