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끝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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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따라서..../긴 여정, 창 밖의 풍경

간절한 염원의 탑, 마산 팔용산으로 들어 가다.

헬로우 럭키 찬! 2017. 9. 17.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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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이미지19층에서도 느껴지는 빗소리에 눈을 떴어요.

태풍이 아직도 이웃 일본에서 놀고 있나 봅니다.


바람에 올라 탄 빗줄기는 보오얗게 대기를 맴돌고, 딸네 아파트 뒤쪽으로 바투 붙어있는 산 중턱의 골프장엔 여전히 안개가 어슬렁거리고 있었습니다.

안 그칠라나.

어영부영 10.

그 사이 찾아 낸 마산의 탑골공원은 오늘 정도의 날씨라면 무리 없을 것 같았네요.

 


장관입니다.

정말 경이로운 풍경이었어요.

여러 블로그에 올려 둔 사진을 보면서 범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하긴 했습니다만 기어코 맞대면^^;;하는 것이 옳습니다.

직접 산을 올라 봐야 많은 사람이 품고 내려온 감동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어요.


헤아리는 것이 불가능할 것 같은 돌탑 사진에 빠져들다 문득 의도한 누군가가 미치도록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백과사전부터 뒤적여 봤습니다.

【양덕동 뒤쪽에서 봉암동쪽으로 뻗어 있는 해발 328m의 팔용산은 옛날 이 산에 하늘에서 여덟 마리의 용이 내려와 앉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하나, 원래는 반룡산이었는데 해방이후 점차 그 음이 변하여 오늘에는 모두 팔용산으로 부르고 있다. 웅장한 산세를 따라 동쪽으로 뻗어있는 어복곡은 천연적 신화와 전설을 담고 있는 명소로서 향토 민속 농청놀이의 근원지이다. 1929년 이 산의 동쪽에 있는 수원지가 건설되어 오늘날까지 이용되고 있으며, 팔용산과 인접한 양덕동에 거주하는 이삼용씨외 2명의 주민들이 8775일부터 먼동골에 약수터를 개설한 뒤 많은 사람이 찾게 되었으며, 특히 이삼용씨는 93323일부터 산 사태가 난 계곡 주변에 등산로 정비와 함께 돌탑을 쌓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크고 작은 900여기의 돌탑군을 조성하였으며, 통일기원과 수도하는 마음으로 지금도 계속 돌탑을 만들고 있다.】

 

다음은 2014.11.27. 부산일보 기사 발췌문입니다.

통일기원탑

팔용산의 '돌탑'은 현재 972기다. 이삼용(63) 씨가 통일을 염원하면서 1993년 탑을 쌓기 시작해 공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1천 기를 목표로 쌓고 있다.

 

2008년 새해 첫날에는 약수터 뒤에서 역고드름이 생겨 화제가 되고, 이듬해에는 돌탑 훼손 사건이 발생해서 감시카메라가 설치되기도 했다. 돌탑의 규모는 작은 건 1m 남짓하지만 큰 탑은 3m가 넘는 것도 있다. 연락병 역할을 하는 '애기 돌탑' 등 의미가 부여된 탑도 있다. 탑골 한가운데에는 경남도의 지형을 닮은 '모형돌'이 있다. 봉암수원지 주변에 가도 군데군데 돌탑을 만날 수 있다. 통일기원탑이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면서 2009년 입구를 정비해서 공원을 만들었다. / 김승일 기자


산을 오르다 초입에서 돌아보며 한 컷. 큰 길  건너편에 대림 ... 무슨 아파트였는데...ㅋ


주변엔 온통 상수리 나무. 여기저기 굵은 도토리가 집 채 뒹굴고 있었어요. 욘석...제 손으로 한 웅큼의 양을 주머니에 담아 왔더랍니다.^^


도토리 까요오~~~~



26년을 한결 같은 마음으로....??

한 때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던 적도 있었죠.

전후 70여 년....이제는 통일이라는 단어조차 생소해지고 민족이란 개념은 더 이상 국민적 관심사가 아니게 되었습니다어떤 상황이든, 나 하나 잘 먹고 잘 살면 그걸로 되는 세상입니다.


그런 세상의 한 귀퉁이에서 목숨 같은 염원의 돌을 쌓고 계셨다는 거군요.

사랑한다면서, 이뻐 죽겠다면서,  지금 나는...그런 자식들이 살아 갈 이 땅의 내일을 가슴으로 고민해 본 적이 있었던가....  한 때의 바람 같았던 스무살의 정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박제된 기억이 추억을 가장한 채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동안.....     이렇게 살아가고 있었구나........이렇게 살고 있네요.

 


도토리 많이 줍게 해 달라고 기도 중입니다. ㅎ




엄청나게 커서 뱀인 줄...팔용산 민달팽이들은 대략 20CM급입니다.



애기돌탑인데요,

저 아래에서 손님이 올라 오면 언능 달려가서 어르신 돌탑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답니다.


참 오르기 쉬운 길입니다. 짧은 거리임에도 중간 중간 쉼터가 잘 조성되어 있고요.  탑은 산의 초입에 군락을 이루고 있어 멀리, 높이 오르지 않아도 된답니다.

아...경건, 경건..ㅎ












초행에다 상상 그 이상의 장관에 넋이 쏠려 요기를 건너 뛰었습니다. 음...가까우니까 종종 들르면 되겠지요.














참으로 숙연해 지는 곳이었어요.

더 이상 의미롭지 않은 조국, 민족, 통일 같은...이러한 상위 개념이 무너지면서 모래알 같은 개인만 크게 보이더니....

 

그 분의 간절함 끝에,  후손의 평화로운 미래가 존재하기를.... 감히 그 곁에 염원 하나 더 묻고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