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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로우 럭키 찬! 2015. 12. 2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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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군과 같이 온 천주교 신부, 기념공원은 왜 만들지?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 '세스페데스 공원' 조성... 반대 목소리 나와

2015.11.24 김유철(news) / 오마이 뉴스

 

'나더러 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던데, 조국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거든. 솔직히 라는 존재에 무관심했잖아? 나라가 나를 먹여주고 입혀주고 지켜줬다고 하는데, 나도 법 지키고 교육받고 세금 내고 할 건 다 했어.'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에서 헬조선을 탈출하여 그래도 조금은행복할 것 같은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난 주인공의 말입니다.

 

대한민국 1%를 위해 존재하는 흙수저 노오력 세대를 대변하는 그녀의 이러한 항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와중에 아무래도 좋은자들의 행태는 여전히 도처에서 고공행진 중입니다.

서민들이 힘겹게 지켜내고 있는 국가의 자존심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이 무식쟁이 천것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 걸까.....이를 염려하는 기사가 있어 눈여겨보았습니다.

 

 

경남 창원시가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에 '세스페데스 공원'을 조성하고 있어 논란이다. 스페인 사람인 세스페데스 신부는 1577년 일본에 선교사로 왔다가, 159312월 정유재란 당시 왜군과 함께 창원 진해 웅천으로 들어왔고, 1년 정도 머물다 일본으로 돌아갔다. 천주교 마산교구 민족화해위원회 집행위원장인 김유철 시인이 세스페데스 공원에 반대하는 글을 보내와서 싣는다 [편집자말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웅천왜성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만든 성으로, 현재 경남도 기념물 79호로 지정되어 있다. 윤성효

 

 

창원시는 무슨 일을 하려는 걸까?

역사 국정교과서 논란이 한창이다. 아니 한창이 아니라 일방적으로 진행 중이다. 역사교육이 잘못되면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창원시가 직접 보여주려 세금 3억여 원을 쏟아서 하고 있는 일이 있다. 창원시는 도대체 왜 이 일을 하려는 걸까?

사진 출처 : http://media.daum.net/press/newsview?newsid=20151130170203509 

 

안상수 창원시장은 스페인을 상징하는 우리나라 대표공원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데...

 

 

창원시는 현재 진해구 남문동에서 '세스페데스 공원'1130일 개장식에 맞추어 공사를 하고 있다. 이미 있는 세스페데스 신부 기념비를 공원 한가운데로 옮기고, 주변에 스페인식 정원을 조성한다. 또 공원 둘레에는 세스페데스 신부가 조선에 첫발을 내딛는 장면을 황동으로 형상화한 조형물을 세운다. '세스페데스' 공원을 입안하고 승인하고 최종 결재한 관계자들에게 묻고 싶다.

그대들에게 임진왜란은 어떤 전쟁이었느냐고.....

 

1592년부터 1598년까지 '', 즉 현재의 일본이 한반도 전역을 짓밟았다. 정유재란을 포함하여 그것을 우리는 임진왜란이라 부른다. 이 당시 왜(일본)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봉건적인 지배권을 강화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으며, 싸움에서 얻은 강한 무력과 유럽 상인들을 통해 접할 수 있었던 새로운 무기를 바탕으로 신흥 세력을 억제했다. 나아가 정권의 안전을 도모하려 대륙 침략의 길을 시작했다. 그 시발점이 임진왜란이다.

 

1592523일 고니시 유키나가를 선봉장으로 병선 700여 척이 부산포에 상륙한 뒤 30여만 명의 왜군이 조선을 파죽지세로 유린했다. 알다시피 조선의 임금인 선조는 백성을 버리고 평양을 거쳐 의주로 도피했다.

 

이 전쟁을 통해 왜군에게 한민족은 얼마나 많은 피해를 보았을까? 그것은 21세기를 사는 한국인들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왜란이 끝난 후 조선의 인구가 매우 감소했다는 점과 많은 사상자가 왜군의 '코 베기' 작전으로 코가 떨어져 나갔다는 사실은 할 말을 잊게 만든다.

 

세스페데스(Cespedes, G.) 신부는 스페인 사람이다. 그는 1577년 일본에 선교사로 왔다. 일본에 체류하고 있던 세스페데스 신부는 159312월 고니시 유키나가의 초청으로 조선땅 웅천(지금의 창원시 진해구)으로 건너와 1년 정도 머물다 일본으로 돌아갔다.

 

2006년 천주교 마산교구가 주최한 세스페데스 관련 심포지엄에서 당시 한국외국어대학교 박철 총장은 "지금까지 자료만으로 세스페데스 신부가 한국인들에게 복음 사업을 했는지에 관한 직접적인 기술을 충분히 찾을 수 없었다. 발견된 자료와 편지에 의하면 세스페데스 신부는 일본군의 요새 주위에서만 복음을 전파하였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스페데스 신부의 고향인 스페인 알까르데떼 주민들은 그가 웅천에 온 지 400주년이 되던 해인 1993년 기념비를 만들어서 당시 진해시에 전달했고 현재의 창원시는 그 기념비를 두어 번 옮겨가며 창원시 진해구 남문동 918번지에 두었다. 그것으로 이 땅에 온 최초 서양 도래인에 대한 기념은 된 것이다.

사진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area/718784.html

 

창원시는 임진왜란 때 왜군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의 초청으로 조선에 왔던 세스페데스 신부 를 기념하는 ‘세스페데스 공원’을 그가 머물렀던 왜군 성인 웅천왜성 인근에 조성해 오는 30일 개장한다.

 

현재 공사와 관련하여 창원시의 "세스페데스 공원을 관광 명소화 하여 후대에 역사적 사실을 전승하기로 했다"는 말은 귀를 의심하게 한다. 임진왜란 동안 코 베이고, 귀 베이고 말로 다하지 못할 치욕을 겪은 이 땅의 후손들이, 그것도 왜성이 있던 지역의 후손들이 임진왜란에 일본군을 따라 조선에 온 신부의 기념공원을 조성한다는 것은 조상을 욕되게 하는 일이다.

 

임진왜란은 1598년 일본의 퇴각으로 끝난 전쟁이 아니라 그로부터 300년 후 1905년 을사늑약으로 조선이 완전히 망한 치욕의 역사로 이어지는 전쟁임을 기억해야 한다. 천주교계에서도 세스페데스 공원 사업에 대한 거부 의사를 분명히 밝혀야 하며, 창원시는 모든 것을 원점으로 돌려놓아야 한다. 그곳은 국내에서 가장 큰 가마터 유적이 발굴된 우리 문화유산의 터다.    편집 박정훈 기자

 

 

 

참고로 창원일보의 진해시민의 신부소개문 수정 요청 기사를 올립니다.

이런 분들의 적극적인 의견은 무식꾼들이 드러내놓고 활개치는 것을 견제할 수 있습니다.

 

진해구 거주자이다. 진해구 웅천동에 있는 세스페데스 신부 기념 공원내 세스페데스 신부소개문에 대해 수정을 요청한다. 

세스페데스 신부는 임진왜란시 침략군인 일본군을 따라 당시 조선에 포교를 하고자 조선에 들어온 사람이다. 기념비 소개 내용은 세스페데스 신부가 당시 조선에서 조선을 위해 무슨일을 했는지도 불명확하며 기념비 문구에도 단지 조선에 1년여를 머물다 일본으로 돌아갔다는 내용 밖에 없다.
과연 이런 인물을 기념하고자 예산을 들여 공원을 조성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또한 그를 소개하는 문구에는 그가 조선으로 들어와 천주교 병사에 대한 복음과 영세를 전했다 했는데 그 천주교 병사가 과연 조선의 병사였는지 조선의 침략에 앞장섰던 일본군 병사였는지 궁금하다.
 

과연 조선 침략군이었던 일본군을 위해 활동했던 신부의 기념비를 대한민국 진해구에 세워  기념할 만한 사안인지 궁금하다. 따라서 기념비 앞 소개문 내에 있는 천주교 병사에게 복음과 영세를 전했다는 문구는 삭제하는 것이 옳다.          유 모씨(창원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