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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노블리스 오블리제

헬로우 럭키 찬! 2012. 6. 20.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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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괜찮은 내용 몇 개를 골라 짜집기 한 거!

   

  「혜택받은 자들의 책임」 또는 「특권 계층의 솔선 수범」이란 뜻의 이 말  은 신분에 따르는 도덕상의 의무, 실천에 대하여 로마 귀족이 가졌던 기본 철학으로, 서구 사회의 귀족들에게 필수적인 덕목으로 전승된다.

  

 고대 로마 제국에서는 <노블레스 오블리제>가 귀족들의 불문율이었다. 귀족들은 자신들이 노예와 다른  

 점은 단순히 신분이 다르다는 게 아니라 사회적 의무를 실천할 수 있다는 사실이라고 생각할

 만큼  <노블레스 오블리제>실천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특히 로마의 귀족들은 병역의무의

 모범을 보여 주었는데, 명장 한니발이 카르타고에 맞선 포에니 전쟁에 직접 참여하였고,

 16년 간의 제2차 포에 니 전쟁 중에는 13명의 집정관이 전사하였다.

 한편 병역의무를 실천하지 않은 사람은 호민관이나 집정관 등의 고위 공직자가 될 수 없었을 만큼 <노블

 레스 오블리제>실천이 당연시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고대 로마에서는 귀족들이 자신의 재산을 기부하여 공공시설을 신축하거나 개.보수 하였으며 군자

 금으로 기부하기도 하였는데, 실제로 제1차 포에니 전쟁 당시 군선 200척을 건조하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던 사례는 유명한 일화가 되고 있다. 이렇듯 지배계급인 로마의 귀족들이 사회적인 의무를 충실

 하게 실천하는 전통은 로마사회의 굳건한 통합을 이루었으며 나라에서도 장려정책을 사

 용하여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었다고 한다.

 

 유럽의 경우, <노블레스 오블리제>는 오늘날 사회 상류층의 의식과 행동을 지탱해 온 ‘정신적인 뿌

 리’라고 할 수 있다. 전쟁이 발발하면 귀족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전쟁터에 앞장서서 나가는 ‘기

 사도 정신’도 바로 여기에 바탕을 두고 있고 이러한 귀족사회의 전통적 모럴(morale)은 면면히 이

 어져 내려오게 되었으며, 제 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에서는 영국의 고위층 자제가 다니던

 이튼 칼리지 출신중 2000여명이 전사했고, 포클랜드 전쟁 때에는 영국여왕의 둘째 아들이 전투헬기

 조종사로 참전하였다. 그리고 현재 영국의 여왕인 엘리자베스 2세는 1945년 조국을 위해 봉사하고

 싶다며 영국여자국방군의 구호품 전달부서에서 군복무를 함으로써 도덕적 의무를 다하려는 지도층의 솔선

 수범 자세는 국민정신을 결집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미국의 주요 사례로는 6.25 한국 전쟁 때 미군 장성의 아들이 142명이나 참전하여 35명이 목숨을

 잃거나 부상을 입었으며, 아이젠하워 장군의 아들도 참전하였다. 또한 철강왕 카네기, 석유 재벌 록

 펠러에서부터 현존하는 세계 최대의 갑부 빌 게이츠에 이르기까지 미국 부자들의 자선 기부 문화도

 이런 <노블레스 오블리제> 전통을 물려받은 것이다.

 

 조선 정조 당시, 흉년으로 식량난에 허덕이던 제주도 사람들을 위해 전 재산으로 쌀을 사서 분배한

 거상 김만덕, 군수업으로 번 막대한 재산을 독립운동에 헌금한 최재형, 집안의 노비를 해방하고 민족

 적 자립을 위한 무장투쟁의 선봉에서는 동시에 국가의 미래를 위한 교육사업도 활발히 펼친 김좌진 장

 군, 1백리 안에 굶는 이가 없게 하라는 신념을 사회복지로 실천한 경주 최부자집, 도덕적 해이를 경계

 하여 정경유착, 탈세, 마약생산을 절대로 하지 않았으며 사원들을 경영에 참여토록 한 유한양행 설

 립자 유한일 같은 분들이 우리나라의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자랑스러운 사람들이다.

 

 아래....프랑스에서는 14세기 백년 전쟁 당시 지방도시‘칼레’가 영국군에게 점령당하여 그간의

 반항에 대한 책임으로 칼레시민 6명을 처형당해야 할 상황을 맞게 되었고 이때 자발적으로 시장,

 부자상인, 법률가 등 귀족들이 처형당하겠다고 자원하였다. 이에 영국 왕 에드워드 3세는 죽음을 자처

 했던 시민 6명의 희생정신에 감복하여 처형을 면제하게 했고 그 사건이후로 높은 신분에

 따른 도덕적  의무인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상징이 되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