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황산 일붕사는 세계 최대의 동굴법당이며 영국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고 합니다. 서기 727년 신라의 혜초스님이 창건한 성덕암이 일붕사의 전신이라고 합니다만 현재, 고찰의 흔적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 내력은 끝에 올려 둡니다.
일붕사 전경
6시 10분.
이른 아침의 아스팔트는 촉촉하게 젖어 있었습니다.
막 그친 듯 군데군데 빗물이 조금씩 고여 있는 곳도 눈에 띕니다.
손자에게 풍덩 빠져 가끔 홀가분하게 나섰던 나홀로 여행을 미뤄 둔 지 1년 여.
어제 출발하기로 한 떨 모임의 나들이 계획이 무산된 데다 마침 딸아이의 시댁 방문을 기회로 마음 먹고 배낭을 짊어졌습니다.
이제 멀미 일으키는 빌딩 숲을 벗어 날 겁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여행에는 언제나 변수가 작용합니다.
오늘은 특히 그랬습니다.
일찍 나서서 천천히 돌아본 뒤 해거름 까지는 귀가하자 했는데.....묘사철과 단풍철이 겹쳐진 달이란 걸 완전 잊고 있었던 ....
휘파람 불며 들어 선 승강장엔 기~ㄹ게 늘어 선 객의 행렬.... 뜨아아아~
이래서, 의령행 7시 첫 버스는 시간도 되기 전에 만차로 출발해 버렸고 40분이나 더 기다려서야 겨우 제일 뒷 자석 한 자리에 끼어 앉을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엄청 뚠뚠한 옆 자리 아저씨의 덜 익은 술 냄새와 왠지 의도적인 부비부비에 손의 위치.....정말이지 기분 개똥(아...비유법 사용한 이래 처음으로 개똥에게 미안해졌습니다.) 같은 1시간 20분이었습니다.
***출발 즈음엔 통로까지 꽈악 찼습니다.
시외버스 도착시간에 맞춰 연계되어 있었던 듯 막 출발 준비를 하는 읍내버스에 오르고 나서야 기분이 한결 나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농익은 가을이 팔색의 자태로 손에 닿을 듯 눈 앞에 펼쳐졌기 때문입니다. 일붕사 향하던 길에 본 마을을 돌아 흐르는 강과 연육사빈 형태의 빛나는 모래밭은 지나치기 아까운 절경이었지만 내려 볼 수 없어 인증샷 한 컷 못 건진 아쉬움이 컸습니다.(요때는 자가운전이 장땡입니다.)
* 매표소에서 내다 본 의령 시외버스 터미널 전경입니다. 의령은 합천으로 가는 버스의 경유지입니다.
이동 시간 35분.
드디어 일붕사가 위치한 궁류면입니다.
표지판을 읽던 순간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우순경 사건이 섬뜩하게 다가오더라지요.
당시, 내연의 처와 말다툼 끝에 만취 상태로 궁류지서에서 탈취한 수류탄 등 몇 종의 무기로 주민 56명을 살해하고 자폭하여 한동안 신문의 사회면을 톱으로 장식했던 1982년의 사건.
인적 없는 마을 입구 정경을 디카에 담은 후 휑하니 달렸습니다.
이 와중에 눈에 띈......어라? 요렇게 작은 마을에 양조장씩이나!
궁류교에 서서 본 마을 뒷 산입니다. 찬바람에 보얗게 속살을 드러낸 자작나무 한 무리가 눈부십니다.
* 왼쪽의 빨간 건물은 (아마도)군립 노인요양병원입니다. 이 정도 규모의 노인을 위한 병원이 몇 곳이나 눈에 띄었습니다.
오늘 의령의 바람은 심술이 극에 달했습니다.
담아 가지도 못 할 애꿎은 나뭇잎만 미친듯 털어대고 억새의 허리를 사정없이 짓밟고 있었습니다. 개울은 갈 길이 막혀 주름 가득한 얼굴로 바람을 견디고 있습니다.
떨어진 은행잎이 와사사 와사사 지들 끼리 뭉쳐 바람길을 따라 굴러다니고 있습니다. 뒷편 연두색 팬스로 둘러쳐진 곳이 마을 공설운동장이랍니다. 이 마을의 공은 본의 아니게 산으로 개울로 자주 나들이 다닐 것 같습니다. ㅎㅎ
곳곳에 담고 싶은 풍경들이 많았습니다. 몇 장 올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