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스님과는 ....
초등학교 4학년 때, 전학하면서 같은 반 친구가 되었습니다.
졸업 후 각자의 학업 생활로 뜸 하다 조금은 자유스러웠던 대학 때부터 제가 있던 없던 종종 우리 집을 왕래하곤 하였지요.
여식의 친구라면 무조건 좋아 죽는 부모님은 붙임성 있고, 특히 성실한 그 친구를 많이 이뻐하셨습니다.
대학을 졸업하고 친구는 일본 계열의 회사에 취업했지만
속세와의 인연은 그리 깊지 못 하였던지 몇 개월 되지 않아 사직서를 내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평소 도반들과의 인연을 이어오며 공부해 왔던 지금의 종파에 보령이라는 법명으로 귀의한 후,
짧은 생의 마지막 순간도 자신의 손때가 잔뜩 묻은 우각사에 내려 놓았죠.
오랜 동안......끊어질 듯 이어지며 그렇게 제 삶 안에서 알게 모르게 의지처가 되어 주었던 친구는,
지금도 가끔 제 생각 속을 다녀 가곤 합니다.
몇 년 전 홀로 여행 중, 우각사에 들른 적이 있었습니다.
유영하던 기억의 한 자락이 가르켰던 그 곳...문득 친구의 흔적을 되돌아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면서 올랐던 그 길의 끝.....
사바세계의 상처를 고스란히 보듬어 줄 것 같았던 그 옛날의 평온함을 찾기엔
여느 사찰과 다를 바 없이 주변은 너무 인위적으로 비대해져 있었습니다.
한국의 넘쳐나는 매머드급 교회나, 부산의 모 사찰 같은 현대식 대형 건물들...
오늘의 종교지도자들은 바벨탑 쌓기에 모든 것을 투자하느라 민중의 고통이 보이기는 할까,
절망의 신음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는 할까....
그들을 보고 있으면 중세의 공포정치 중심에 존재했던 교황청이나
종교를 등에 업고 국민 위에 군림하며 마녀사냥에 여념 없었던 흡혈귀 같은 군주들이 생각납니다.
오늘, 딸네와 함께 수 년 만에 다시 찾은 (제 나름)보령스님의 우각사입니다.
딸아이에게 있어서도 보령스님은 남다른 존재였던 터라 이번 행보에 동행하였어요.
후에 건립된 양로원은 어르신들의 감성을 배려한 듯 잘 조성되어, 봄날 오후 절정의 아름다움을 뿜어 내고 있었습니다만, 제게 있어 최고의 풍경은 20여 년 전, 수줍게 숨어 있던 산 속의 소박한 우각사입니다.
생전의 스님을 알고 계시는 다음 까페의 어느 분이 가르쳐 주신 묘탑(사진의 오른쪽)입니다.
겉으로 보기엔 무명의.....
멀리 화성각이라 명명된 묘탑으로 오르는 계단이 보입니다.
손주와 함께 사찰 내부를 돌아보던 중,
옛 모습을 제대로 간직한 채 '우각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그 때는 슬레이트 지붕이었던) 건물을 발견했습니다. 문득 코 끝이 저려오면서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그래....우각사는 이 건물에서 시작되었으니 이 곳이 진정한 우각사인 거지...
안쪽에 보이는 건물이 옛날엔 설송이라는 큰스님이 가끔 묵어 가던 곳으로 기억합니다.
친구는 그 어른의 어떤 부분에 끌려 연고도 없는, 안동의 이토록 낯선 산 속에 마음을 내려 놓았던 걸까....
우리 중 가장 부유했던 그가,
아버지의 억압적인 분위기에서 늘 숨죽여 사셔야 했던 어머니를 가슴 아파했던 그 친구가,
같이 살던 외할머니를 끔찍히 사랑한....
끝내는 출가를 결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단지 그 어른 때문만은 아닐 것 같기도 합니다만...
하얗게 휘어진 저 길을 오르면 우각사입니다.
내려 오는 길, 언제 다시 오게 될 지....차에서 내려 한참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우각사와의 인연이야 사찰의 이름이 존재하는 한 죽는 날까지 이어져 있겠지만
무엇인가에 등 떠밀려 내려 온 것 같은 서러운 이 느낌은 당분간 지워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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