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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인디음악이란 무엇인가

헬로우 럭키 찬! 2011. 7. 24.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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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해진 매체 덕분에 대중문화에 있어 하나의 축으로 성장한 인디음악.

그 후유증은 홍대 일대의 공연장을 썰렁하게 만들어버린 결과를 낳기도 했다.

한 때 뮤지션들의 음악적 개성과, 속박을 거부하는 그들의 공연에 심취해 있던 매니아들의 자부심은 또 하나의 문화적 트랜드이기도 했더랬는데......

평소의 관심이 잡아 낸 한 기사를 옮겨 왔다.

(블로그 담기 기능이 없어 또 편집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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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인디 음악이란 무엇인가? 중요한 건 인디의 정신과 태도

http://culturenori.tistory.com/1913

 

 

인디 음악은 비주류에 위치하지만 신선함의 화수분이다. 음악 스타일이 그게 그것이거나 시장을 의식해 좀처럼 새로운 스타일을 실험하지 못하는 주류 음악계와 달리 끊임없이 참신한 음악들이 솟아오른다. 그 팔딱거리는 날 것의 음악들은 우리든 서구든 대중음악 역사의 전기(轉機)를 마련하면서 지각 변동을 일으켜왔다.


과연 무엇으로부터 독립적인가?

인디(Indie)라는 말은 ‘독립적’을 뜻하는 인디펜던트(Independent)의 줄임말이다. 여기서 단순히 독립이라는 의미보다는 ‘과연 무엇으로부터 독립적인가?’가 중요하다. 바로 주류 즉 메이저로부터의 독립이다. 주류 음악계는 상업 자본에 의해 가동되고 또한 그것을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이기 때문에 결국 인디는 메이저의 상업 자본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거대 자본에 의해 음악이 좌지우지 될 수밖에 없는 주류 음악계에서 탈피하거나 거리를 두는 비주류 음악계가 바로 인디인 셈이다. 이 인디가 암약하는 무대가 인디 신(Scene)이다. 우리의 인디 신은 서울 홍대 일대의 라이브클럽을 무대로 활성화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거의 ‘인디 = 홍대’로 등식화하고 있다.


사실 국내에서 음악 시장지분으로 본다면 인디의 규모는 아주 작다. 솔직히 무시해도 될 정도다. 그런데도 음악 팬들 사이에서나 언론, 평단에서는 이런 ‘키 작은’ 인디 음악을 때로 감싸고돌고 더러 우대하는 느낌마저 든다. 여기에 희망을 걸기 때문이다. 왜 인디에 희망을 거는가.


다양성과 실험이 생명

자본에 의한 주류의 음악은 매출을 보고 마치 공장에서 찍어내는 것 같은 공산품(工産品)이라면 인디는 음악인이 자주(自主)적으로 음악을 하는 곳이다. 조금 과장하면 주류 음악은 자본의 것, 기획사의 것이라면 인디는 음악가의 것이라고 할까. 인디가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키워드는 바로 음악가의 자주다. 자주적으로 음악을 하면 저절로 아티스트의 개성과 독자적인 표현 그리고 실험적 자세가 강조된다. 그래서 인디는 다양성과 실험이 생명이다.


주류는 시장의 동향, 이른바 트렌드를 봐야 하는 관계로 실험적이고 다양한 스타일이 나오기 어렵다. 우리 아이돌 그룹의 음악을 두고 ‘그게 그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인디는 뮤지션이 중심이므로 어떤 경우 주류의 상황에서는 나올 수 없는 아주 실험적인 음악이 나오고 그것들이 모여 다채로운 음악풍경을 만들어낸다. 이게 비주류의 특전, 인디의 미덕이다. 


인디 레코드사 즉 ‘인디 레이블’은 이런 자주적이고 실험적이며 다양한 음악 난장을 주도한다. 그렇다면 과연 역사적으로 어느 시점에 인디 레이블 즉 인디 음악계가 출현한 것일까. 대중음악의 종주국인 미국 음악계에서 인디 레이블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오래 전인 2차 세계대전 직후에 등장했다.

 

 

콜롬비아(Columbia), 캐피탈(Capital), 데카(Decca), RCA 같은 메이저 음반사가 음악 산업을 장악한 것에 대한 반작용으로 소규모 음반사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들었고, 독창적인 음악을 잉태하기에 이르렀다. 그 음악이 바로 얼마 후 미국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이 된 로큰롤(Rock'n' roll)이다. 새로운 음악을 열망하던 인물 샘 필립스(Sam Phillips)가 1952년 미국 멤피스에서 설립한 ‘선(Sun)’ 레코드사도 그중 하나였다.


샘 필립스는 이 레이블을 통해 신인 아티스트를 발굴, 레코드를 제작하며 주류의 메이저 레코드사가 시도하지 못했던 청춘의 음악, 다름 아닌 로큰롤을 소개했다. 재즈 풍 음악과 스탠더드 발라드 즉 어른음악만이 존재하던 상황에서 로큰롤로 선풍을 야기한 엘비스 프레슬리가 선 레코드사 소속이었다. 그는 곧 ‘로큰롤의 황제’로 비상했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상기한 것처럼 인디가 음악계에 새로운 전기와 함께 평지풍파를 일으킨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후 현대적인 의미에서 인디 음악이 수면 위로 부상하게 된 때는 사나운 펑크(Punk) 록이 폭발한 1970년대 중후반이다. 이때 비로소 인디라는 용어가 출현했다. 그 시절 인디 레이블이 없었다면 펑크의 아이콘으로 역사에 기록된 섹스 피스톨스(Sex Pistols)나 클래시(Clash)와 같은 펑크 밴드들은 앨범을 낼 기회가 없었을 것이다.


당시 영국의 음반사는 롤링 스톤스, 더 후,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로드 스튜어트 등 세계 최고의 록 스타들이 즐비한 바람에, 그들한테 매달릴 수밖에 없었기에 신인들을 거들떠보지 않았다. 그랬다가 주류에 대한 펑크의 무차별 반격에 시달리게 되었다. 이 점에서 인디 레이블은 신인의 등용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Do It Yourself

흔히 인디를 정의할 때 디아이와이(DIY)라는 용어가 뒤따른다. ‘스스로 하라’(Do It Yourself)’ 영어의 앞 자를 딴 것으로, 바로 1970년대 중후반 펑크 밴드들로부터 나온 말이다. 자본에 의해 움직이는 주류음악계에서 가수들은 시키는 대로 한다면, 인디 아티스트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스스로 하고 스스로 배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DIY를 다른 말로 한다면 바로 자주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게 하나 있다. 인디가 이런 독립을 표방한다는 점에서 ‘음악을 얼마나 잘하느냐’ 이상으로 ‘어떤 자세(attitude)로 음악을 하느냐’에 중점이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인디 뮤지션이라면 스스로 음악을 하고 그러면서 고인 물이나 다름없는 기성음악계의 풍토에 도전하는 청춘들의 저항의식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다. 무조건 음악만 잘해서 되는 게 아닌 것이다. 이런 인디의 모든 태도가 1970년대 중후반 펑크 시절에 확립되었다. 


펑크가 기성사회의 견제를 받으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밴드 너바나(Nirvana)가 등장한 1990년대 초반에 이르러 다시 주목을 받게 된다. 미국 시애틀을 기반으로 한 인디 레이블 ‘서브 팝(Sub Pop)’에서 활동한 너바나는 불안한 X세대의 사운드였던 그런지(Grunge) 록으로 세상을 뒤흔들었다. 반상업적 음악을 기치로 내세웠던 이 그런지 록은 펑크의 후예답게 강력한 카운터펀치로 주류 음악계를 흔들었다.

 

국내에 인디라는 이름이 유통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1995년 서울 홍대의 편안하게 자리에 앉기도 힘든 비좁은 라이브 클럽 ‘드럭’에서 서구의 펑크와 그런지 록에 자극받은 ‘크라잉 넛’, ‘델리 스파이스’, ‘옐로우 키친’과 같은 펑크 밴드들이 등장했다.


이들과 함께 한국에도 마침내 주류 댄스음악계와 일정 거리를 두고 자생을 꿈꾸는 인디 음악계가 구동을 개시했다. 이어 1996년 음반 사전심의 폐지, 1998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뀐 공연법, 1999년 식품위생법 개정으로 인한 클럽 공연 합법화 등으로 인디 밴드 공연과 앨범 활동은 힘을 받았다.


중요한 건 DIY 정신과 태도

최근 들어 인디도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홍보와 유통에 있어서 대자본 회사와 연계하는 인디 레이블이 많이 늘어나고 있다. 자본을 배격한다는 슬로건을 내건 인디가 자본과 손잡는다는 것은 분명 모순이다. 하지만 그것을 두고 인디 정신의 훼절이니 배신이니 하며 비판의 칼을 들이대지는 않는다. 아티스트가 음악을 만들어낼 때 DIY정신을 지킨다면, 홍보와 마케팅이 설령 비(非) 인디적이라도 여전히 그 아티스트 음악은 인디라고 해야 한다는 것이다.

 

 

‘크라잉 넛’은 홍대의 ‘드럭’에서 활동하다가 1999년 ‘말달리자’의 빅히트와 함께 일약 유명 밴드로 도약했다. 그러자 일각에서는 이제 더 이상 그들은 인디밴드가 아니며 배부른 주류 밴드라며 맹공을 퍼부었다. 크라잉 넛 멤버들은 이에 대해 “그러면 인디는 영원히 배고파야 한다는 말인가?”라며 반박하면서 “우리는 여전히 인디 밴드!”라고 주장한다.


근래 들어 서구에서는 인디의 개념을 아티스트 정신으로 풀지, 그들의 홍보 마케팅 방식이나 주류로의 부상을 문제 삼지 않는다. 어떤 인디 밴드가 유명해졌다고 그들은 인디가 아니라고 단정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다만 유명해진 인디밴드가 라이브클럽을 외면하고 주류 아티스트의 흉내를 낸다면 그 밴드는 이미 인디라고 할 수 없다.


중요한 것은 DIY정신과 태도지, 방법론과 성공여부는 아닌 것이다. 현재 우리 음악계가 갖춰야 하는 것은 기획에 의해 움직이는 상품 가수가 아니라 독립적 지향과 실험적 태도에 의해 움직이는 자주 아티스트들이다. 그들이 많아야, 그리고 수요자들의 적당한 지지를 얻어야 다양한 음악이 넘실거리게 된다. 그게 인디가 꿈꾸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