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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에스트로 정명훈씨를 보는 시선1

헬로우 럭키 찬! 2011. 12. 15.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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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사회면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마에스트로 정명훈 관련 기사입니다.

개인적으로 클래식 애호가로서 마음이 많이 울적해 지는 기사네요.

미리 알려진 뉴스와 그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을 두 편 옮겨 와 봤습니다. 


2011.12.15/YTN

최근 정명훈 서울 시향 상임 지휘자의 연봉 20억 원을 놓고 인터넷 등에서 논란이 뜨거운데요. 20억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지급 내역을 보면 근거 없이 호텔비 수천만 원을 지급하는 등 석연치 않은 부분이 적지 않습니다.

이대건 기자의 단독 보도입니다.

 

[리포트]

YTN이 입수한 국제 항공 운임 증명서입니다.

정명훈 서울시립교향악단 상임 지휘자의 큰아들이 재작년 미국을 오갈 때, 천 3백여 만원 짜리 비즈니스 좌석을 이용한 것으로 돼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둘째 아들과 며느리, 그리고 막내 아들도 한 사람당 6백만 원 짜리 프랑스 왕복 항공권을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가족의 항공료는 모두 서울 시향에서 사후에 지급했습니다.

당초 서울 시향은 정명훈 상임 지휘자 본인에게만 1등석 왕복 항공권을 연주 횟수에 상관없이 무제한 제공하기로 계약을 맺었습니다.

여기에 유럽 비즈니스 클래스 항공권만 한 해 3장을 더 제공하기로 했는데 가족들이 미국 등을 오갈때도 이를 이용한 것입니다.

또 다른 논란도 있습니다.

시향 측은 지난 2007년과 2008년 정명훈 상임 지휘자의 고급 호텔비로 4천만 원 가까이 지급했습니다.

계약서상에도 아예 근거가 없는 돈입니다.

 

[녹취:김주호, 서울 시향 대표]

"(계약서에) 호텔비는 명시가 돼 있지 않아서 환수 조치했습니다. 정명훈 감독하고 환수하는게 맞다고 해서 합의를 했고요."

 

시향의 원칙이 없는 집행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또 있습니다.

유럽 주재 보좌역 연봉으로 올해 4천 8백여 만 원을 줬고, 내년에도 비슷한 수준으로 지급하기로 예정돼 있는데, 문제는 보좌역의 연봉을 정명훈 상임 지휘자 개인 계좌에 직접 입금했다는 점입니다.

서울시향이 올해 서울시에서 받는 출연금은 130억 원. 이 가운데 20억 원이 정명훈 상임 지휘자의 연봉으로 지급됩니다.

20억 원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결국 계약서 자체가 두루뭉술하게 돼 있어 명확한 근거 없이 돈이 지급된다는 점입니다.

박원순 시장은 재계약을 앞두고 정명훈 상임 지휘자를 곧 만납니다.

 

[녹취:박원순, 서울시장]

"여러가지 논란이 있습니다. 일부 지적은 귀를 기울일 만한 것도 분명히 있습니다."

 

마에스트로에 대한 예우를 말할 때 경제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돈이 소중한 세금이라면 서울시향이나 정명훈 상임 지휘자 본인이 한 번쯤은 생각해 봐야 할 부분도 충분히 있어 보입니다. YTN 이대건[dglee@ytn.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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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명훈과 서울 시향을 보는 또 다른 시선

서두르지 말고 오케스트라의 합리적인 운영 모색해야 / 탁계석

 

오는 12월 말 재계약을 앞 둔 지휘자 정명훈과 서울시향 문제에 대해 논란이 뜨겁다. 일부 언론 매체에 의해 촉발된 문제들이 페이스북, 트위터로 옮겨오면서 여론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 모든 의견을 종합해 보면 과연 ‘정명훈 지휘자가 세계적이냐, 아니냐’가 관심사인 것 같고 둘째는 그에 대한 연봉 20억과 각종 대우가 합당한가로 귀착된다.

사안은 보는(주관적) 시각에 따라 극명하게 주장이 엇갈리고 있지만, 누구도 ‘이것이 정답’이라고 답하기 어려운 문제인 것 같다.

다 아시다시피 서울시향은 세종문화회관 법인화의 후유증으로 노조가 생겼고 오랜 갈등과 투쟁으로 거의 난파선이 된 모습이 아니었던가. 전임 곽승 지휘자가 출결 문제로 다투다 사임하고 뾰족한 수가 없이 곤경을 겪고 있었다.

그러자 당시 이명박 시장은 정명훈 카드를 뽑아 들었고 이 때 사정으론 백지수표라도 건넬 수밖에 없던 상황으로 보여졌다. 분명 정명훈 지휘자는 시향의 수준을 끌어 올리는데 기여를 했고, 관객 기반도 늘었다. 시민의 반향을 일으켜 세워 一新(일신)된 시향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물론 이에는 舊(구) 시향 단원들의 희생을 잊으면 안 된다.)

6년간의 재임동안 시향은 소요를 잠재우고 숨죽인 듯 정명훈의 강력한 카리스마에 의해 운영되면서 유럽 연주, 그라모폰과의 CD 제작 등 나름대로 비전을 보여주었다. (그 방식과 절차에 문제가 있기도 하지만...)

아마도 오세훈 시장의 퇴임이 없었다면 이번과 같은 문제가 불거졌겠는가 하는 점에서 정치적 접근이라 보는 시각도 있고, 그만한 노력으로 궤도에 오른 만큼 임시처방보다는 이제는 한 단계 성숙하고 합리적인 오케스트라 운영 시스템으로 근본부터 다시 설정해야 할 것이란 게 음악계 중론인 것 같다.

따라서 評者(평자)는 정명훈이 ‘세계적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나 ’고액연봉 시비’ 같은 사안은 네티즌들의 학습 자료로 넘겨주고 그보다 중요하다고 믿는 본질의 문제를 거론하고 싶다.

과연 ‘오케스트라’란 무엇인가?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의 문제는 어떠해야 하는가? 돈을 많이만 투자하면 스포츠에서처럼 당장 몇 년 안에 세계 10대 목표 같은 것을 달성할 수 있는가.

우리가 세계화와 글로벌을 그토록 외치고, G 20 정상회의를 치룬 나라에서, 눈만 뜨면 해외출국자들이 엄청난 상황에서도 유독 문화에서 우리끼리만 소통되는 ‘세계적인 음악가’나 늘 고액 개런티 시비로 한국이 국제사회의 봉이란 소리를 듣는 한계 극복이 아직도 큰 과제로 남아 있다.

사실 오케스트라에 관한 답은 우리가 갖고 있지 않다. 그러므로 뿌리 깊은 전통으로 세계의 명성을 획득한 오케스트라에서 그 답을 찾지 않으면 안 된다.

세기의 거장인 칼 뵘, 토스카니니, 카라얀 등 강력한 카리스마의 지휘자 시대가 끝나고, 사회적으론 민주화가 되면서 오케스트라들도 그 순리를 따라 합리적인 운영 체제로 개편된 지 오래다.

최정상의 악단인 베를린 필은 단원들에 의해 지휘자를 뽑고, 양대 산맥인 빈필하모닉은 상임 지휘자 없이 객원 지휘자 체제로 운영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지휘자에 의해 악단이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단원에 의해 악단이 유지되는 점에서 우리와는 정반대 구조다.

일전 서울市 고위 간부가 정명훈 아니면 대안이 있는가? 라는 기사를 접하며 과연 세계 지휘자 정보를 얼마나 알고서 하는 말인가 궁금증이 생긴다. 그 대안이란 음악의 관계 전문가들이 만드는 것이지 않겠는가.

역설적으로 명문 오케스트라와 그렇지 못한 오케스트라의 차이는 지휘자로부터 얼마나 큰 영향을 받는가의 여부에 딸린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마치 공부 잘하는 학생일수록 선생님의 의존도가 낮고 거꾸로 하위권일수록 매달려 있어야 하는 이치다.

때문에 정지휘자가 아니면 대안이 없다는 말은 그간 정 지휘자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오케스트라의 功(공)을 일시에 허물어 버리는 부정적인 견해일 수 있다.

어떤 객원 지휘자가 와도 이내 적응하고 세련된 연주를 들려 줄 수 있어야 좋은 오케스트라이기 때문이다. 기초 학습을 잘 가르쳐 놓으면 알아서 문제를 잘 푸는 것처럼 정 지휘자가 땀 흘려 악단을 조련시키는 동안 우리의 市 행정, 우리 오케스트라 관계자들은 지금처럼 지휘자의 발목을 잡지 않도록 오케스트라 운영에 대한 여러 가지 합리적인 규칙이나 절차들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어느 칼럼니스트가 제기한 예산집행, 세금문제의 의혹들이 사실이라면 그간 뭘 했는가? 지속성장 가능한 운영 시스템 구축을 하지 못하고 1인 체제의 카리스마가 아니면 오케스트라의 정상 운영이 어렵다면 上下撐石(상하탱석)의 불안감이 남을 뿐이다. 개인과 시의 계약 불합리성도 문제지만 시향 운영이 비효율이 된다면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외국의 경우 프랑스 지휘자 다음은 러시아 지휘자, 이태리, 스페인, 독일 지휘자 하는 식으로 일인 제체의 지휘자 한계를 극복하고 오직 교향악단을 살찌우게 하는 연주력과 레퍼토리, 초청 객원 지휘자의 스케줄이 고도의 전문적인 작업을 통해 짜이게 된다. 그래서 1인 위주의 한정된 음악의 한계성을 극복한다.

이처럼 오케스트라가 다양한 지휘자들을 만나면서 그 지휘자가 가진 최고의 주특기들이 영양분의 뿌리로 내려가 탄탄한 사운드를 구축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결정을 단원과 위원단 그리고 General Manager 또는 General Intendant 들이 예술철학을 가지고 한다. (우리의 KBS교향악단 類(류))처럼 눈가리고 아웅의 형식적인 이사회(내사람 이사회)에서 지휘자를 통과시킨다거나 단원들이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체제는 아닌 것이다.

가장 합리적이어야 할 오케스트라가 한국형(?)으로 쉽게 변질하는 환경에서 종종 오케스트라의 꿈과 비전이 때로는 정치적인 거래 수단이 될 수 있음도 경계해야 한다. (지휘자와 사진만 함께 찍어도 영광스러워 하는 분위기에서 과연 정치가가 낙점하는 것이 예술에 발전적인가 하는 점이다)

아바도(Claudio Abbado)가 전성기 때(베를린필) 자기 혼자만 지휘했을까? 아니다. 이때 사이먼 래틀( Simon Denis Rattle)도 초청되어 지휘했고 게르기에프(Valery Gergiev), 마젤(Lorin Maazel ) 등이 계속 베를린 필을 조련했고, 그러던 중 단원들은 래틀을 주목하기 시작했고 결국 바렌보임(Daniel Barenboim )과 경합해 상임 지휘자가 된 것이다.

또 하나 지적되는 것은 과다한 외국의 객원 단원 구성이다. 이들의 의존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이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면 화음은 깨뜨려지고 만다. 기술이 좋은 단원들이 리드한다는 측면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연주가 끝나면 우르르 빠져 自國(자국)으로 돌아가는 일이 자존심의 오케스트라 (구성원들)로서는 합당하지 않다. 서울 시향의 과다한 객원을 우려하는 것이 예산상의 문제도 있겠지만 이런 부조화가 초래할 공백 때문이다.

오케스트라에서는 아무리 개인기가 뛰어난다고 해도 젊은 단원만 있다면 연륜에서 배어나오는 무르익은 사운드를 들을 수가 없다. 우리가 외국 오케스트라에서처럼 백발의 단원을 찾기 어려운 것은 지휘자가 올 때 마다 오디션을 ‘傳家(전가)의 寶刀(보도)’로 휘둘렀기 때문이 아닌지? (이 역시 일천한 오케스트라 역사에서 정치권의 입김에 의해 바뀌다 보니 그 중 일부는 전시효과(?) 때문에 겪는 피눈물의 애환...)

오케스트라의 궁극은 앙상블이기 때문에 지휘자와 단원, 단원과 단원간의 호흡이 더 중요하다. 솔로 잘한다고 앙상블이 좋은 것은 아니기에 서로 존중하고, 서로 배려하는 데서 정교하고 끈끈한 앙상블이 구축되는 것이다.

외국의 명문 오케스트라들이 하나같이 단원이 악단을 이끌어가는 민주적인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이유이다. 때문에 1인에게 지나친 권력이 주어지면 초기에는 좋을지 모르지만 곧 많은 폐단이 생길 수 있다. 그리고 공무원 발상으로 지휘자를 공고기일에 쫓겨 마치 신입사원 뽑듯 한다면 이도 오케스트라 생리에 밝은 것이라 할 수 없다.

음악계 일각에선 해외로 나가 세계적으로 더 활동해 나라를 빛내야 할 정 지휘자가 국내에서 이만큼 시향을 키운 만큼 자유롭게 풀어주어 글로벌 네트워크를 탄탄하게 구축해 후배들을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의견과, 제2기를 맞은 만큼 시스템 전반의 리모델링을 위해 내년을 전원 객원 시스템으로 가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하는 案(안)이 나오고 있다. 물론 오케스트라에 스케줄이 확정되어 있겠지만 이를 효율적으로 잘 조절한다면 당장 결론을 내려 임기 내내 격렬한 논쟁에 휩싸이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싶다.

지휘자로선 재충전의 기회도 되고, 쌓인 懸案(현안)에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박원순 市長(시장)의 부담도 덜어 주면서 우리가 오케스트라 시스템에 대해 적응하고 보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을 떠올린다. 모차르트 시대의 귀족들은 즉석에서 評(평)을 할 만큼 높은 안목을 가져 천재 모차르트도 이들의 기분을 맞추는 줄타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정치와 예술이 서로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대단히 어려운 문제이지만 현명하고 성숙한 사회는 이 모두를 살리면서도 결코 예술가를 죽이지 않을 것이다. 그 누구를 탓하기 전에 우리가 너무 눈이 어두워 세계 사람들이 아닌 우리들끼리만 ‘지휘자가 세계적이다 아니다’ 하는 논쟁은 이제 썰렁한 옛 이야기가 되었으면 한다.

따라서 이번 ‘정명훈과 서울시향 문제’에서 정말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하나씩 정리해 나가는 것이 옳을 줄 안다. 그것은 본고장인 서구를 모델로 한 오케스트라의 합리적인 운영 시스템 구축일 것이다. 또 예술가가 늘 존경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대안 없는 비판 보다 애정을 가지고 오케스트라를 사랑하는 마음이 더 중요할 것이다.

성장에 쫓겨 우리가 몰라서 그렇게 했다면 이제부터라도 차근차근 문제를 하나씩 심도 있게 풀어가야 한다./탁계석 예술비평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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