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이로 올해 91세 되셨네요.
천수를 누리시고 큰 고통 없이 떠나셨다 해도 영면의 순간은 참기 힘든 슬픔입니다.
입원 후 한 달 보름 여.
물 한 모금 삼키는 것도 힘들어 하는 아부지를 보고 온 지 이틀 만에 임종을 준비하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마음의 준비는 평생을 해 와도 도무지 도움 되지 않는 물건인가 보옵니다.
심장이 벌렁 벌렁 발은 바닥을 느끼지 못 하고 허공에 떠 있는 듯.....
그렇게 정신없이 달려 가 이승에서의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아버지를 뵐 수 있었습니다.
평생 엄마를 힘들게 하신 아버지를 그닥 살갑게 대한 적은 없었지만,
침대의 반쪽 만으로도 충분 할만큼 터무니 없이 작아진 당신의 육신 앞에서는 하염없이 눈물만 흐르더군요.
어쨌거나 우리 남매를 이 세상으로 데려 와 주신 분이셨으니....
4월 12일(음3월 16일) 11시 10분.
이제는 더 이상 눈을 뜨지 않을 것 같았던 아버지가 숨결 놓기 몇 초 전 기적처럼 해맑게 눈을 맞춰 주셨습니다.
‘아부지 고마웠어요. 이 아름다운 세상으로 데려 와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살아계시는 동안 마음 풀지 못 해 죄송해요. 행여 섭섭함 모두 이곳에 묻으시고 어여 달려가셔서 엄마 손 꼭 잡아 주세요.’
증손주의 절을 받았습니다. 녀석의 의젓한 자태에 또 눈물이.....
마음이 바빴습니다.
구미 가족묘지에 계신 엄마를 이장해야 했어요.
장지를 산청 호국원으로 정한 후 합장하기로 했거든요.
복잡한 절차는 구청에서 정년퇴임한 둘째오빠가 처리했지만 직계 자녀가 작성해야 하는 부분이 있어 상복 차림으로 구미까지 달려갔습니다.
어쨌거나 큰댁의 오빠와 동생들의 도움으로 서류 절차와 이장을 일사천리로 끝냈습니다.
생전에 불효한 자식이 제일 섧게 운다더니.....
참 많이도 울었습니다.
훗날의 기억을 위해 호국원에서 눈물로 담은 아버지 마지막 기록입니다.
동생은 아버지의 유골을, 조카는 어머니의 유골을 안고 있는 모습...아마도 오래오래 잊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문상객을 맞이하는 동안 녀석은 영락공원 주변을 이렇게 어슬렁거리며 다녔다네요.
2015년 4월 2일에 개원한 국립산청호국원입니다.
아직은 조성 중이라 썰렁해 보였지만, 우리가 세상에 없어도 오랜 세월 두 분 잘 보살펴 줄 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 지는 것 같습니다.
어쩌면 퇴직 후 산청과 가까운 곳에 터를 잡게 될 것 같네요.
훈련 중 하루 휴가를 받아 나온 큰 조카입니다.
미래의 전투기 조종사 우리 조카!
군복 입고 할아버지의 영정을 품은 녀석이 얼마나 든든해 보이던지....
시부모 모시기를 30여년...
수족이 불편했던 엄마 때문에 10년 넘게 몸 고생, 고집불통 아부지 땜에 지금까지 마음 고생....이제 올케도 많이 편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엄마, 아부지....
죽는 날까지 감사하며 살게요, 잊지 않을게요.
이번 생의 좋은 기억만 챙겨 가시고 가끔은 저희들 예쁘게 사는 모습도 돌아 봐 주세요.
다 못한 효도야 평생의 회한으로 남겠지만 이제 두 분의 사랑에 뻔뻔하게 묻어가려 합니다.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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