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끝의 집

I’ll always remember us this way

내가 숨 쉬는 너희가 좋아^^

시간을 따라서..../단상 또는 일상

사랑한다면 지켜줘야 합니다./아마존 밀림 대화제

헬로우 럭키 찬! 2019. 9. 1.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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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가 가슴이 먹먹해졌네요.

조금씩,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알고 알려져야 할 것 같습니다.

지구가 병들지 않게, 사랑하는 이들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2019.08.30.자 한겨레 신문에서 그대로 갖고 와 강조해 봤습니다.

제목이 너무 처절합니다.


'인류의 성벽, 숲이 사라진다'

 

[애니멀피플] 우석영의 동물+지구 미술관

17. 예로 야르네펠트, 커리어 앤 이브스, 산림에 대하여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의 지구관측 위성이 지난 15~22일 촬영해 공개한 사진에 광대한 아마존 밀림 지역 곳곳이 벌건 불길로 타고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나사 제공/AFP 연합뉴스


소녀가 우리를 들여다보고 있다. 가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빤히 들여다보고 있다.

경계하는 듯한 눈빛, 헝클어진 머리, 까맣게 그을린 얼굴, 찢긴 낡은 옷.

아동 노동의 주인공임을 여실히 말해주는 표상들이다.


소녀는 어떤 노동에 참여하고 있는 걸까?

한쪽에서 화염이 거칠게 일고 있는데,

가만 보니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되레 지피고 있는 모습이다.

 

핀란드 화가 예로 야르네펠트(Eero Järnefelt, 1863~1937)가 그린 이 그림,

덤불 태우기’(Burning the Brushwood, 1893)에서 우리는 핀란드인들의 풍속을 만난다.

숲을 태워 농지를 만드는 풍속 말이다.

이것을 우리는 화전(火田)’이라고 불렀다.

화가는 살아가기란 이렇게나 고된 것이라고 소녀의 형상으로 말하는 듯하다  


‘덤불 태우기’(Burning the Brushwood, 1893), 예로 야르네펠트(Eero Järnefelt, 1863~1937)


한편, 20세기 초까지 미국 뉴욕시에서 활동한 판화 회사

커리어 앤 이브스(Currier & Ives) 작 ‘시카고 대화재’(The Great Fire Of Chicago, 1871)라는 그림은 어떤가?


이 작품에서 우리는 무시무시한 화마(火魔)를 본다.

물이라는 절대적 대항마의 세력권이 아닌 한,

어디든 지배하려는 가공할 기세의 화마가 세상의 목줄을, 지금 움켜쥐고 있다.

야르네펠트의 불이 철저히 통제되는 불이라면, 커리어 앤 이브스의 불은 통제를 벗어난 불이다.


8월 들어 몇 주째 계속되고 있는 아마존 열대림의 화재는 어떤 쪽일까?

이 사건을 다룬 어느 기사에는 ‘인페르노(inferno)’라는 용어까지 등장했지만,

순수한 의미의 자연재해는 아닐 것이다.


‘스스로 타오른(自然)’ 자연산불이 아니라

‘숲 태우기’라는 관행으로 시작된 불이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 브라질에서만 무려 8만건이 넘는 ‘숲 불’이 목격되었다고 하니,

지금의 사태는 필시 지역민들이 일부러 놓은 불에서 촉발된 것이다.


커리어 앤 이브스(Currier & Ives) 작 <시카고 대화재(The Great Fire Of Chicago, 1871)>


‘덤불 태우기’의 주인공들이 그러했듯,

아마존 지역의 소농들은 먹고살기 위해 불을 놓고 있다.

콩 농사짓고 소 기르려고 늘 해오던 ‘숲 청소’ 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항변한다.

늘 하던 걸 할 뿐인데, 왜들 호들갑이냐고.


그러나 이들이 간과한 것이 있다.

이전보다 훨씬 더 건조해진 대기의 현실 말이다.


통제할 수 있다 생각하고 놓은 불은

전례 없이 메마른 대기 속에서 통제를 벗어난 화염으로 이어졌고,

이것이 문제를 키웠다.

야르네펠트의 불이 커리어 앤 이브스의 불로 옮겨붙은 것이다.


환경과학자들과 환경운동가들은 현재의 사태를 안타까운 심정으로 예의주시하고 있다.

탄소 저장고인 숲에서 탄소가 빠져나가면서 기후변화를 악화시키고 있기 때문이고,

아마존 지역 물 순환계의 중추가 손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조림을 통한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처방전의 경우

가장 효과 있는 숲이 열대우림인데,

그렇다면 가장 강력한 저지력을 지니는 ‘우리의 일꾼들’이 지금 대거 소실되고 있다.


길가메시와 엔키두가 훔바바를 죽이는 모습을 형상화한 돌 조각. 기원전 9~10세기경. 시리아 텔 할라프, 카파라 왕궁.


보이지 않는 것이 보이는 것을,

당연시되는 것이 당연시되지 않는 것을

지탱하고 보호하고 있는 세계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고,

숲은 전자에 속한다.


지구의 탄소와 산소와 질소와 물을 움직이고,

그러한 순환계들의 보호막 속에서만 우리의 마을과 삶이 유지되니 말이다.

그렇게 숲은, 우리의 성벽이다.


하기야 지금 아마존에서 일어나고 있는 재난은

지난 역사를 돌이켜볼 때 그다지 별난 사태는 아닐지도 모른다.


최소 3억8000만 년 전부터 지구에 있었던 숲,

그 안락한 품을 떠나지 않은 채 숲을 공격했던 호모 사피엔스의 운동이 문명이었으니 말이다.

기원전 2600년경에 기록된 <길가메시 서사시>는

이 문명의 본질을 대번에 알려주는 기록물이다.


서사시의 주인공인 길가메시와 엔키두는

삼나무 숲에 찾아가 그 숲의 신인 훔바바를 함께 죽이는 데 성공한다.

그러나 훔바바를 살해한 둘은 삼나무 숲의 일부를 취할 뿐, 숲을 다 없애지는 않는다.

그것이 그들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선택은 이른바 ‘지속가능한 개발’이라는 ‘어정쩡한’ 이름으로

오늘의 역사에도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우석영 환경철학 연구자·<동물 미술관>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