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끝의 집

I’ll always remember us this way

내가 숨 쉬는 너희가 좋아^^

시간을 따라서..../긴 여정, 창 밖의 풍경

집으로 가는 길 '록봉민속교육박물관'에서

헬로우 럭키 찬! 2018. 7. 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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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와 오르간의 조화로운 연주^^....느~무 그럴듯한 장면입니다. ㅎㅎㅎ

노래도 하고요....^^


딸아이가 오래 전 잠시 언급한 적이 있었지만 관심 밖으로 밀어 냈던 곳이었어요.

통영에서 집으로 가는 나란한 길에 있으니 잠시 들러 보자 했고요.  그래서...

 

개관식은 20111126일이었네요.

록봉(鹿峰)'이란 명칭은 현 관장인 손혁씨의 아버지이자 전 관장 염춘자씨의 남편인 손진옥 씨의 호라고 합니다.


 

   

멀고 구석진 교통 취약지구,

들어서서 본 넓은 운동장에는 관리 받지 못 한 개망초와 잡초들,

수령을 가늠할 수 없는 나무들이 제 멋대로 자라 교사校舍를 거의 다 가린데다

바로 뒤쪽은 멋 없게 솟은 원룸 건물이 풍경을 말아 먹는 중이고.....

그닥 편치 못한 마음으로 들어 선 허름한 박물관의 입장료는 무려 5,000.(공영인 줄 알았습니다.^^;;)

그만한 가치가 있을까? 외관을 보아하니 내용도 그다지 충실할 것 같지도 않은데....

입구까지 걸어가는 동안 이랬습니다.ㅠㅠ;;


하지만,

복도로 한 발 올리는 순간 그 모든 것조차 자연自然과 자유自由가 어우러진 풍경이었다는 생각으로 바뀌게 됩니다.^^




옛 천성초등학교


너는 모르지?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할미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실렸던 노래란다.^^  그 학교종이네.



엄청 깊은 숲으로 들어선 느낌입니다.


운동장 너머 남해 바다를 향해 앉아 사이좋게 공부도 하고요...


요즘도 그런가요? 초등학교 교정엔 항상 이분이 .... 현대에도 뒷 조사^^;;가 활발한 우리의 성웅,

바로이순신장군 동상 되겠습니다.^^

오모? 진짜, 장군의 뒤를 캐고 다니시는 분이 요기...!!ㅎ



친구들아 반가워~!!! 아니면 바다야 기다려~!! 것도 아니면 모두 다 안녕~!! 인가?^^


정말 깜딱 놀랐습니다.

.현대 민초들의 일상을 아우르는 2,000여 점의 방대한 전시품들이...눈물 날 것 같은 추억의 이 물건들을 도대체 어떻게 수집 했을까요.


아직 녀석에겐 대부분의 전시품이 안드로메다에서 갖고 온 것처럼 낯설게 보이겠지만

언젠가 소중한 자료 하나하나에 얽힌 당시 민초들의 삶과 사회적 발전과정을 진심으로 들여다 볼 수 있는 날이 올 거라 믿습니다.

  

첨부이미지  

다녀와서 관련 기사를 찾아봤습니다.

2012년 부산일보 기사 발췌문이고요, 원문은 국제신문 기사와 함께 글 말미에 올려 뒀습니다.

'록봉민속교육박물관'의 경영난은 심각해져 염 관장은 올해 6월까지 납부해야 할 대부료와 연체료 등 6200여만 원을 내지 못한 상태다. 때문에 교육청은 기한 내에 내지 않을 경우 계약 해지와 가압류를 조만간 추진하겠다는 공문을 발송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지요?

개인이 평생을 바쳐 모은 소중한 문화의 흔적들을 사장시킬 건가요?

교육청님들아 그대들은 꿈도 꾸지 못 할 일을 일개인이 해 주고 있다면 최소한 밀어 주기라도 해야 할 것 아닌가요.



한 초등학교의 단체 체험


아...우물...뜬금없이 김유신이 마셨던 버들잎 띄운 물바가지가 생각 나네요. ㅎㅎㅎㅎ

녀석은 어떤 공주에게 주려고 두레박질 하는공.^^


복도의 한 면 전체가 전시 자료들입니다.  오래 전의 짜투리 기억이 들락날락, 눈물이 핑 돌기도 하네요. 





베틀입니다.

실물로는 첨 봤어요.  노동요가 아닌 팬텀싱어 포르테 디 콰트로가 불렀던 가곡 '베틀노래'가 생각 났네요.^^




군대 기상나팔입니다.^^;;

잠시 한 눈 파는 사이 홀랑 집어 들고 뿌우~~~에궁 닦고 불어야지이~~


하나도 못 맞히면서 폼만 근사한 궁수ㅎㅎㅎㅎ



요거 수 십년 전 우리가 먹던 과자예요. 요즘은 불량과자로 천대 받고 있답니다. ㅎㅎㅎ 한 개 1,000원!!!



잡초 무성한 넓은 운동장. 가슴이 싸아~~~합니다.

얘들아 모두 어디 간 거니?  

















시민공원에서 놀다가 이트레이더스에서 피자랑 파스타로 저녁 끼니 뗌질하고























 록봉 민속교육박물관 관련 기사/국제신문


경북 군위군에 엄마아빠 어렸을 적에란 곳이 있다. 폐교인 산성중학교를 활용해 1960, 1970년대를 체험할 수 있도록 한 곳이다. 운동장에선 스카이콩콩 쪽자(달고나) 비누거품 등을 만날 수 있고, 건물로 들어서면 시대소리사 극장 역전상회 공중변소(화장실) 등 세트장뿐 아니라 타자기 풍금 등도 전시돼 있다. 해마다 전국에서 10만여 명이 찾는 군위군의 효자 상품으로 떠올랐다니 폐교를 제대로 활용한 셈이다.

 

부산에도 폐교를 활용해 관광자원으로 조성한 공간이 있다. 바로 부산 강서구 가덕도(천가동)록봉민속교육박물관이다. 폐교인 천가초등학교 천성분교를 부산시교육청에게 임대받아 사립박물관으로 꾸몄다. 학교 건물에 들어서면 어릴 적 시골에서나 봤을 법한 우물과 펌프를 만날 수 있다. 두레박으로 우물물을 퍼 펌프에 넣으면 마중물이 돼 펌프 손잡이를 위아래로 휘두를 때마다 물이 쏟아져 나온다. 또 각 교실에서는 바람을 불어 쭉정이와 곡식을 분리했던 풍구’, 옛 전화기, 오르간, 100년 된 냉장고 등 2500여 점(6000여 점 중 순환전시)의 민속자료가 갖춰져 있다.

 

사실 부산에는 부산박물관 복천박물관 등 고대사를 엿볼 수 있는 공간이 많지만 아이들 기준으로 부모님 세대, 조부모 세대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는 30~100년 전 모습을 간직한 곳은 많지 않다. 사상생활사박물관, 수영성 마을박물관 등이 비슷한 콘셉트로 운영되고 있지만 규모 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관광지로나 추억을 되새기는 공간으로서의 차별화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그러다 보니 부산은 물론 가깝게는 경남·전남에서, 멀게는 서울·인천 등지에서도 가족여행 또는 견학, 수학여행으로 연간 1만여 명이 찾을 만큼 주목도 받고 있다.

 

하지만 록봉박물관 손혁 관장의 표정은 밝지 않다. 시교육청이 2015년 말부터 지금까지 건물을 비워달라고 요구하면서 오래지 않아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시교육청은 해당 부지를 공개입찰에 부쳐 자체 활용하거나 매각할 계획이다. 퇴거 요구를 묵살한 박물관은 해마다 정상 임대료보다 20%가량 비싼 무단 점유 변상금으로 5000만 원가량 내고 있다. 해법을 찾지 못한 양측은 지난해 1월 소송전(명도소송)에 돌입했고 1, 2(시교육청 승소)을 거쳐 대법원 판결만 남겨두고 있다.

   

록봉박물관을 대하는 시교육청의 태도를 보면 함께 좋은 교육 인프라를 만들기 보다 내쫓을 방안에만 골몰하는 것 같다. 시교육청 관계자에게서는 사설기관을 지원할 근거가 없다” “관람객 수를 실측해 보니 허수가 많다는 등 부정적인 이야기뿐이다. ‘같이 잘살자보다는 너는 모르겠고, 나만 잘살면 된다는 식의 시교육청에게서 중소기업과 맞붙은 대기업’, 전통시장과 갈등을 빚는 대형마트’, 을을 괴롭히는 과 유사한 느낌이 드는 건 기자만의 착각일까.

 

국제신문은 창간기획으로 공존을 내걸었다. 모두가 잘 먹고 잘살기는 불가능할지 몰라도 소외당하는 소수에게 다수가 따뜻함을 나누는 공존 유토피아는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기획 취지다. 사회 곳곳에 도사리는 차별과 강압을 넘어 공생하는 방법을 찾자는 거다. 부산시와 강서구뿐 아니라 시교육청과 록봉박물관이 한자리에 모여 엄마아빠 어렸을 적에를 능가하는 관광과 교육의 인프라를 키울 방안을 고민해 보면 어떨까. 최소한 공존의 차원에서 머리라도 맞대는 모습을 보고 싶다.

 

사회1부 차장 defiant@kookje.co.kr



[주경업이 만난 洛東江 사람들]

가덕도 '록봉민속교육박물관' 연 염춘자 씨/부산일보: 2012-02-17

 

"그토록 아이들 사랑했던 남편 다시 살아온 듯 기뻤죠

부산 강서구 가덕도 천성마을의 록봉민속교육박물관을 찾았다. 천성마을은 조선조 중종 때 쌓은 천성포진이 있었다('신증동국여지승람')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가덕도 천성마을은 부산이면서 육지와도 떨어진 섬이어서 용원 등지에서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지금이야 거가대교가 가덕도를 거쳐 가설되고, 가덕도까지 시내버스도 운행되어 교통이 편리해졌다. 가덕도 근해를 매축하여 신항을 만들면서 가덕도가 도시인의 투기 대상이 되어 투자가치가 큰 집과 땅 80%가 외지인 소유가 되었다고 한다. 젊은 사람들은 보상금을 받아 서둘러 육지로 떠나고 노부모만 남았다. 아이들마저 엄마 아빠 따라 도시로 떠나고 학교도 텅 비었다. 천성초등학교 운동장에 아이들 웃음소리가 사라진 지도 2년이나 되었다. 지난해 말 이곳에 록봉민속교육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교실에서 사라진 풍금도, 대형 주판도, 등사판도 박물관에서 볼 수 있고 타자기와 영사기도 이곳에서 볼 수 있게 되었다.

박물관에선 교실 7개와 복도를 교육자료와 민속자료로 가득 메워 전시하고 있었다.

미래에 대한 투자 '유아 교육'에 심혈

지난해 남편 유지 받들어 박물관 열어

 

노벨상 수상 훌륭한 인재 양성이 목표   

서편 출입문을 들어서면 제1실에 풍금과 대형 주산 따위가 있는 추억의 학교관을 만난다. 2실은 오래된 라디오, 환등기 등이 전시된 신기한 전자관이고, 3실은 갓과 물레 따위가 있는 재미난 민속관이다.

 

4실은 여성들을 위한 문화체험관이다. 5실은 전통문양 등을 그려보는 체험관이고, 6실은 실제 우물을 파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올리는 체험도 할 수 있었다. 7실은 열린도서관으로 벽시계와 도자기 등을 전시하였다.

 

비록 아이들은 떠나갔지만, 그 자리를 교구와 학습자료로 채웠다. 2천여 점의 교구 학습자료와 민속자료인데, 학교 수업에 활용할 가치가 큰 것들이다.

 

유아교육 석사학위 받아   

새해 벽두 차가운 날씨인데도 김진수 부산여대 디자인과 교수 일행과 운동장 스탠드에서 그림 밑칠을 하는 염춘자(廉春子·69) 선생을 만났다. 염춘자 선생은 부산이 고향이다. 성지초등학교와 전포동에 있던 수도여중을 졸업하고 경남여고에 다녔다.

 

그녀는 초등학교 2학년 5반 담임이었던 문상숙 선생님을 잊지 못한다. 문자 해독을 못 하는 아이들을 위해 특별프로그램을 만들어 학습을 도왔고, 그 결과 학급 평균성적이 전교에서 으뜸이었다. 그렇게 어린 학생들을 알뜰살뜰 보살펴 주시던 그 모습을 보고 '나도 커서 선생님이 되어야지'라는 꿈을 키웠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그녀는 방송통신대에 진학해 유아교육을 전공했고, 2008년 동아대 교육대학원에서 유아교육 석사 학위를 받았다.

 

남편의 지원·격려가 큰 힘 돼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유아교육에 대한 꿈을 품게 했다면, 그녀의 남편은 그 꿈이 현실이 되도록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1970년 스물일곱 살 때, 네 살 위의 밀양 출향인 손진옥(孫晋玉)과 결혼했다. 결혼한 그해, 가야미술학원을 개원했다. 그림을 좋아했던 부군과 취미가 같았던 그녀의 선택이었다. 당시 부산진구 가야동은 도시 외곽의 을씨년스러운 동네여서 건물 주인은 '시골에 웬 학원이냐'고 마뜩잖아했다. 지하에 우물이 있어서 수채화를 비롯해 미술 작업을 하기에 편리할 것이란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남편은 학원 근처의 닭장 건물을 고쳐서 가야체육관이란 태권도 도장을 열었다. 신혼부부의 가야동 정착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0년 넘게 미술학원을 하던 그녀는 1985년 미술학원 인근에 초원유치원을 개원하면서 본격적인 유치원 운영에 들어갔다. 1996년에는 부산진구 당감동 태화 현대아파트(태화고무 터)의 유치원 부지를 분양받아 초원사랑유치원과 어린이집을 열었다. 그러면서 가야동 초원유치원은 그만뒀다. 같은 해 12월 부산진구 개금동 개원초등학교 옆에 개원유치원을 세웠다. 그동안 유치원을 경영하면서 얻은 경험을 토대로 남편이 직접 설계하고 지은 건물이다. 그러면서 유치원 안에 그동안 수집했던 교육자료와 민속자료를 전시할 공간도 따로 꾸몄다.

 

유치원 운영하며 교육자료 수집   

옛날 교구와 생활용품은 어린이들의 호기심을 불러왔다. 이런 궁금증이야말로 미래를 향한 꿈의 시작이라고 믿었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의 학습만큼이나 생활주변의 소소한 것들이 소중함을 일깨우고 싶었다. 아이들이 주변의 작은 것도 예사로 넘기지 않고 관찰하는 습관을 스스로 키워갔으면 했다. 이런 것들이야말로 염 원장 부부가 꿈꾸던 최상의 교육목표였을지도 모른다.

 

"저희는 진작부터 유아교육에 심혈을 기울여 왔지요. 수업을 하면서 화보나 그림을 보여주게 되는데, 이것들로 아이들의 이해를 돕기에는 역부족이었어요. 실물 자료야말로 가장 좋은 교육자료임을 깨달았습니다."

 

부부는 유치원을 운영하는 틈틈이 전국을 누비며 교육자료와 민속자료를 수집했다. 늘 남편이 앞장섰다. 하찮아 보이는 물건도 남편의 눈엔 크게 보였던 모양이다. 딱총에 쓰는 화약 딱지 한 장을 십만 원에 사들이기도 했다. 구두 한 켤레, 바지 한 장으로 만족하고 교육자료 수집하는 일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수집한 자료가 엄청났다. 이젠 이 자료를 활용해 어린이들에게 학습자료로 펼쳐놓을 공간이 필요했다.

 

행복한 학교·박물관 만들고 싶어   

1990년부터 전국에 문을 닫는 초등학교가 늘었다. 2000년까지 10년 동안 부산 경남 일원에만 187개교나 폐교했다. 텅 빈 학교와 운동장도 자료로서 활용가치가 크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폐교를 활용해 자료박물관을 꾸미기로 하였다. 그동안 모은 자료의 성격에도 딱 맞았고, 학교 시설도 보존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생각으로 문 닫는 초등학교를 물색했다. 마침내 20008월 폐교하는 경남 함양군 봉전초등학교를 무상 대부로 입찰받아 '봉전민속박물관'을 개관했다. 정말 행복한 학교. 행복한 박물관을 만들고 싶은 열망을 담았다.

 

박제가 아닌 살아있는 생활박물관이 되어, 아이들의 재잘거림으로 박물관을 온통 채우고 싶었다. 시골 아이, 도시 아이 할 것 없이 이곳에선 서로 어울리는 교육장으로 만들고 싶었다. 비싼 인건비를 들여가며 잔디도 심고, 울타리도 만들었다. 박물관 환경 개선에는 아들 둘과 함께 네 식구가 한마음 한뜻으로 매달렸다. 무료로 시설을 개방하고 찾아오는 인근 학생들에게는 선물도 나눠 줬다.

 

함양군, 학교 비워달라는 통보   

큰 시련이 닥쳤다. 20033월 남편이 돌연 세상을 떴다. 과로사였다. 수채화를 곧잘 그려 진주 개천예술제에서도 입상하고, 태권도 7단의 실력을 갖춘 재주꾼이었던 남편이었다. 어린이 교육의 꿈을 실현하도록 곁에서 부단히 힘이 됐던 남편이었다. 그녀의 한쪽 가슴이 뻥 뚫린 것처럼 허전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박물관에 도둑이 들어 자료 일부를 훔쳐가고 창문도 뜯어갔다. 수습하는데 5~6개월이 걸렸다.

 

그러던 어느 해 함양군수가 박물관을 둘러보고 "꿈이 아름다우니 그 꿈을 실현해 보시라"며 격려하고 갔다. 한창 고무돼 있던 그녀에게 이듬해 날벼락 같은 소식이 날아왔다. 함양군에서 학교를 비워달라는 청천벽력 같은 통보를 해온 것. 2007년 영문도 모른 채 쫓겨나듯 학교를 떠났다. 솥단지도 그대로 두고 보상 한 푼 받지 못한 채 첫 번째 꿈을 접고 말았다. 그녀는 지금도 그때의 허망함을 잊지 못하고, 왜 쫓겨나야 했는지도 알지 못한다.


"가덕도는 아이들 희망의 땅  

그 허망함을 또 다른 희망으로 바꾼 곳이 가덕도다. 20113월 강서구 천성초등학교 폐교 소식을 우연히 듣게 됐다. 학교시설과 환경을 답사하고 이곳에 교육자료박물관을 설립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신항은 어촌 아이들을 도시로 내몰았지만, 공기 좋고 환경이 수려한 천성만은 염 선생 가족의 꿈을 실현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낙동강의 도도한 물결이 흐름을 멈추는 이곳이야말로 낙동강의 유장함을 교육으로 실현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다.

 

서둘러 시설대여 절차를 밟았다. 입찰과정에서 생각 밖의 어려움이 있었지만, 아이들이 떠난 학교를 교육자료박물관으로 리모델링하여 아이들에게 되돌려 주기 위한 작업이 6개월가량 이어졌다. 마침내 지난해 11'록봉민속교육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남편의 유지를 이을 수 있는 교육박물관이 탄생한 것이다. 아이들을 무엇보다 사랑했던 남편이 다시 살아온 듯 기뻤다. 다들 떠난 자리에 새로운 꿈을 펼쳐 보이리라 다짐했다. 가덕도가 변하듯이 천성마을에도 변화의 기운이 서서히 다가올 것이다. 언젠가 주민들이 살아온 역사도 뒤안길에 묻힐지 모른다. 하지만 '록봉민속교육박물관'만은 이곳을 찾는 어린이들과 함께 매일매일 새로운 꿈을 키울 것이다. 함양 봉전에서 펼쳐 보이지 못한 무지개를 수놓을 것이다.

 

"가덕도는 어촌 산촌 등 자연환경이 제대로 보존되어 있어 이곳을 찾아온 아이들이 꿈을 가꿀 수 있는 곳입니다. 이곳이면 우리 아이들도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는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앞서 간 영감이 암시하여 점지해 둔 곳이란 생각도 들었습니다."

 

'록봉(鹿峰)'은 아이들이 사슴처럼 산언덕에서 뛰어노는 것을 뜻하는 남편 손진옥 씨의 호이다.

 

 

주경업

1980년부터 30년 가까이 수집한 6천여 점의 자료 중 우선 삼 분의 일만 전시했다. 막상 개관은 했지만, 어찌 보면 이제부터 시작이다. 학예연구사를 초빙해 자료를 해석하고 활용하는 방안을 구체적으로 수립해야 하고, 탐방하는 학교와 유치원의 학습활동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자체 프로그램도 운영해야 한다. 그런 일을 추진하느라 잠시도 쉴 틈이 없어 보였다.

 

천성만이 내려다보이는 박물관 마당 앞에 섰다.

 

천리벌판을 적셔온 낙동강이 바다와 만나듯 우리 아이들의 꿈이 이곳에서 만나 꽃피우고 영글 것이다.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여생을 바치리라 다짐하는 염춘자 선생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