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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루토를 통해 본 힘과 폭력의 세계

헬로우 럭키 찬! 2012. 4. 11.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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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피스'와 더불어 10년 넘게 롱런하며 팬층을 넓혀 온 나루토.

강산을 변하게 한다는 세월도 훌쩍 넘긴 지금까지 꾸준한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이유는 도대체 뭘까. 열 올리는 마니아들의 세계가 조금은 궁금하기도 하고...해서 살짝 간이라도 볼 요량으로 현재 TV에 올려 진 것 중 가장 최근판 '나루토 질풍전 3기'를 열었는데.....

날밤 샜습니다.

그리고 좀 더 회차의 연결고리를 늘리기 위해 1편부터 몇 날을 투자하며 전편을 섭렵했지요. 하지만 모두 '나루토 질풍전 3기'(이하 질풍 3기)의 완성도를 따라 잡지는 못 했습니다. 질풍3기는 아이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무거운 주제였고, 물리적 힘을 지나치게 과시하는 전투씬이 두드러졌다는 것을 제외하면 정말 볼만한 작품이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전국시대 가상의 나라들에 속한 몇 몇 강한 마을 출신의 닌자들 이야기입니다.

당시 최하층민으로서 무술이 아닌 뛰어난 인술과 체술을 지닌 자들이죠.

전국시대 영주들의 헤게모니 장악의 용병이자 소모품으로 역사의 표면에는 거의 드러나지 않아 자료 조차 남아 있지 않은, 임무가 생명 그 자체였던 닌자들.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빌어 전 세계를 전쟁의 각축장으로 만들어버린 강대국의 피로 얼룩진 근현대사를 말 하고 있는 듯 보여집니다.

조직에 집착하고, 일족에 집착하고, 이름에 집착하여 작은 마을 안에서 조차 주도권 싸움이 비일비재 했던 '저주 받은 닌자의 세계'는, 곧 현재 힘을 가진 강대국의 제국주의의 논리에 다름 아니었던 거지요.

'질풍 3기'는 한 마을에서 몰살당한 우치야 가문의 비운의 형제를 둘러 싼 증오와 복수, 그리고 전쟁 고아 였던 나가토, 야히토, 코난의 비화가 굵은 줄기를 이루고 있습니다.

 

장성한 세 고아들이 그들만의 방법으로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나섰지만....

 

전설의 세 닌자 중 한 사람인 지라이야 선인의 가르침으로 인술을 익히며 평화를 위해 전쟁 근절을 다짐하던 장성한 세 고아들이, 다시 세상을 처절한 전장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는 참으로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 생명과도 같았던 야히토의 어이없는 죽음으로, 세상을 향해 분출되는 분노와 증오 속에서 그들의 전쟁을 통한 평화 만들기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전쟁은 인간에게 치유되지 않는 고통을 남기며 감정을 피폐하게 만들고 더 잔인한 폭력을 낳게 할 뿐...

나가토는 말합니다.

"안이하게 평화로움에 젖은 불의 나라 국민들이 너희 나뭇잎 마을에 의뢰하는 몇 푼 안 되는 의뢰비가 모여서 전쟁 자금으로 쓰인다. 불의 나라 국민들은 자기 나라가 적지 않은 전쟁에 가담한 사실을 알면서도 위선적으로 평화를 입에 올리지. 너희들 같은 강대국의 평화는 우리 같은 약소국의 희생을 바탕으로 위태롭게 세워져 있을 뿐이다. 너희들의 평화가 우리들에게는 더 없는 폭력이다. 인간은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에게 상처를 준다. 인간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동시에 미움과 증오도 존재하지. 이 저주 받은 세상에 진정한 평화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강력한 닌자 마을을 가진 나라에 있어 닌자 비즈니스는 그 나라가 벌어들이는 수익에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 나라 안팎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참가해 막대한 돈을 벌어들임으로써 나라의 경제를 지탱하지. 그러니까 나라가 안정된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는 그만큼의 전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9세기 중반부터 미쳐 돌아가기 시작했던 열강들의 땅따먹기 전쟁에 희생되어진 약소국의 울분을 대변해 주는 것 같군요.

 

나가토의 삶의 궤적을 더듬으며 이 장면을 마주하면 전쟁 유발자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가 정수리를 뚫어버릴 것 같습니다.

 

온 몸을 차크라-일종의 '氣'또는 에너지-수신기에 맡겨 그 힘으로 시신을 조종하면서 오로지 세상의 모든 전쟁을 컨트롤하고 독점지배하여 자신만의 방법으로 평화를 구현하겠다는 나가토... 표정을 지우고 쏟아내는 그의 이야기가 오히려 너무나 가슴 아픈 장면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나는 나가토의 고통과 증오와 분노를 온 마음으로 받으며 그의 어긋져 버린 삶의 과정보다 그 상황에서 제어되지 않는 감정의 크기를 먼저 이해 해보기로 했습니다. 눈물이 쏟아지더군요. 어린 나가토의 거두어 질 수 없는 고독과 절망이 너무나 아프게 와 닿아버렸습니다.

나루토에게 그러지요.

"너나 나나 목표로 하는 것은 같다. 평화를 이루는 것. 서로의 정의를 위해 움직이지. 너는 너의 정의를 위해, 나는 나의 정의를 위해. 같은 아픔을 알지 못 하는 한 진정으로 타인을 이해 할 수 없는 거다. 그리고 이해를 했다고 해도 공감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

각자의 명분에 따라 규정지어 지는 정의.

이기는 것이 정의인가, 정의가 반드시 승리하는 건가.....나가토는 자신이 추구하는 정의에는 이해와 공감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앞서 말한 또 한 줄기의 맥을 이루고 있는 우치야 가문의 비화는 나루토 1기에서부터 시작되어 '질풍 3기'로 비극적 결말을 맞게 되는 내용입니다.

 

우치야 이타치. 동생을 강하게 단련시켜 살아남게 하기 위해 미움과 오해도 모두 감수한 남자

 

 

결국 자신의 오랜 바람대로 형 이타치를 죽이게 되지만 또 한 사람, 우치야 일가인 마다라에 의해 그동안의 숨겨진 비밀이 밝혀지면서 4기의 피바람을 예측하게 됩니다. 이타치의 동생에 대한 깊은 사랑이 처절하도록 아름답게 담겨 있는 마지막 편이었습니다.

아래는 개인적으로 나가토의 차크라 수신기 컷과 함께 가장 눈물겨웠던 장면입니다.

 

죽어가면서도, 살아 남아 죽음의 표적이 될지도 모를 동생에게 습득한 모든 술법을 전수하려 마지막 힘을 짜 내는 이타치.

입가에 번지는 희미한 미소가 가슴을 저밉니다.

 

아무튼 '나루토'를 보면서 주인공인 나루토가 중심에 보이지 않았던 것은 즐겨보는 계층의 관심사와 나의 만화적 관점이 조금 다르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합니다. 매 회 뛰어난 술사들의 기발하고도 엄청난 전투신이 과하지 않나 하는 우려도 없지 않았습니다만 하나, 작가가 나루토라는 인물에게 부여한 특성-순수함과 포기 없는 우직한 근성, 한없이 긍정적이어서 바보스럽기도 한 -으로 만들어 내는 승리의 해피엔딩은 물리적인 힘만이 최고가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 역시 느낄 수는 있었습니다. 어쩌면 만화나 애니를 즐기는 계층이 어린이나 청소년이기 때문에 무거운 주제를 살짝 비껴가면서 조금은  가벼운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작가가 배려를 했거나, 그도 아니면 상업주의에서 과감히 탈피할 수 없었던 현실적인 문제가 더 컸기 때문일 수도... 하는 주제 넘은 생각도 가져 봤습니다.

하지만 결국 폭주하는 나가토를 변화시킨 것은 힘이 아니라 나루토의 거짓없는 순수한 마음....나루토에게 있어 힘은 그저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 뿐이었지요.

어린 나가토가 처음 품었던 바람 처럼.

 

아! 어쨌거나 매 편에 깔리는 배경 음악도 놀라웠습니다.  닿지 못 하는 사람과의 마음을 너무나 애절하게 표현했던 낮은 피아노음, 전장의 긴박감을 고조시켜 주는 아찔한 현악합주의 빠른 템포, 출전의 비장함을 담은 남저음 아카펠라의 낯선 공포, 탈주 닌자로서의 사스케가 나오는 장면에   뜽금없이 와르르 쏟아지는 플라멩고풍의 경쾌한 기타 리듬....어느 장면 하나에도 소홀함이 없어 보여  만족스러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