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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수스님의 소신공양과 4대강 살리기 사업

헬로우 럭키 찬! 2012. 11. 26.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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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신불에 대한 자료를 뒤지다 한 블로그에서 퍼 온 글이다.

눈물이 흘러 주체하기 힘들었던 .......

자연스러움을 거스르는 행위가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임을 소신공양으로 보여 주신 문수스님의 거룩한 희생 앞에  눈 앞의 당근이 만족스러운 나의 오늘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소신공양’ 문수·틱광득 스님과 등신불(等身佛)/정운현의 역사 에세이] 2010/06/07 09:22 정운현

http://blog.ohmynews.com/jeongwh59/264843

 

  KBS TV문학관에서 극화돼 방영된 소설 <등신불>에 등장하는 등신불 모습

 

요즘도 국어 교과서에 ‘등신불(等身佛)’이 실리는 지는 잘 모르겠다.

‘등신불’은 소설가 김동리가 <사상계>(1961년 11월호)에 발표한 단편소설이다.

(* 참고로 ‘등신불’이란 사람의 몸(키)과 같은 크기로 만든 불상을 말함)

이 소설은 주인공이 1인칭 화자로 등장해 젊은 시절 자신의 목격담을 기록한 것이다.

절에 모셔진 부처님이라면 우리는 늘 금칠을 하고 미끈하게 잘 생긴 형상만 떠올려왔다.

그런데 사람의 몸으로 만든 부처님이 있다니, 그것도 불에 탄 모습으로.

비록 소설로 접한 것이지만 그 때의 충격이란 지금도 가시지 않는다.

젊은 독자들의 위해 소설 <등신불>의 줄거리를 ‘네이버 지식iN’에서 찾아 소개한다.

 

일제시대 학병으로 끌려간 “나”는 관동군으로 중국 남경 땅에 배치되던 날 전쟁의 참혹함을 견디지 못하고 부대를 탈출하여 어느 절(정원사)에 숨어들어 원혜대사의 구원으로 불도를 닦는다. 그 절 뒤뜰에는 금불각이란 현판이 쓰인 곳이 있는데 늘 문을 잠그고 귀한 분이 올 때만 세전을 받고 불공을 드리게 하는 것을 본 나는 호기심으로 몰래 숨어들어 그 안을 엿본 순간 공포에 질려버린다. 등신불, 오뇌와 비원이 서린 듯한 일그러진 육신은 부처라기 보다는 오히려 괴물의 형상이었기 때문이다. 그 날 밤 원혜대사로부터 등신불에 대한 얘기를 듣는다.

 

만적은 당나라 때 사람으로 어린 시절 부친을 여의자 재가한 어머니를 따라 진씨 집으로 온다. 그 의부에게는 여옥이라는 장성한 딸과 신이라는 전처의 아들이 있었는데 만적은 그들과 우애가 두터웠으며 여옥과 애정의 갈등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어머니가 진씨 집의 재산을 만적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남편을 독살시킨 것을 알게 되고 이를 눈치를 챈 여옥은 동생 신과 함께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다. 만적은 그 길로 여옥 남매를 찾아 헤매다가 인간사에 회의를 품고 불가에 입문한다. 승려가 된 만적은 우연히 길거리에서 나병환자가 된 신과 여옥을 만나게 된다. 이 비극이 어머니의 탐욕으로 인해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 만적은 어머니의 죄를 부처님께 탕감하고자 자신을 불살라 부처님께 바치기로 결심한다.

 

그 이후의 상황을 조금 더 부연하면, 만적이 몸을 태우던 날 갑자기 큰 비가 내렸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만적이 불타던 주위로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이런 소식이 알려진 후 인근 불자들의 새전(시주)가 줄을 이었고,

그 돈으로 타다 남은 만적의 몸에 금물을 입혀 절에 안치하였다.

소설 속의 등신불은 이렇게 해서 등장한 것이다.

어머니의 탐욕과 그로 인한 비극을 씻기 위해 자신의 육신을 불살랐던 만적.

그런데 만적처럼 그런 염원을 담은 ‘소신공양(燒身供養)’은 현실 속에서 더러 실존했었다.

즉, 더 큰 사회적 가치와 불의에 항거하여 자신을 불태운 스님이 실지로 있었다.

 

지난 6일 치러진 문수 스님의 다비식 장면. 영정사진은 문수 스님.

 

 

1. ‘4대강 살리기’ 반대 등 외치며 소신공양한 문수 스님

지난달 31일 한 스님이 '4대강 살리기' 반대를 외치며 자신의 몸을 바쳤다.

주인공은 경국 군위군 지보사 소속의 문수 스님. 올해 47세.

스님은 이날 경북 군위면 모 주유소에서 휘발유 2만5천원 어치를 구입한 후 군위면 위촌 뚝방으로 가서 자신의 몸을 불태워 부처님께 바쳤다.

전언에 따르면, 스님은 구입한 휘발유를 온 몸에 뿌리고 또 반말 가까이를 마셨다고 한다.

그간의 분신 사례에서 이런 경우는 없었던 것으로 봐, 소신공양을 작정하면서 스님은 반만의 준비를 했던 것 같다.

 

문수 스님은 자신의 승복 겉에 친필로 써서 유서 하나를 남겼는데, 거기엔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살리기’를 반대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또 부정부패 척결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에 대한 정책을 펼 것을 현 정부에 촉구하였다.

문수 스님의 유서내용은 사사로운 민원이나 한풀이 같은 게 아니다.

최근 3년간 칩거, 수행을 해오면서도 스님은 신문을 탐독하며 세상사에 주목해왔으며, ‘4대강 살리기’가 환경훼손은 물론 서민을 위한 정책과는 거리가 멀다고 판단한 듯하다. <민중의 소리> 보도에 따르면, 소신공양 하루 전날 문수 스님은 동료 스님에게  “(4대강 살리기 사업을) 누군가 막아야 되지 않겠냐”라며 거사를 암시했다고 한다.

결국 스님은 전국 도처에서 불도저식으로 강행되고 있는 ‘4대강 살리기’를 막고, 또 현 정부의 반서민 정책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치기로 결심한 것이다.

 

지난 6일 문수스님의 다비식이 거행됐는데, 스님의 ‘마지막 순간’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민중이 소리> 보도에 따르면, 스님은 가부좌를 틀고 손을 부처님 모습처럼 했으며,

그 뜨거운 불길 속에서도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고 한다.

이런 일은 범인(凡人)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다비식 후 법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사리가 24과나 나왔다고 한다.

스님이 생전에 기거하던 지보사 총무 견월스님은

소신입적한 문수스님(47세)은 노승이 아닌데도 습골과정에서 사리가 잇따라 발견돼 놀랐다”면서

“그만큼 수행에 정진한 결과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새까만 숯덩이처럼 불에 타 보기에도 흉측한 스님의 육신은

이제 영롱한 사리로 다시 태어나 천년, 만년을 살게 될 것이다.

 

문수 스님의 가족이 스님의 시신을 염을 하는 과정에서 찍어서 공개한 '마지막 모습'

 

 

2. 고딘디엠 정권에 항거하며 소신공양한 틱광득 스님

‘소신공양’이라면 흔히 베트남의 틱광득(釋廣德) 스님이 널리 알려져 있다.

틱 스님은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지난 1963년 6월 11일 호치민(구 사이공) 시내에서 소신공양을 했다.

그것도 대낮에 공개적으로 했다.

아래 첨부한 당시 현장사진을 보면 틱 스님 옆에는 가솔린을 담은 통이 놓여 있다.

또 다수의 스님들이 주변에서 염불을 외거나, 틱 스님 주변을 돌고 있으며,

행인 다수가 가던 길을 멈추고 스님의 소신공양 장면을 지켜보기도 했다.

틱 스님은 가부좌를 틀고 합장한 채 이글거리는 불길 속에 미동도 않고 앉아 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마치 상상속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하다.

앞서 틱 스님은 자신의 소신공양 의지를 밝힌 바 있다고 한다.

틱 스님은 당시 남베트남의 고딘디엠 정권에 항거하여 이같은 소신공양을 감행하였는데,

이후 스님들의 소신공양이 뒤를 이었다.

당시 고딘디엠 동생의 부인은 스님들의 소신공양을 '바비큐파티'라고 조롱해 국민적 공분을 샀다.

틱 스님의 소신공양을 계기로 고딘디엠 정권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는데,

스님 한 분의 소신공양이 등신불이 돼 마침내 세상을 바꾼 것이다.

 

이글거리는 화염 속에서도 가부좌를 한 채 소신공양을 하고 있는 틱광득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