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비백산, 나르다시피 광속으로 산을 내려온 오늘의 사건은 이렇게 시작되었다는...
갓난이 때부터, 잠 들지 않으려 젖 먹은 힘 몽땅 쏟아 붓는 것을 줄창 봐 왔던 터라
요즘처럼 기상시간 아침 10시도 불사하는 손주가 도무지 신기할 따름.
그 덕인가봉가, 키는 훌쩍 큰 것 같다.
녀석들 깰 때까지 흰돌메 공원이나 돌고 오자 싶어 나선 바닷길에 햇살 받은 흰동백이 너무 고와서......
처음 걸어보는 남파랑길.
웅동을 잇는 차도 아래로 내려서면 닿을 듯 가깝게 바다와 곁하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계단을 오르면 흰돌메 공원이 있다.
타원으로 도는 내내 딸네 아파트도 보이고.......
아....참, 화려하긴 하다.
군항제가 취소되었다지만 굳이 이 풍경이어야 한다며 들어오는 사람들은 막을 수 없을 터,
꽃이 지면 바이러스가 난동을 부리지는 않을까 염려스럽네.
해파랑길 돌아 막 공원을 오르고 있는데 그새 두 녀석이 따라 붙었다.
아침 먹거리까지 챙겨서^^;;
돗자리 위에 펼쳐 놓은 쑥떡이랑 약과, 샌드위치, 커피....
화려한 벚꽃으로 둘러싸인 공원의 텅 빈 데크와
푸짐한 아침상, 등에 내려앉은 햇살이 너무 따뜻했고 우린 그 시간을 마냥 즐겼다.
그리고....
그리고 눈누난나♪♬♩ 피톤치드 샤워
이렇게 예쁜 길을 따라 걷다 어머, 고사리야! 하면서 내가 엎드린 순간,
갑자기 곁에 붙어 있던 손주가 뛰고,
곧 이어 딸아이가 내게 뭐라고 소리 지르며 내달리는데 덩달아 날라뛰던 나는 분명 '뱀'이라고 생각했다.
맷돼지로 알아들었다면 최소한 광속 달리기는 아니었을 거다.
왜냐하면 나는 맷돼지보다 뱀이 더 무섭거든. ㅎ
30분 올랐다가 내려 온 시간은 기적 같은 1분.
다행히 4마리의 맷돼지들은 사람길을 피해 길 없는 등성이를 따라 어슬렁거리더란다.
산 아래에서 올려다본 사람들의 말이다.
아아.....다리야, 평생 써 먹어야 할 연골 다 닳았네.
뭐, 어쨌거나 무사했으니.ㅎ
이후 딸아이는 길 가의 잔디 스치는 소리에도 심장이 쫄깃해 지는 증세가 생겼다는....
산에는
아무 죄 없는 짐승과
에레나보다 어여쁜 꽃들이
모여서 살기에 아름다웁다
서동주 ‘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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