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끝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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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숨 쉬는 너희가 좋아^^

삶의 덤/영화, 프레임 속의 세상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

헬로우 럭키 찬! 2015. 10. 3.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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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크리슈나무르티의 연인이기도 했던 헬렌은 24살에 자신보다 21살 연상이었던 스코트를 만난 후, 사회의 저속함으로부터 벗어나 버몬트 숲에서 53년 동안 그와 땅에 뿌리 내린 삶을  함께 했습니다.

1983년에 스코트가 먼저 세상을 떠났고, 헬렌은 그로부터 8년 뒤에 이 책을 세상에 발표한 뒤 1995년 그의 뒤를 따라.랐습니다.

 

그리고 2004421일에서야 제가 처음으로 이 책을 만나게 되었네요.

이후의 제 의식에도 상당히 구체적인 변화가 있었습니다.

 

암튼,

연휴 동안 바다에 발을 담그고 산을 오르면서 새삼 두 분이 생각났습니다.

책장을 뒤져 밑줄 그으면서 읽었던 많은 부분을 다시 들춰 보다 까닭없이 눈물이 쏟아져서....

 

1963년 그가 죽음을 염두에 두고 남긴 주위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은 지금도 제 생각을 이끌어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정서로는 가당치 않은 일이겠지요.

자칫 남아 있는 자식들에게 누를 끼칠 수도 있을 일입니다.

결국 장례업자 배 불려 주는 일을 해야만 효도했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한국의 장례문화라서....

언젠가는.....

 

첨부이미지 

 

  

1. 마지막 죽을 병이 오면 나는 죽음의 과정이 다음과 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o 나는 병원이 아니고 집에 있기를 바란다.

    o 나는 어떤 의사도 곁에 없기를 바란다.

       의학은 삶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는 것처럼 보 이며, 죽음에 대해서도 무지한 것처럼 보인다.

    o 그럴 수 있다면 나는 죽음이 가까이 왔을 무렵에 지붕이 없는 열린 곳에 있기를 바란다.

    o 나는 단식을 하다 죽고 싶다.

       그러므로 죽음이 다가오면 나는 음식을 끊고, 할 수 있으면 마찬가지로 마시는 것도 끊기를 바란다.

 

2. 나는 죽음의 과정을 예민하게 느끼고 싶다.

   그러므로 어떤 진정제, 진통제, 마취제도 필요없다.

 

3. 나는 되도록 빠르고 조용하게 가고 싶다. 따라서...

    o 주사, 심장 충격, 강제 급식, 산소 주입 또는 수혈을 바라지 않는다.

    o 회한에 젖거나 슬픔에 잠길 필요는 없다.

       오히려 자리를 함께할지 모르는 사람들을

       마음 과 행동에 조용함, 위엄, 이해, 기쁨과 평화로움을 갖춰 죽음의 경험을 나누기 바란다.

    o 죽음은 광대한 경험의 영역이다.

        나는 힘이 닿는 한 열심히, 충만하게 살아왔으므로 기쁘고 희망에 차서 간다.

        죽음은 옮겨감이거나 깨어남이다. 모든 삶의 다른 국면에서처럼 어느 경우든 환영해야 한다.

 

4. 장례 절차와 부수적인 일들.

    o 법이 요구하지 않는 한, 어떤 장의업자나 그 밖에 직업으로 시체를 다루는 사람의 조언을 받거나 불러들여서는 안 되며,

       어떤 식으로든 이들이 내 몸을 처리하는 데 관여해서는 안 된다.

    o 내가 죽은 뒤 되도록 빨리 내 친구들이 내 몸에 작업복을 입혀 침낭 속에 넣은 다음,

       스프루스 나무나 소나무 판자로 만든 보통의 나무 상자에 뉘기를 바란다.

       상자 안이나 위에 어떤 장식도 치장도 해서는 안 된다.

    o 그렇게 옷을 입힌 몸은 내가 요금을 내고 회원이 된 메인 주 오번의 화장터로 보내어 조 용히 화장되기를 바란다.

    o 어떤 장례식도 열려서는 안 된다.

       어떤 상황에서든 죽음과 재의 처분 사이에 언제, 어떤 식으로든 설교사나 목사, 그 밖의 직업 종교인이 주관해서는 안 된다.

    o 화장이 끝난 뒤 되도록 빨리 나의 아내 헬렌 니어링이, 만약 헬렌이 나보다 먼저 가거나 그렇게 할 수 없을 때는

        누군가 다른 친구가 재를 거두어 스피릿 만을 바라보는 우리 땅 의 나무 아래 뿌려 주기 바란다.

 

5. 나는 맑은 의식으로 이 모든 요청을 하는 바이며,

   이러한 요청들이 내 뒤에 계속 살아가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존중되기를 바란다.

 

 

 

 

 

살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은 우리 자신의 작은 자아 속에서가 아니라

     우리 삶이 전체와 연관되어 있음을 깨닫고 그 속에서 우리의 삶을 꾸려 가는 것이다.

 

소유에 의존하는 삶은 일을 하거나 존재를 바탕으로 한 삶 보다 자유롭지 못 하다.

 

전쟁 반대...폭력과 무력 충돌이 생명과 사회의 부를 끔찍하게 손상시키며,

    사회 변화를 가 져오는 방안 가운데 가장 값비싼 대가를 치르는 것.

    전쟁이란 문명 국가들이 조직적으로 저지르는 파괴와 대량 학살이자, 제국주의 국가들끼 리 벌이는 힘겨루기.

 

군중보다 한 발짝 앞으로 나가면 지도자가 된다. 두 발짝 앞서면 방해꾼이 된다. 세 발짝 나가면 미친 사람으로 의심을 받는다.

 

진정한 예술가는 그림을 그리거나 색칠하는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온 삶에서 모든 생각과 행동을 아름다움에 맞추는 사람이다.

 

무엇을 위한 자유인가?

 

이제 나는 자연을 마주하는 데서 오는 기쁨을 느껴야 하며,

    헐벗은 땅에서 빵을 얻고 내 손으로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기쁨과 내가 그려온 것을 완성하는 기쁨을 느껴야 한다.

 

최선의 삶이란 어떤 주어진 여건에서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을 하는 것.

 

덜 갖고, 더 많이 존재하라. (개인적으로 가장 크게 와 닿았던 말입니다. 부단한 자기 성찰 이 필요한 부분이죠.)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당신이 갖고 있는 소유물이 아니라 당신 자신이 누구인가 하는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어떤 행위를 하느냐가 인생의 본질을 이루는 요소 라고 생각한다.

    단지 생활하고 소유하는 것은 장애물이 될 수도 있고 짐일 수도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으로 우리가 어떤 일을 하느냐가 인생의 진정한 가치를 결정짓는 것이다.

 

지혜는 지식을 쓸모있게 쓰는 데서 비롯되는 것.

 

어떤 경우에도 되새겨 생각해볼 일은 우리가 무엇을 소유하고 있느냐가 아니라

     우리 자신 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는 어떤 일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흔히 우리의 소유물은 그 일에 방해가 됩니다.

 

(God)과 존재(Being)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라는 사실.

 

인생은 단추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행위하고 건설하며, 일정한 형태로 생각을 구체화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죽음은 삶의 두 영역 사이에 있는 출입구.

    ‘사람의 몸뚱이는 생명력이 빠져나가면서 먼지로 바뀌지만, 다른 모습을 띤 삶이 그 생명 력을 받아 이어진다네.

    우리가 죽음이라 부른느 변화는 우리 몸으로 보아서는 끝이지만, 같은 생명력이 더 높은 단계에 접어드는 시작이라고 볼 수 있지.

    나는 어떤 식으로든 되살 아남 또는 이어짐을 믿네. 우리 삶은 그렇게 계속되는 것이네.

 

언제 어디서 죽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죽음을 맞이한다는 사실과 어떻게 맞이 하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탄생을 볼 때와 같은 눈으로 그것을 보는 법을 배우자.

    그러면 곧 우리 마음은 탄생을 축 하할 때 같은 기쁜 기대를 품고 죽음의 발자국을 따라 갈 것이다.

 

탄생과 죽음은 우리 지식의 한계를 표현하려고 지은 말이다.

 

 

1983824일 아침 나는 그이의 침상에 같이 있으면서 조용히 그이가 가는 것을 지켜 보았다.

나는 반쯤 소리내어 옛 아메리카 토착민들의 노래를 읊조렸다.

나무처럼 높이 걸어라. 산처럼 강하게 살아라. 봄바람처럼 부드러워라. 네 심장에 여름날의 온기를 간직해라.

 그러면 위대한 혼이 언제나 너와 함께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