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여 히키코모리 될라.
즐겨하는 모든 것들이 퇴직 후 집에서도 완벽하게 가능하므로 더 두려운 거다.
건강한 식재료 챙겨서 먹고 싶을 때 먹고,
음악 듣고 싶으면 그런대로 만족스런 음을 질러주는 스피커 켜고,
그때그때 생각나는 책 꺼내 읽고, 다시 변덕이 발동하면 TV나 컴터로 영화도 보고.....
이렇게, 아직은 잠 자는 시간도 쪼개고 싶을 만큼 24시간이 마하 속도로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집콕이 당연한 일상으로 고착화되는 순간 나는 좀비에 다름 아닐 터,
솔직히 시작부터 안과 밖의 균형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한다는 강박증이 또아리를 틀었고
곧 끊임없는 담금질의 필요성을 자각했다는...
해서...
어차피 당분간은 사회적 거리 두기에 최대한 동참해야 하므로
대중교통의 도움이 필요 없으면서 인적이 드문 주변 찾아들기부터 습관을 들여 보기로 했다.
딸, 손주와 함께 할 때는 가볍게,
나 홀로 운신 때는 초오큼 레벨을 높여서.(그래봤자 동산 수준이고.ㅎㅎ)
어쨌거나 혼자서는 뒷산만 몇 번째 오르고 있는 중이다.^^;;
이러다 지겨워 질라나.
그러면서 오래 전 생각 깊게 보았던 애니메이션 ‘스카이 크롤러’를 떠올렸고, 곧 이어 무미건조한 유이치의 음성이 따라왔다.
"늘 같은 길을 걸어도 밟고 지나가는 곳은 매일 다르다.
늘 같은 길이라도 경치는 늘 변한다.
변화는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렇다,
오늘도 나는 또 달라진 풍경을 보면서 오르고 있으니....
꽃을 거의 떨어 낸 자리에 발그레한 잎을 내고 있는 벚나무와
눈물처럼 뚝뚝 떨어져 뒹굴고 있는 진달래 곁에서 철없이 헤벌쭉한 하얀 철쭉이 또 화려하더라.
근데 넌 누구야?
다음 탐색창에 넣어 봤을 때 벚꽃일 확율이 80퍼 이상이라고 하는 걸 보면 이것도 벚꽃종인 듯하다.
멀리서 보면 상고대 같기도 한 나무.
무심코 보다 '깜딱'했던 등걸.
길손에게 먹거리 구걸 중인 하마 같다. ㅎ
근데 너 원주민 맞아?
그동안 왜 내 눈에 띄지 않았냐고.
이 어마어마한 당당함.
진달래보다 훨씬 건강해 보이긴 하지만 '곱다'는 느낌보다 화장 짙은 처자를 보는 것 같다.
안국사 입구.
빛이 제법 오래 머무는 곳인데도 아직도 화사함 뿜뿜 중인 벚나무가 있네.
그러고 보니 곧 ‘석가탄신일’,
이제 everyday 휴일이라^^ 공휴일 바라며 손꼽을 일이 없어 졌으니 덩달아 무감해 졌다.
올해는 만연하는 바이러스로 종교행사까지 모두 딜레이 되었다고는 하나,
유독 개신교만 머리 싸매고 있다는 소식.
인간에게 위안이 되어야 할 종교가 오늘날에는 그들의 자유를 구속하는 거추장스러운 존재가 되어버린 것 같다.
세계 석학들의 생각을 엮어 놓은 ‘신 없음의 과학’은 묻는다.
‘신에 얽매일 것인가, 과학으로 자유로워질 것인가?’
하산길은 가산초등학교 쪽.
처음 가 보는 길이다.
오르던 내려가던 길은 항상 여러 갈래이니....
조건 내걸지 않고 화수분 같은 사랑을 퍼 주는 부모님은 가장 위대한 신이다.
기적이란 그러한 인간의 간절한 마음이 주는 선물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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