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끝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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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숨 쉬는 너희가 좋아^^

시간을 따라서..../2022년, hrer and now

겨울 하늘이 해맑아서....범내산과 엄광산 임도

헬로우 럭키 찬! 2022. 1. 8.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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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8일(토)

10여 개월 만에 범내산으로 들어섰다.

한동안, 길이 잘 닦여 있는 데다 집에서 바로 오를 수 있는 편리함 때문에 백팩을 짊어지고 나설 때마다 열에 일곱은 이 등산로를 이용해 왔다.

 

작년 봄쯤이었나.....초입 어드메 제법 큰 뱀이 터를 잡은 것 같다고 웬만하면 스틱으로 양쪽 숲을 휘저으며 다니라는 어느 분의 말씀에 아연실색, 그 후 겨울이 아니면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ㅎ

하긴 편하게 난 길이라도 좁다 보니 양쪽으로 우거진 풀이 늘 섬뜩하던 터였다.ㅜㅜ;;

 

무엇인가 잔뜩 품어 덮고 있는 음흉한 여름 산보다 보란 듯 오장육부 훤히 드러낸 겨울 산이 훨씬 안전하고 믿을만 하지.^^;;

멧돼지야 멀리서도 보일 만큼 덩치가 커 미리 발견하면 달아날 기회라도 얻지만 뱀은 발견 즉시 사지가 굳어 더 이상의 걸음이 불가능할 정도로 공포스런 존재다.ㅜㅜ;;

신기방기. 물도 없는 곳에서 어떻게 이런 형상으로 얼음이 쌓인 걸까. 보고 또 보고.
겨울 가뭄. 그 전까지는 가늘긴 하여도 쫄쫄거리며 떨어지는 물줄기를 볼 수 있었는데....물 마른 그릇에 바싹 마른 나뭇잎 몇 개가 들어 앉았다. 
여름엔 이 길의 양쪽으로 무릎 높이의 풀이 우거진다. 그 속에.........으~~~~~
대롱대롱. 까암딱 놀랄만큼 선명하고 예쁜 붉은 색, 망개.
오늘은 결코 구름에게 한 자리도 내어 주지 않겠다고 다짐한 겨울 아침의 벽공.^^
고고한 기상, 지조와 절개를 상징하는 대나무. 우중충한 잿빛 겨울 산에서 사철 푸른 소나무와 동백나무 의 초록보다 더 선명한 색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임도를 지나다니며 늘 바라만 보다 들어선 오솔길 속에 이런 약수터가 있었다. 뒤에는 넓다란 체육장까지.
백양산 아래 즐비한 닭장^^;; 오늘따라 유난히 선명하게 드러나서...
지날 때마다 내려다 본다. 어째서 길 없는 이곳에 누워 계실까. 초목이 스러진 후에 살펴봐도 산소로 난 길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견고하게 둘러 싸인 돌을 보면 누군가에게 소중히 섬김 받는 분 같긴 한데....
바람에 부딪히는 잔가지 소리 너머 하늘도 푸르게 푸르게 웃는다.

 

슬픔이 끌어 산으로 간다

살 저미는 아픔에 겨워 산도

어디론가 떠날 채비 중이다

 

바람에 갈무리한

견고한 영혼의 무게를 지니고

거리에서 쫒겨난 햇살과 별빛을 품고

맑은 물소리로 나를 씻어준다

 

산도 나도 상처는 깊어

서로의 상처에 기대면

내 가슴에도 새겨지는 나이테

아픔이 내게로 가는 길을 연다

 

나무 속으로 나를 밀어 넣는다

누구도 넘보지 않고 육탈한 몸

슬픔을 끌고 따뜻한 겨울잠에 든다

상처만이 푸르게 깨어 있다

 

 

정세기 겨울산은 푸른 상처를 지니고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