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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단상/프러시아 교육 잔재 유감

헬로우 럭키 찬! 2019. 8. 2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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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일련의 화제로 잠시 되짚어 본 우리의 교육현실.....

최근 일본의 후안무치하고 안하무인한 작태와 더불어

오늘날 제도교육의 근간이 되어 온 프러시아교육을 되짚어 봤습니다. 



 

세상 모든 정치꾼들은 국민의 정신을 지배하고

노예화 하는 교육에 혼신의 힘을 쏟아 붓는다는 진실이 허구임을 간절히 바라면서.....

 

이해하기 쉽게 풀어 쓴 이지성씨의 리딩으로 리드하라에 한 쪽 발췌해 봤습니다.

 

일단 프러시아는,

프로이센 왕국(독일어: Königreich Preußen) 혹은 쾨니히라이히 프로이센은

호엔촐레른 가가 지배했던 독일 북부 지역에 위치한 왕국으로,

1701118일부터 1918119일까지 존재했다.

이 왕국은 1701년에 성립해 1918년까지 존속했던 독일 제국의 중심적 역할을 한 국가였다.-다음 백과

    

- 리딩으로 리드하라 중


학교 교육은 프러시아(프로이센)에서 시작되었다는 게 정설이다.

 

당시 후진국이었던 프러시아는 유럽 열강의 반열에 오르고 싶었다.

그러려면 물불 가리지 않고 전쟁터로 달려가는 군인들과

공장에서 쉴 새 없이 물건을 만들어내는 육체노동자들이 필요했다.

 

어떻게 하면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를 엄청나게 만히 배출해 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프러시아 지배 계층의 눈에 어느 날 국민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계층의 자녀가 들어왔다.

 

그들은 농민의 자녀들에게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가 되는 교육을 시키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학교를 세웠다.

 

후일 프러시아는 독일제국에 합병되었다.

독일제국은 프러시아의 교육제도를 한층 더 발전시켜서

아예 군대식 학교를 세웠고 1,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영국은 1860년에 의무교육, 즉 공립학교 교육을 법적으로 제도화했다.

영국의 공립학교 교육도 프러시아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일제는 프러시아, 즉 독일에서 시작된 국민을 바보로 만드는 학교제도를 그대로 수입해

당시 식민통치하에 있던 우리나라에 이식했다.

 

쉽게 말해서

당신이 받은 학교 교육과 지금 우리나라 십대들이 받고 있는 학교 교육은

직업 군인과 공장 노동자를 생산하는 게 목적이었던 교육시스템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박노자 교수는당신을 위한 국가는 없다에서


일제는 조선인들을 그들과 무관한 침략전쟁에 동원하려 한 것이었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일본과 조선이 인종과 문화가 같고,

조상이 같다는 부분을 역사 교과서에에서 특별히 강조했다.

 

또한 대원군이 이미 구미인들을 싫어하며 프랑스, 미국과 전쟁을 벌인 것이나

조선인들이청일전쟁이나 러일전쟁 때에 일본 편이었다.’는 것을 부각해

미국과의 전쟁에서 조선인이 일본인과 함께 서야 한다는 점을 애써 이해시키려 했다.

 

식민지의 억압적인 상황에서 늘 지배자 앞에 위축돼야 하는 식민지 남성의 심리를 고려해서,

조선 아동이 읽어야 할 교과서를 적을 훌륭하게 물리치고 산화한 영웅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채웠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가난한 평민으로 사회에서 어떤 의미있는 삶을 살기가 어렵던 식민지 남자아이들은

러일전쟁 때 행방불령이 된 부하를 구하기 위해서 구명보트를 탔다가 러시아군의 포탄을 맞고 즉사해

나중에 일본에서 군신’, 즉 최고의 영웅으로 모셔진 히로세 타케오 중좌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얼마든지 그처럼 되고 싶은 충동을 느낄 수 있었다.

 

바로 이와 같은 수업을 진지하게 받아들인 조선 아이들은 나중에 일본군에 자원입대하고,

나아가서 가미카제 특공대에 자원 입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노골적인 폭력으로 달성할 수 없는 것을 집요한 교육 정책의 노력을 통해 달성할 수 있었다.


일제 패망 소식에

며칠 동안 일본 군가을 부르면서 울었다는 시인 김시종의 회고나

일제 말기까지 생각마저도 일본어로 했다는 윤이상의 회고는

교육을 통한 황민화가 얼마나 지독하게 효율적 일  수 있었는지 잘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