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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덤/영화, 프레임 속의 세상

오래 전의 영화 '프라하의 봄'

헬로우 럭키 찬! 2012. 11. 4. 1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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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의 봄(1988년)

감독 : 필립 카우프먼

출연 : 다니엘 데이 루이스, 줄리엣 비노쉬, 레나 올린, 데렉 드 린트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원작으로 네 명의 남녀라는 한정된 캐릭터를 설정하여 그들의 애정관계를 통해 삶에 있어서의 무게를 측량해 본 작품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무게가 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계량할 수 없는 또 다른 의미의 무게가 존재한다. 세월에 의한 각자의 정신적 변화에서 또한 삶의 무게는 달라지기도 하니까.

자신이 처한 상황, 사물에 대한 가치관에서 오는 갈등의 차이, 관계에 따라 매겨지는 주관적 무게 같은....

 

평범에도 못 미치는 환경에서 굳어진 테레사의 무거운 삶, 한 번 뿐인 삶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벼울 수밖에 없다는 전도유망한 프리섹스 주의자 의사 토마스, 삶을 굳이 복잡하게 만들고 싶지 않은 예술가이자 토마스의 섹스 파트너 사비나, 사비나의 가벼움에 매료당한  고지식하지만 진실을 추구하는 대학교수 프란츠.......

4사람의 사랑을 통해 삶의 무거움과 가벼움이 시소 타기를 하고 있다.

 

가벼운 삶을 추구하는 토마스와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사비나. 토마스가 결혼하자 스스로 그 무게를 감당하기 싫어 그에게서 멀어진다. 

 

친구 대신 수술차 방문한 시골 마을에서 우연히 만나 우여곡절 끝에 결혼까지 하게 된 토마스와 테레사.

그러나 테레사를 사랑하면서도 그녀의 무거움이 부담스러워 끊임없이 밖으로 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프라하의 봄이란 1968년의 ‘체코 사태’로 당의 제1서기 두브체크가 앞장선 소련에 대한 자유화 운동이다. 영화에서 하나의 배경으로 설정한 이 제목은 체코를 겨냥한 소련의 무거운 집착과 얽매이지 않은 상태에서 자유롭고 가볍게 살고 싶은 체코의 희망을 담고 있다. 이러한 무거움과 가벼움에 대한 대립적 구도가 주인공들의 삶에 줄 수 있는 영향을 보여 주는 동시에, 삶이란 한 개인에 의해 그 무게가 규정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상황들이 변수가 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가감된다는 것을 말 하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영화는 큰 틀을 축소시켜 사랑이라는 하나의 주제에 포커스를 맞추고 그 영역 안에서 사실은 너무나 인간적인 네 남녀가 추구하는 사고의 무게를 다루며 변화를 좆는다.

 

방황 끝에 안주하게된 시골 마을. 서로의 무게를 나누고 지탱하며 조금씩 변화해 가는 두 사람

 

sad ending이 싫다.

오래 남을 짠한 느낌이 이젠 싫다.

두 번 째 보면서도 여전히 따꼼따곰하게 남는 아픔을 견디는 것이 싫다.

....사고 현장을 남기지 않고 직전의 평화로운 장면으로 엔딩을 처리해 버린 가슴 녹아내리는 여운이 의외로 길고 오래 가는 게 또한 싫다.

 

마지막 장면.

테레사 : “무슨 생각 해?”

토마스 : “너무 행복하다는 생각...”

.....안개 자욱한 숲을 달리는 자동차 속에서 마지막으로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두 사람의 대화.

 

다니엘 데이 루이스....그는 여기서도 시종일관 눈을 뗄 수 없게 만들었다.

 

*** 프라하의 봄

1956년 소련 내에서 흐루시초프에 의한 스탈린 격하운동이 일어난 후에도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스탈린주의자인 노보트니 정권의 보수정책이 계속되었고, 1960년대의 정체된 경제에 대해 국민의 불만이 높았으며, 자치권을 제한받던 슬로바키아 민족의 감정도 악화되어 있었다. 이와 같은 상화에서 1968년 1월 총회에서 노보트니가 당 제1서기를 사임하고 개혁파인 두프체크가 그 자리를 맡아 국가 주요요직에 개혁파를 임명했으며, 4월에는 다음과 같은 행동강령을 발표했다. ① 재판의 독립, ② 의회제도의 확립, ③ 사전검열제의 폐지, ④ 민주적인 선거법제도의 창설, ⑤ 언론·출판·집회의 자유 보장, ⑥ 국외여행·이주의 자유보장, ⑦ 경찰정치의 종식, ⑧ 공업·농업 부문의 개혁 ⑨ 체코 슬로바키아의 동등한 권리에 의한 연방제 이행, ⑩ 자주독립에 대한 대외정책 추진, ⑪ 과거에 권리를 박탈당한 모든 시민의 완전한 복권 등이다. 두프체크는 이와 같은 개혁조치를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라고 했는데, 언론·집회·출판 등이 자유화되면서 체코슬로바키아에서는 잠시 동안의 '프라하의 봄'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체코슬로바키아 사태가 동유럽으로 파급될 것을 우려한 소련군은 1968년 8월 20일 브레주네프 독트린을 앞세우고 바르샤바 조약기구의 5개국군 약 20만 명으로 체코슬로바키아를 침공해, 두프체크를 비롯한 개혁파 지도자들을 소련으로 연행했다. 이로써 프라하의 봄은 끝나고 1969년 4월 당 제1서기가 된 후사크에 의해 사태가 수습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