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끝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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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따라서..../2021년, happy ever after

아버지께...여식이 올리는 첫 기세상

헬로우 럭키 찬! 2021. 4. 29.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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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7일(화)

어머니 기제 당일, 마침 쉬는 날이어서 참석했던 사위가 다음부터는 좀 더 넓은 자기 집에서 제사를 모시면 어떻겠냐고 조심스럽게 의사를 타진해 왔다.

 

기제가 평일이면 다음날 등교해야 하는 손주 때문에 딸아이가 곁에서 밤을 보낼 수 없는 것이 마음에 걸렸나 보다.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혼자 모실 수도 있는 일이라 개의치 말라고 한들 둘의 마음은 편하지 않을 터, 결국 그 뜻을 받아들여 내가 움직이기로 했다.

 

어머니 기일에 바투 붙은 11일 뒤, 오늘은 아버지 기제일이다.

전날 부전시장에서 몇 가지 재료를 구입해 두었고, 손주를 등교시킨 딸아이가 오전 중에 나를 데리러 넘어왔다.  간소한 상차림이라 크게 벌여 놓을 일은 없으므로 일손 빠른 내가 혼자 준비한다 해도 오후 서너 시간이면 충분하다.

 

지난달, 호기심에 들렀다가 실내 분위기는 물론 3천 원짜리 쌀국수 맛에 콧노래 불렀던 웅천의’ 카페 홍.

딸네 들어가기 전 요기서 점심 해결했다.

소고기 쌀국수, 얼큰 쌀국수....'밥심'도 필요할 것 같아서 파인애플 볶음밥 추가^^

 

 

제사는 정성이 전부라는 생각으로 격식을 염두에 두지 않으려 했으나 아무래도 여식이 모시는 두 분의 첫 기제이다 보니 이번만큼은 조촐한 상이나마 비슷하게 흉내를 내려 했다.

내년부터는 가족이 함께하는 밥상에 두 분 평소 좋아하시던 음식 두세 가지만 더 준비할 것이다.

 

먼 타지에서 근무하는 사위 없이 손주 하원 시간에 맞춘 7시쯤 현관문을 활짝 열었다.

초를 켜고 향을 피워 올리며 시작된 초혼.

 

이럴 때 마음에 둔 어느 분의 말씀이 다시 생각난다.

 

‘제사는 산자가 죽음을 마주하는 자리입니다.

죽은 자가 매개는 되지만 제사는 산 자에게 죽음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고,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되돌아보게 하는 자리가 되어줍니다.

제사는 죽은 조상이 후손에게 남겨준 선물 같은 것입니다.‘

 

언젠가 한 여성 작가분의 인터뷰 기사도 떠올랐다.

가족에게 평생 고통만 준 아버지가 죽을 만큼 미웠다고.

그러나 긴 세월이 지난 지금은 그저 낳아 주신 것 하나만으로도 감사하고 있다고.

나는....그러지 못했다.

 

상 앞에 앉은 딸아이와 부모님 생전의 에피소드를 풀어 놓다 기억에 잠겨 있던 그때가 생각나서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던 시간.

 

♪♬ 세월은 그렇게 흘러 여기까지 왔는데,

인생은 그렇게 흘러 황혼에 기우는데 .....

 

그다지 빠른 걸음도 아니었건만, 그새 몇 년 후면 나는 어머니 타계하셨던 당시의 나이가 된다.

그래서인지 점점 죽음과는 친근해지는 느낌이다.

 

부모님, 그리고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어린 나이에 우리 곁을 떠난 동생과의 조우를 간절히 희망하며, 생전에 효도하지 못한 여식이 오늘도 엎드려 고한다.

 

낳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모두가 힘들고 어려웠던 그 시절, 두 분의 울타리 안에서 큰 아쉬움 없이 자라게 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이렇게 가지 뻗어 참한 가족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편한 길 열어 주신 은혜 보답할 길 없어 죄송합니다.

 

이제 곧 5월, 부모님의 기억이 더 짙어지는 달이다.

 

외조부모에 대한 사랑이 깊은 딸.

내 부모님 기제는 내가 살아 있는 동안만이라고 못 박아 뒀다.

나의 기일 역시 챙기지 말 것도.

 

다만 후손에게는 존재의 통로로서 뿌리를 의식할 수 있도록 곁에서 길라잡이 노릇 잘 해 줬으면.....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심지 곧은 딸아이는 지금처럼 잘 해 나가리라 확신한다.

 

뭔가 알겠다는 표정인 거니?^^

 

이 세상에 저 홀로 자랑스러운 거

무어 있으리

이 세상에 저 홀로 반짝이는 거

무어 있으리

흔들리는 풀잎 하나

저 홀로 움직이는 게 아니고

서 있는 돌멩이 하나

저 홀로 서 있는 게 아니다

홍관희 홀로 무엇을 하리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