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작
내용을 전혀 모르는 상태로 시나리오의 원작자가 강풀씨 라는 것과 곽경택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것에서 관심이 꽂혔다. 권상우씨와 정려원씨의 캐스팅에는 그동안 몇 편의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만들어진 선입견도 있고 해서 스토리 외적인 것에는 기대 않고 덥석 달려들었던 영화.
그리고 대부분의 영화에서, 찍어낸 듯 한결 같았던 표정과 나약해 보이면서도 슬쩍 개구진 마스크의 권상우씨가 주인공 남순 역으로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있는 것을 지켜 본 영화이기도 했다.
가끔, 강풀씨나 김기덕 감독이 대중에게 내보내는 메시지가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너무 가차 없다. 이 작품도... 통증을 느끼지 못 하는 한국 자본주의에 먹힌 어두운 일상들을 닭똥집 뒤집듯 속속들이 까발려 보여 주면서 해피하고 희망적인 엔딩에는 역시나 인색해 뒷 끝을 떨어내느라 한동안 애 좀 먹었다.
‘너희의 몫을 알고 있지 않냐.’고 질타하지 않아도 충분히 통증을 느끼고 있는데....결말에서만이라도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좀 해 주지....투정을 들이대기도 한....
홍보 포스터에 ‘감성 멜로’, '운명적 사랑’...요래서.... 그냥 가볍게 볼 수 있는 멜로물인줄 알았다. 사채업자, 채권대리자로서의 자해공갈단, 철거용역반..... 여전히 진행 중인 용산참사가 떠오르면서 애써 외면해 왔던 진실과 맞닥뜨린 난감함에 가슴이 답답했던 영화.
피해자와 표면적인 가해자의 뒤에 실체를 숨기고 시커멓게 버티고 선 자들을 걷어 낼 수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그래서 사랑은 그들의 깊은 상처를 한시적으로 치유해 줄 수 있는 하나의 장치로서 존재할 뿐이다.
어린 시절, 자신의 사소한 실수 때문에 발생한 교통사고로 가족을 모두 잃은 남순은 그 후유증으로 육체적인 아픔을 느끼지 못 하는 후천성 통각장애를 앓고 있다. 덕분에(?) 그의 직업은 사채업자에게 고용된 상처투성이 자해공갈단. 채권 대리자와 채무자의 관계로 만나게 된 악세사리 노점상인 동현은 수시로 혈액응고제를 맞아야 하는 혈우병 환자로 밝고 씩씩해 보이지만 상황에 따라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진부하지만 눈물겨운 몇 개의 에피소드를 통해 점점 밀착되어 가는 두 사람의 관계로 보면 얼핏 그 '운명적 사랑’으로 진행될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서로의 상황을 이해하고 감싸 안으면서 남순은 아픔을 느끼게 되고 그 고통은 육체적인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끈끈이처럼 달라 붙어 있는 불합리한 현실이라는 것에 또 한 번 절망한다. 그리고 남순은 필연적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one way ticket' 앞에서 처음으로 가슴의 통증을 호소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로마에 있다. 그렇게 믿으면서 현대인들은 로마를 향해 질주한다.
현대 사회의 모순이 자본주의가 낳은 폐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도 이제는 상관없다.
그 앞에 굴복하고 원하는 것을 최대한 얻어 내는 것이 궁극의 목표다.
어떤 비극적 상황도 내가 속해 있지만 않으면 눈 감아 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인간은 무디어져 가는 것이 아닐까.
'통증'은 사회를 겉돌며 무감각하게 오늘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가슴에 조용히 두드림질 하고 있는 아픈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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