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끝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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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숨 쉬는 너희가 좋아^^

시간을 따라서..../단상 또는 일상

그는 북한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남으로 올 수 없었던 겁니다.

헬로우 럭키 찬! 2017. 7. 10.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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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윤이상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 입니다.

고국을 떠난 뒤로 생전에 고향 땅을 한 번도 밟지 못했던 그에 대한 일화는 대부분이 고국과 고향에 대한 애정, 그리고 간절한 그리움이었지요.

 

오랫동안 음악가로서 세계적인 관심과 사랑을 받아 왔고, 민주화 이후 윤이상 국제음악제 개최 등 복권이 되는 듯했으나 보수 정권의 재집권 이후 다시 근거 없는 종북 혐의를 둘러싼 '윤이상 지우기' 작업이 현재 진행 중이랍니다.

 

그동안 이 지우개 사업에 앞장 서 왔던 박 떨거지 김동진 시장은 최근 방독 중인 대통령 내외가 윤이상 묘소를 참배하며 고향의 동백나무를 식수한 이후, 그 관심에 찔끔했고 뚫린 입으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통영시민 대부분은 윤이상 선생이 고향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알고 있다. (문 대통령 부부의 선물이) 윤이상 선생께 위안이 됐으면 한다. 윤이상 선생의 삶과 발자취에 대해 보는 시각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지만, 음악에서는 20~21세기를 통틀어 5대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다. 윤이상 선생의 음악 세계를 기리는 뜻을 담아 음악제와 기념사업 등을 앞으로도 진행할 것이다.”

 

...이 비열한....

선정善政에는 관심 없고 어린애 장난질이나 치고 있었던......

변함없이 꿋꿋하게 후안무치, 무지의 정점을 지키고 선 정치꾼들의 행위에 대해 여전히 잘 걷고 있는 보길도 시인 강제윤씨가 한국일보를 통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기고] 윤이상 생가 터 없애려는 통영시/ 2017.07.09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가 베를린에 있는 통영 출신의 세계적 작곡가 윤이상 선생 묘지에 참배했다.

 

이날 묘지 앞에는 문재인 대통령, 김정숙 여사와 함께 대한민국 공군기를 타고 온, 통영의 동백나무 한 그루도 심어졌다. 고향에서 온 동백나무 한 그루가 그의 영혼에 큰 위로가 됐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그의 고향 통영에서는 김동진 통영시장 주도의 윤이상 흔적 지우기가 몇 년째 계속되고 있다.

- 그가 나고 자란 생가 터는 도로 공사로 매몰 위기에 처했고,

- 그를 기리는 공원은 윤이상이란 이름을 달지 못하고 도천 테마파크가 됐다.

- 더욱이 그의 명성을 팔아 건립한 520억원짜리 통영국제음악당에는 윤이상 이름을 딴 연주홀 하나 없다.


박근혜 정권 시절 윤이상 평화재단은 블랙리스트에 올랐고, 윤이상 콩쿠르에 대한 국가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탄생 100주년인 올해 세계 각지에서 기념행사가 열리고 있지만 김 시장은 여전히 윤이상 지우기에 몰두해 있다. 그가 살아 생전 민주화 운동을 했고, 이미 고문 조작사건으로 판결이 난 동백림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는 이유 때문일 것으로 짐작된다.

 

윤이상은 생존 당시 현존하는 유럽 5대 작곡가의 하나로 꼽혔고, 뉴욕 브루클린 음악원 교수들이 선정한 사상 최고의 음악가 44의 하나이기도 했다. 44인 중 20세기 작곡가라고는 윤이상과 스트라빈스키 등 4인뿐이었으니, 그의 음악 세계에 대한 국제적 평가가 어떠했는가를 새삼 일깨우고도 남는다. 그의 생가 터가 보존돼야 할 무슨 이유가 더 필요하겠는가.

 

필자는 지난 2014년부터 윤이상 생가 터 지키기 운동을 해왔다. 그 결과 공사는 잠정 중단됐고,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통영시에서도 우회도로를 내서 보존하겠다는 방침을 내놓았지만, 재선이 확정되자마자 김 시장은 약속을 뒤집고 도로공사를 강행하겠다고 나셨다.

 

그의 생가 터는 작년 5, 같은 도로공사 대상인 국가무형문화재 99호 소반장 추용호 장인의 전통공방 강제집행 때 다시 사라질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공방 지키기 운동이 확산되면서 공사가 일시 중단된 덕에 보존됐다. 필자가 작년 한해 공방 지키기에 매진했던 이유의 하나도 공방을 지키면 그와 함께 윤이상 생가 터도 지켜질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공방에서 쫓겨나 벌써 1년 넘게 농성중인 장인의 천막에는 야인시절 문재인 대통령도 지지 방문, “통영의 소반, 통영의 전통문화예술이 대한민국의 전통문화예술입니다. 우리의 가치 함께 지키겠습니다. 2016.9.9 문재인이란 글까지 남겼다. 그 천막 자리가 바로 윤이상 생가 터다. 그 사이 문화재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문화재청은 추장인의 공방을 문화재로 등록 신청하도록 공문을 보내 권고하기도 했지만, 김 시장은 여전히 도로 공사를 강행하겠다는 옹고집을 버리지 않고 있다.

 

동백나무를 심은 김정숙 여사는 "윤이상 선생이 생전 일본에서 배를 타고 통영 앞바다까지 오셨는데 정작 고향 땅을 밟지 못했다는 얘기를 듣고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참으로 따뜻한 마음가짐이다. 그러나 이런 따뜻한 마음의 대칭점에 서 있는 김 시장은 굳이 윤이상 생가 터와 공방을 없애고 직선도로를 내겠다고 한다.

 

이것은 명백한 윤이상 흔적지우기가 아닐 수 없다. 그를 팔아 유네스코 음악창의도시까지 된 통영인 만큼 통영시민도 더 이상 김 시장이 윤이상 선생을 모독하게 놔둬서는 안 된다. 충남의 경우 월남 이상재 생가 터를 충남도 기념물84호로 지정 보호하고 있다. 그런 좋은 선례에 따라 추 장인의 전통공방은 물론이고, 윤이상 선생 생가 터 역시 문화재로 보호해 마땅하다.  

                                          강제윤 시인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지평선] 동년배 박정희와 윤이상의 악연 / 2017.07.06 17:25

한국일보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올해는 1917년 생인 박정희 전 대통령과 작곡가 윤이상이 나란히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동년배인 두 사람은 일제 때 정반대의 길을 걸었고, 그 후에는 악연으로 얼룩졌다. 항일운동에 투신했던 윤이상은 해방 후 유럽으로 떠나 음악 공부에 매진했다. 박정희가 독재를 하던 때 윤이상은 당대 최고의 작곡가 반열에 올랐다. 1967년 대통령 부정선거 시비가 일자 박정희 정권은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을 터뜨렸고, 그 정치 공작의 피해자가 윤이상이었다. 국내에 송환돼 고문을 당하고 옥살이를 하다가 독일로 추방됐다.

 

악연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뒤에는 세상에도 없던 윤이상을 다시 끌어내 탄압했다.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윤이상 평화재단을 포함시켜 기념사업을 치르지 못하게 했다.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은 윤이상 국제음악콩쿠르정부 지원이 중단됐다가 탄핵사태 후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고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의 업무일지엔 윤이상 방북이라고 적혀 있어 수십 년 전의 주홍글씨가 그대로 남아 있음을 보여 줬다.

 

독일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가 윤이상의 묘소를 참배하면서 그의 위상이 재조명 받고 있다. 윤이상은 한국음악의 연주기법과 서양악기의 결합을 시도해 동서양을 잇는 중계자 역할을 한 음악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1995년에는 유럽 평론가들이 ‘20세기 가장 중요한 작곡가 30으로 선정했고, 뉴욕 브루클린 음악원 건물에는 위대한 음악가 44명의 이름이 동판에 새겨져 있는데 20세기 작곡가는 거쉰, 스트라빈스키, 바르톡과 함께 윤이상이 있을 뿐이다.

 

윤이상은 이념을 뛰어넘은 민족주의자였다. 군사정권 때 입국이 금지됐던 그는 김영삼 정부 출범 후 고국 방문을 원했지만 정부는 전향서를 요구했다. 유럽의 친북성향 시민단체도 그의 서울 방문을 반대했다. 양쪽에 상심한 윤이상은 방문 계획을 취소하고 앞으로 모든 통일 운동에서 손을 떼겠다고 선언했다. (송두율 <불타는 얼음>) 나는 고향의 정서적인 기억을 온몸에 지닌 채 평생 작품을 써 왔습니다. 고향에 가게 되면 통영의 흙에 입을 대고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갈라진 민족의 화해를 위한 한 예술가의 순수한 열정은 그렇게 스러졌다.

  



* 읽어보기    

'내 마음까지 감옥에 가두진 못 한다.'

http://www.hankookilbo.com/v/a32addc0ba8249a3a50b21e164831a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