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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국사/수로왕 설화에 얽힌 러브스토리

헬로우 럭키 찬! 2015. 11. 15.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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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터 가꼬예요?(놀이터 가는 거예요?^^;;)”

, 가는 길에 잠시 들를 곳이 있단다. 너도 좋아할 거야.”

 

며칠 전 인터넷 탐색창에 경남의 고요한 사찰을 넣었더니 흥미롭게도 금관가야의 설화를 품고 있다는 한 사찰이 눈에 띄었습니다.

딸네와 가까운 강서구 지사동의 흥국사(興國寺)’라고.

 

동생네 넘어가서 때 이른 김장을 해치운 토요일 오후, 내일의 순조로운 일정을 위해 딸네로 들어갔습니다.

 

 

 

승용차로 10여 분 거리의 사찰 초입에는,

단풍 고운 산 하나가 반 쯤 잘려나간 흉한 모습으로 입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시쳇말로 이판사판 공사판이었어요.

인간의 탐욕과 이기利己는 이 나라 강산이 몽땅 뭉개지고 깎여 나갈 때까지 계속될 것 같은 기세입니다.

오르기 힘든 깊은 산 속에서 우리 역사와 함께 해 온 많은 고찰들이 이제는 도시의 소음으로 가슴 아프게도 옛 기운을 잃어가는 중입니다.

 

주차장 아래 개울은 낙엽 때문에 물길이 막혔어요. 길 따라 갈 수 없는 나뭇잎들이 수문^^ 앞을  뱅글뱅글 돌고 있었습니다. 

 

 

공사장을 짧게 통과하여 들어 선 오솔길의 오른쪽이 흥국사와 닿아 있는 길입니다.

 

 

 

 

 

이 곳이 주차장입니다. 우리 차 까지 모두 4대의 차가.....

정말 정말 고요했어요.

 

 

 

 

 

 

 

 

 

 

 

 

 

엄마, 정말 드물게 맘에 드는 곳이야, 종일 앉아 있으래도 그렇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너무 편안하고 아늑하네.’

산사를 쓰다듬는 듯한 스님의 경 읽으시는 소리가 나지막하게 울립니다.

그것은 새 소리, 바람소리, 시냇물 흐르는 소리와 함께 태곳적 부터 그 곳에 머물러 왔던 자연의 하모니 같았습니다.

 

 

 

 

 

 

 

 

탁한 마음으로 둘러봐도 돈을 쌓아 올린 것 같지 않은, 옛 기품을 그대로 간직한 사찰 같아 왠지 기대고 싶어졌습니다.

 

마당 가장자리의 대나무 평상에 걸터앉아 둘러보는 흥국사 주변 풍경은 그지없이 고요하고 평화롭군요. 화려하고 거대한 신축 건물 없이도 어째서 이토록 눈이 부실까요.

길고 험한 역사의 소용돌이를 헤쳐 나오면서도, 정중동의 자세를 잃지 않고 민중의 의지처가 되어 준 흥국사는 오늘도 잔잔한 안식의 소리가 되어 우리가 떠나는 길목까지 따라 나서주었습니다.

 

 

+흥국사(興國寺)

 

낙동강 하류지역은 고대부족국가인 금관가야국이 있던 곳이다. 이곳에 가야국의 시조인 김수로왕과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로 알려져 있는 그의 아내 허황옥이 운명 같은 만남을 이룬 곳이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결혼'으로 기록되는 이들의 만남은 허황옥이 멀리 인도지역의 아유타국에서 대규모 인원을 이끌고 돌배를 타고 옴으로써 시작된다. 그 뱃길에는 허황옥의 오빠인 장유화상도 동행했는데, 거친 파도로 인해 여러 번 실패하고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자 그가 진풍을 위한 파사석탑을 배 안에 올렸고, 신기하게도 그 이후로 파도가 잦아들어 가락국에 이르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오층석탑이 현재 경남 김해 구산동의 수로왕비릉에 보존되고 있다. 실제로 파사석탑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되지 않는 돌로 확인되기 때문에 더욱 더 전설에 대한 신뢰감을 높여주고 있다.

 

수로왕 설화와 연관된 곳으로 부산의 강서구 지사동의 신명마을을 지나 있는 너더리 고개와 흥국사, 명월사터, 망산도와 유주암 등이 있다.

 

너더리 고개는 경남의 김해와 진해와 부산을 연결하는 통로로,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전국 보부상의 내왕이 잦았던 주요 교통로였다. 송정동에 있는 망산도와 유주암은 허황옥이 처음 가야 땅에 도착한 지역으로 전해지는데, 망산도는 김수로왕의 신하들이 허황옥을 기다려 그녀를 맞은 곳이고, 유주암은 그녀가 타고 온 돌배가 뒤집혀 생긴 것이라고 한다.

 

수로왕과 허황옥이 만나게 된 사연은 이렇게 시작된다.

서기 4233일이다. 하늘에서 구지봉으로 금상자가 내려와 그 상자 안의 6개 알 중 1개의 알에서 어린 애가 나왔다. 세상에 처음 태어났다고 하여 이름을 수로(首露)라 하였다. 수로는 9척의 큰 키로 자라 그달 보름날에 왕위에 올라 금관가야의 임금이 되었다.

나라를 세운 지 7년이 지나도 왕비가 없자, 신하들이 왕비를 들일 것을 청한다. 수로왕은

짐이 여기에 내려온 것은 하늘의 뜻이고, 짐의 배필이 될 왕후도 역시 하늘의 뜻에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신하 유천간(留天干)에게 망산도에 가서 왕비가 될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을 맞으라고 명한다. 망산도는 육지로 들어오는 배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곳이다. 실제로 허황옥 일행이 탄 돌배(石舟)가 적황색 깃발을 휘날리며 용원 앞바다에 모습을 드러내자 유천간이 봉홧불을 들고 일행을 맞았다. 유천간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수로왕은 왕비를 맞이하기 위해 그 길로 포구 인근 행궁으로 달려갔다.

 

인도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의 운명은 아버지의 꿈에서 비롯된다. 아유타국의 왕인 아버지는 어느 날 밤, 꿈에서 하늘의 말씀을 전해 듣는다. 배를 타고 동쪽 위로 끝까지 올라가 도착하는 나라에 딸의 배필이 있다는 내용이었다. 곧바로 아버지는 허황옥과 장유화상 두 남매를 돌배에 태워 먼 길을 떠나보낸다. 뱃멀미와 두통에 시달리며 수개월을 거친 바다와 싸우며 드디어 동쪽 끝 운명의 가야 땅에 도착했고 가야의 신하들이 그녀가 올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반갑게 맞이한다.

 

허황옥의 일행은 산 바깥쪽의 별포 나루에 배를 매어두고 육지에 올라 잠시 쉬고 있었다. 거기서 입고 있던 비단 치마를 벗어 산신령에게 예물로 드린다. 가락국의 신하들이 허황옥과 장유화상 일행을 영접했다. 그리고 그들을 수로왕이 있는 행궁으로 안내해 수로왕과 허황옥의 운명적인 첫 만남이 이루어진다.

 

왕은 신하들을 물리치고 단 둘이 산으로 올라가 산골짜기에서 이틀 밤낮을 보내고 부부의 연을 맺는다. 부부의 의식을 치르고 돌아온 수로왕은 허왕옥이 타고 온 배의 사공들을 치하해 쌀과 피륙 등 선물을 주고 본국으로 돌려보낸다. 그리고 두 사람이 초야를 치룬 산의 이름을 기념하여 명월산이라 부르도록 하였다.

오늘날 보배산이다.

허황옥의 아름다운 하얀 얼굴이 그 날 밤 둥글게 떠있는 달의 모습을 닮았기 때문이라 한다. 허황옥이 폐백을 드린 곳에 절을 지으니 이곳이 명월사다.

 

수로왕 수로왕과 허황후는 가락국의 수도인 김해로 환궁해서 10명의 아들을 낳고 평생을 해로하며 가락국을 태평성대로 이끌자, 이후 명월사를 크게 증축하게 하고 많은 토지를 사전(寺田)으로 하사했다.

이 덕분에 절이 크게 번창했고, 신도 또한 300명이 넘었다고 한다. 추가로 세 절을 세워 신((() 세 글자에 '나라 국()' 자를 붙였다. 나라를 위해 축원장소로 활용하려는 것이다.

신국사(新國寺)는 세자를 위하여 산 서쪽 벼랑에 지었고,

진국사(鎭國寺)는 허왕후를 위해 산 동쪽 골짜기에 세웠고,

왕 자신을 위해 증축한 흥국사(興國寺)는 산 가운데에 두어, 삼원당(三願堂)이라 불렀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진 것을 1706년 복원할 때 절 담 밑에서 '건강 원년(144) 3월 장유가 서역에서 들어와 불교를 전하니 왕이 깊은 마음으로 부처를 숭배했다'는 글이 적힌 유물을 발굴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고, 명월사 창건과 중창 내력이 기록된 명월사사적비와 수로왕과 허황옥 공주의 만남을 증거 하는 돌조각이 남아 있을 뿐이다. 이 돌조각에는 부처상 양 옆으로 인도의 나가()’ 신앙을 의미하는 코브라상이 있어 인도에서 시집왔다는 전설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대웅전 옆에 설치된 '가락국태조왕영후유허비'에는 허황후의 방문을 기념하는 석비가 남아 있다.

 

수로왕과 허황옥의 이야기는 이 지역에 전하는 세 가지 영이한 이야기 중에서 첫 번째로 꼽힌다. 가야를 강력한 철기문화를 가진 나라로 발전시켜 중국, 일본은 물론 동남아 인도까지 활발한 교역을 벌였던 고대 군왕으로 평가받는 수로왕, 무려 150살까지 장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고 왕릉은 김해에 있다.

출처:http://story.busan.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