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끝의 집

I’ll always remember us this w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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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따라서..../단상 또는 일상

자살한 왕따의 눈물이.....

헬로우 럭키 찬! 2011. 12. 26.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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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이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일본 애니 ‘블리치’에 나오는 호로처럼 조만간 아이들의 가슴이 뻥 뚫려 인간의 감정을 몽땅 잃어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기우를 지울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어디에서 누구를 통해 마음을 찾아야 할까요?

 

버스 안에서, 빈 눈동자로 창 밖을 향해 시선을 고정 시킨 채 멍하니 서 있는  아이들이나 하하호호 조잘대는 아이들이나, 보고 있으면 왠지 마음이 짠해져 옵니다.

리쌍의 노래가 생각나더군요.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야....’

 

오늘 영양사를 통해 들은 교감선생님의 한 마디는 그렇게 먼저 떠난 아이들의 서러운 눈빛이 오버랩 되면서 더욱 가슴이 미어집니다.

‘교사 위에 사람 없고 교사 아래 무수리 있다.’

하는 마음의 소리가 나한테까지 전해져 오는 것 같습디다.

박봉에 종일 엄청난 음식 해대느라 어깨 빠지는(사실 늘 그분들한테서는 파스 냄새가 납니다.) 조리원들께 교사들을 무척 위하시는 자상한(?) 발언을 하셨다던 교감샘.

‘교사들한테 김장 담궈 주면 모두 좋아할텐데.’

모두?

‘어떤 학교는 그러고 있다.’

그래서  어쩌라고.(농담이라 쳐도 기막힌 발상입니다.)

그러는 당신은 언제 그 분들 힘들다고 눈깔사탕이라도 한 개 나눈 적 있었나...

수고 한다고 진심으로 다독여 준 적 있었나,.....

점심 먹으러 갈 때마다 마주치는 그 분들이 안쓰러워 뭐 하나 챙겨 드릴 거 없나 살피는 사람도 있는데...저 분...저렇게 얼어 붙은 마음으로 아이들 위에 군림하고 있었구나 생각하니 목구멍이 막혀 왔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눈높이’라는 말이 교육의 대명사처럼 마구 쓰이고 있습니다. 마치 그것이 궁극적인 대안인 것 같군요. 그렇지만 학습이나 생활면에서 아이들의 눈높이를 제대로 측정하여 맞춰 줄 수 있는 교사(모든 가르치는 사람들)가 얼마나 될까요. 아이들의 작은 꿈을 인정하고 격려해 주는 부모는 몇이나 될까요. 교과부는 그 모든 것에 관심을 두고 청사진으로 그려 본 적이나 있었을까요.

 

공부만 잘 하면 만사형통이라는 현실의 벽을 올려다보면서 1등을 빛나게 해 준 공로(?)조차 배려 받지 못 하는 꼴찌들의 꿈은 결국 막다른 골목의 어둠으로 저물어 갑니다.  그리하여 기성 교육이 자만의 팔짱을 끼고 방관하는 사이 보이지 않는 어둠 속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받은 상처를 전혀 상관없는 더 아래 약자에게 무차별적으로 분출하며  보상 받고 있는 듯 보입니다.  하여도 지금...교과부나 교사나 학부모나 모두 책임 전가하기에 급급하고 각각의 다른 꿈을 가진 아이들의 이야기는 그렇게 묻혀 가고 있습니다.

 

친구들의 괴롭힘으로 벼랑까지 몰린 한 착한 아이가 또 세상을 등졌습니다.

가해자,피해자...모두 학교생활에서는 보통의 아이와 다를 바 없는 녀석들이었다는데....

매스컴을 통해 알려진 가해자의 행위는 14살 아이들이 한 짓이라고 보기엔 너무나 가혹했습니다.

 

그러나 친구에게 했던 그렇게 잔인한 행위를 단지 장난이었다는 말로 눙치는 아이들을 향해 함부로 돌팔매질 할 수 없는 것은 여전히 대안 없이 핑계만 대는 그 어른들 속에 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기대에 찬 마음으로 가꾸고 품어 온 아이들의 작고 다양한 꿈들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세상이 오기를 바라면서 사랑하는 가족을 뒤로 하고 서럽게 먼저 떠난 또 한 아이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