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끝의 집

I’ll always remember us this way

내가 숨 쉬는 너희가 좋아^^

울타리 너머/세상 속으로

눈을 끄는 몇 권의 책

헬로우 럭키 찬! 2013. 3. 30.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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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사로잡는 몇 권의 책 미리보기

1. 언제나 여행처럼 /이지상

2.  가족 쇼크/포 브론슨

3.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김예슬 선언

4. 선을 넘지 마라/시부야 쇼조

5. 김치 애국주의/최석영

6. 옛것에 대한 그리움/김종태

7. 2차 대전의 숨은 영웅들/토마스 J. 크로웰

8. 그리고 그들은 무대에 올랐다/김해영 

 

1. 언제나 여행처럼  / 이지상 저

- 여행이 없는 여행이야기

‘이 외로움은 무엇이고, 왜 나는 이토록 자유를 갈망하는 것일까? 돌아와서도 정신은 왜 계속 방황하고 흔들릴까?’

20년 간 전 세계를 여행하고 여러 편의 여행에세이를 쓴 여행 작가 이지상은 이 고민을 너무나 잘 아는 ‘오래된 여행자’다. 떠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고 마음의 중심을 갖고 일상을 살아가면 그것 또한 의미 있는 여행이라고 말한다.

<언제나 여행처럼>은 그가 여행과 삶의 숱한 고민을 보다 깊이 있게, 인문학적인 시각으로 넓혀 사유하고 얻어낸 삶의 방식에 대한 이야기다.

이 책은 우리가 여행에 있어 당연하게 여긴 수많은 감정들에 대해 보다 근원적인 이유들을 들려준다. 우리가 왜 그토록 자유를 갈망하는지, 그렇게 갈망해 떠났으면서도 어느새 돌아가고자 하는 마음이 드는 이유는 무엇인지, 하지만 돌아오면 곧 흔들리는 까닭은 또한 무엇인지….

 

text Point▶ 아…… 나도 저랬었지. 저렇게 힘들게 세상을 헤치고 다녔었지. 자기 몸집보다 더 큰 배낭을 멘 여학생의 모습을 보니 조카도 생각났다. 이제 나의 조카도 곧 대학생이 될 것이고, 이런 험난한 세계를 저렇게 헤치고 나갈 것이다. 들판을 걸어오던 그 여행자들은 한계와 고통을 극복하며 길을 가는 전사였고, 구도자였으며, 작은 영웅들이었다. 자라면서 그들은 배고픔이 뭔지 모르고 컸을 것이다. 그러나 배고픔에 시달리고, 곳곳에 구걸하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인도라는 대륙을 헤쳐가면서 많은 것을 느꼈으리라. 가끔은 남몰래 눈물도 흘렸을 것이고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 여행은 나에게 그런 것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험난한 여정을 스스로 선택하고, 도전하며, 앞으로 진군하는 용감한 여행자들을 사랑한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진실되게 노력하고 또한 겸허해지는 인간만큼 매력적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여행길에서 나는 그런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그래서 여행이 좋다.

지은이가 학문적 깨달음을 얻으며 스스로 고민의 해답을 찾은 것처럼 읽는 이 역시 책장을 넘기며 ‘아, 그래서 내가 그렇게 괴로웠구나’라고 공감할 수 있다.

이 책은 나아가 삶 또한 긴 여행이기에 오늘의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각계각층 사람들의 고단한 삶과 억눌린 현실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 방식에까지 뻗어나간다. 지은이는 “최종적으로는 여행을 그리워만 하는 게 아니라 아픈 마음을 치유하며 일상을 여행처럼 살아갈 때, 인생은 더욱 충만하고 행복해질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지은이는 여행과 삶에 막스 베버, 게오르그 짐멜, 가스통 바슐라르, 미셸 마페졸리, 질베르 뒤랑 등 사회학자와 철학자들의 이론을 들어 지적 쾌감을 더한다.

일례로 ‘여행자와 카사노바는 같다’고 말한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 짐멜은 이 둘을 같은 방식으로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 본다. 어제를 오늘로 가져와 연속적인 삶으로 이어가지 않고,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일이 그들에게는 없기 때문에 부담 없이 그저 매일의 ‘오늘’을 즐기며 살아간다.

 

text Point▶ 나는 돈을 많이 못 벌어도 병든 어머니를 수발하는 아들이었고, 아내의 고민을 들어주고 소통하는 남편이었으며, 시장도 보고 살림도 했으며, 블로그를 통해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글을 쓰고, 또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존재였다. 얼마나 돈을 버느냐, 얼마나 사회를 변화시키느냐, 얼마나 정치적인 효과가 있느냐는 ‘유용성’의 관점에서는 무능력한 행위였지만, 나에게는 그런 사소한 역할들이 더 중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선한 마음으로 과욕을 버리고 착하게 부지런히 노력하면 길이 뚫릴 것이라고 믿었다. 한 걸음씩 너무 발밑도 말고, 너무 먼 지평선도 말고, 백 미터 전방쯤만 바라보면서 꾸준히 걸어가는 것, 그 방법밖에 없었다.

언젠간 잘 되겠지 라는 생각은 너무 상투적이다. 그건 평생 달고 살 고민일 것이다. 다만 이 험한 세상에서 견뎌낸다는 것, 그게 인간 승리며, 가슴속에 자신의 세상을 키워나간다는 것, 그건 꿈이라는 이름의 승리다.

오래된 여행자인 지은이는 그의 이론에서 고민의 해답을 발견하고 이야기를 확장해 공감대를 찾는다. 여행자로서의 자신의 삶과 사회학자들의 이론을 씨실과 날실 삼아 잘 빚어낸 이야기를 통해 학자들의 낯선 이론을 자신의 삶에 투영해 이해하고 소화하게 된다.

지은이는 이 책이 여행이나 사회에 대한 분석이 아닌 여행으로 인해 마음 아파하는 이들에게 힘을 주는 데 있다고 말한다. 그는 “떠나지 못함을 아쉬워 말며 상상의 힘으로 삶을 시처럼 살아간다면, 매순간이 여행이고 당신이 있는 그곳이 곧 여행지”라고 강조하면서 “결국 여행도 삶도 모두 마음에서 시작하기에 올바른 꿈을 꾼다면 언제나 자유로우며, 우리가 꾸는 꿈이 바로 우리의 삶”이라고 말한다.

 

 

가족 쇼크 / 포 브론슨 저

- 가족이 위기에 처했다?

과거에 비해 이혼율이 높고, 재혼 가족과 대체 가족이라는 새롭게 처리해야 할 현상이 생겼으며,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적다는 등 우리는 각종 매체를 통해 쉽게 접할 수 있다. 이 증거들은 우리가 ‘사회적 표준’이라 생각하는 통념과 거리가 있는 자신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현대 가족은 정말 위기에 처한 것일까?

<가족 쇼크>는 기존의 전통적인 가족관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로운 가족관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지은이 포 브론슨은 취재를 바탕으로 정신과의사, 역사학자, 사회학자를 비롯한 각 분야 전문가들을 통해 검증한 결과, ‘가족이 위기에 처했다’라는 것은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흔히 전통가족을 아버지가 가장이고 어머니는 주부인 가족 형태로 정의하고 이들의 자녀와 이루는 가정을 사회적 표준이라고 본다. 그러나 애초 이런 가족은 존재하지 않는다. 또 이러한 편견이 ‘모범적인 가정을 꾸릴 수 있다’라는 젊은이들의 자신감을 앗아가고 결혼율과 출산율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일례로 ‘과거에 비해 이혼율이 높다’라는 편견은 이혼에 관한 법률이 상당히 많이 바뀌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혼율의 측정치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 예전에는 이혼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이혼율이 낮았다. 1970년대 이혼율의 급격한 증가는 갑작스레 결혼생활이 불행해졌다기보다는 법적 기준이 완화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그런데 이혼은 종종 손쉬운 도피 수단으로 비난을 받곤 한다. 많은 여성에게 있어 이러한 비난은 주제넘고 부당한 처사다. 영국에서는 전체 이혼 중 3분의 1이 가정폭력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캐나다에선 이혼 여성의 절반이 학대 피해자다. 이것이 단지 가난한 사람들만의 문제일까? 미국 중산층도 전체 이혼 중 20퍼센트 이상이 폭력과 관련되어 있다. 만약 잦은 불륜과 술주정 때문에 이혼율이 증가하는 것이라면 이혼의 상당수는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 격려 받을 일이다.

지은이는 “많은 사람에게 이혼은 문제가 아니라, 더 나은 삶을 가져다줄 해결책”이라면서 “다행스럽게도 요즘 사람들은 끔찍한 결혼생활을 청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을 업신여기거나 무시하는 것은 잘못된 행위”라고 말한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적다’는 편견은 사회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반증할 수 있다.

사회학자들이 1915년부터 실시해 온 부모들의 시간활용에 관한 연구, 즉 부모들에게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기록하는 일지를 쓰게 한 연구에 의하면, 엄마들이 온종일 집에 있다고 해서 반드시 아이들과 직접적인 상호작용을 하는 것은 아님이 밝혀졌다.

엄마들은 꼬맹이들이 형제·자매와 돌아다니거나 옆집에 가서 노는 동안 집안일을 하고 있었다. 오늘날의 부모들은 다른 시대에 비해 자녀와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하는 시간이 약간 더 많다. 미국과 영국을 비롯한 거의 모든 지역의 실정이 이러하다.

이러한 편견은 실제 존재하지 않는 가족의 모습을 기준으로 삼게 하고, 현실의 가족을 힘들게 한다. 그러다 보니 아이를 원치 않는 젊은이 중에는 교육 수준이 높고, 성공 가능성이 크며, 부모들이 여전히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이들의 비중이 상당히 높다. 그럼에도 이들은 가정에 대한 어두운 전망을 의심 없이 믿으며, 씁쓸하게 말한다. “이런 세상에 아이를 낳아서 뭐하겠어요?”

이 책에는 시련을 극복하고 관계를 회복한 열 가족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 가족들은 처음부터 완벽한 가족이 아니라 큰 시련을 겪으면서 난관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고, 그 속에서도 사랑을 주고받는 방법을 배운다. 우리는 그들을 통해 진짜 가족의 모습을 엿보게 된다.

세상에 완벽한 표준 가족은 존재하지 않지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내가 기댈 수 있는 가장 마지막 장소는 가정이라는 것이다. 지은이가 가족의 가장 중요한 구성 요소로 혈연이 아니라 ‘유대감’을 꼽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김예슬 선언

 

 

- ‘현실의 심장’ 찌른 ‘인간선언’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최근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대학(大學)을 거부한 한 젊은이가 있다. 그는 스무 살이 돼서도 꿈을 찾는 게 꿈인 서글픈 20대가 되는 것을 완강히 저항했다,

쓸모 있는 상품으로 ‘간택’되기보다 인간의 길을 ‘선택’하기 위해 탈주하고 저항한 김예슬이 바로 그다. 그의 선언은 자신을 넘어 ‘김예슬들’의 문제였으며, 대학생의 신분을 넘어 인간 김예슬의 문제였다.

그가 3장의 대자보에 다 담을 수 없었던 수많은 물음과 생각을 <김예슬 선언>을 통해 꺼내 놓는다.

그는 이 책에서 대학과 국가와 시장이라는 ‘거대한 적들’을 향한 과감한 문제제기로 모순의 실체를 선명하게 규정한다. 또 젊은이들에게 들려오는 모든 ‘거짓 희망’에 맞서 하나하나 진실을 밝혀 나간다. 나아가 거대한 적을 넘어 ‘나 자신이 바로 그 적’이라는 냉엄한 진실 앞에 자신을 세운다.

지난 3월10일 고려대학교 교정에 붙은 대자보 하나가 시대의 양심을 찔렀다.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라는 제목의 고려대학교 경영학과 3학년 김예슬의 대학 거부 선언.

그로부터 대한민국은 조용히, 그러나 크게 술렁였다. ‘김예슬 선언’은 순식간 인터넷 커뮤니티와 트위터를 통해 퍼져나가면서 격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다음 날부터는 TV와 주요 일간지를 비롯한 수많은 언론을 통해 보도됐으며, 각종 포털 메인에 올랐다.

수백 만 네티즌들은 ‘나도 모르게 눈물이 울컥거렸다’ ‘다시 삶의 용기를 얻었다’ ‘아이를 둔 아버지로서 고개가 숙여질 뿐이다’ ‘죽은 줄 알았던 마음이 뜨거워졌다’ ‘의연한 용기가 부럽고, 태연한 나의 일상이 부끄럽다’ 등 오랫동안 참아왔던 가슴 속의 말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이를 전태일의 분신자살에 비유했고, 유시민의 항소이유서에, 핸리 데이빗 소로우의 시민의 불복종에, 68혁명에 비유하기도 했다.

우리 사회는 왜 이 사건에 주목할까? 김예슬이 “대학이라는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이라 선언하고 대학을 거부한 것은 한국 최초의 사회적 대학 거부 선언이자 행동이었다.

스스로 큰 물음을 던지고,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한 그의 근원적인 인식과 행동은 우리 시대의 새로운 거울이 됐다. 이 선언은 속울음처럼 참아와야만 했던 무한경쟁의 현실, 우리 시대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는 대학문제, 사회 양극화의 뇌관인 교육문제의 심장을 찌른 것이다.

마주하게 된다

 

물어라! 묻고 또 물어라

따져라! 따지고 또 따져라

이 책은 지은이가 대학 거부를 결심하기까지 수많은 날을 고민하면서 오랫동안 품어왔던 물음들, 그리고 대학거부 선언을 한 이후 자신에게 쏟아진 수많은 물음에 대한 대답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어쩌면 이 책에는 대답보다 물음이 더 많을 것”이라며 “제대로 된 물음은 이미 답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거대한 적들’을 향한 과감한 문제제기다. 지은이는 모호한 것들을 걷어내고, 이 시대 모순의 구조적 실체를 선명하게 규정한다. 인간을 잡아먹는 시장, 자격증 장사 브로커 대학, 배움을 독점한 국가가 그가 겨눈 우리의 적들이다.

지은이는 수 많은 아이들과 부모님이 온 삶을 바쳐서 이뤄낸 ‘대학 가는 꿈’의 결과는 ‘무직, 무지, 무능의 3無 ’이고, 시장, 대학, 국가라는 ‘억압의 삼각동맹’이 만들어낸 최종의 인간상은 삶의 소중한 기능을 시장에 떠넘기고 불구가 된 ‘소비자’일 뿐이라며, 청년들에게 꿈도 열정도 도전의지도 없다는 말은 이런 현실 구조를 은폐한 떠넘기기에 다름 아니라고 일침을 가한다.

나아가 저자는 이를 통해 경쟁과 소비의 악순환으로 귀결될 수 밖에 없는 대졸자 주류 사회, 의무교육과 자격증 유일잣대 시스템에 대한 이의를 제기하고 비즈니스 문명, 도시ㆍ기계 문명, 자본권력의 세계체제에 대해 근원적 도전을 던진다.

 

거침없는 비판으로

‘거짓 희망’에 맞서다

지은이는 “우리가 희망을 잃어버린 것은 헛된 희망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그 동안의 수많은 진보 담론과 20대 담론에 대해 “우리는 충분히 래디컬(Radical)한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지은이는 “충분히 래디컬하지 못하기에 쓸데없이 과격하고, 위험하게 실용주의적이고, 민망하게 투박하고, 어이 없이 분열적이고, 놀랍도록 실적경쟁에 매달린다는 느낌이 든다”며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으로 ‘거짓 희망의 말들’을 하나하나 밝혀간다.

모두가 세계 경쟁 무대에서 1등으로 빛나라며 젊은이들의 가슴에 ‘탐욕의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G세대’ 담론, “88만 원짜리 저가상품을 188만 원짜리 중가상품으로 매장에 내어놓게 하자”는 ‘물질주의’ 진보담론을 비판하고, 인문학마저도 대학 합격과 성공과 돈벌이를 위한 경쟁력 강화와 지식권력 강화의 수단이 돼버렸다고 꼬집는다.

나아가 그는 이 시대 모든 부모들을 향해 ‘사랑의 이름’으로 아이를 길들이며 자율성의 날개를 꺾지 말아 달라고 간한다. ‘좋은 부모’가 되려 하지 말고 당신의 ‘좋은 삶’을 살아 달라고, 간절한 편지를 남긴다.

이는 IMF를 겪으면서 공고한 ‘가정의 성(城)’을 쌓고 ‘각자 살아남기’에 힘을 쏟게 된 부모 세대의 고통과 ‘부모산성 뛰어넘기’가 가장 어렵다는 친구들의 호소가 겹쳐져 아픈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우리시대 거대한 적들에 대한 선언인 동시에 그 속에서 상처받고 고독했던 우리들에 대한 격려이자 북돋움이다.

지은이는 지금까지 그가 밝힌 거대한 적을 넘어 ‘나 자신이 바로 그 적’이라는 냉엄한 진실 앞에 정직하게 자신을 비춰본다. 우리의 꿈과 욕망과 열정마저도 실은 ‘주어진 꿈’이 아닌지, ‘오염된 꿈’이 아닌지, 자신에 대한 성찰로부터 다시 시작한다.

지은이는 “생각할 틈도 없이 거짓 희망의 북소리에 맞춰 앞만 보고 진군하는 것이 훨씬 괴로운 것”이었다며 “지금 자신이 혼란스러운 것은 ‘다른 길을 찾으라’는 고통스런 선물일지도 모른다”며 스스로를, 우리 모두를 격려한다.

이 책은 특히 시대의 모순이 개인의 문제로 내던져진 이 시대 우리 모두의 이야기다. 대학을 가지 못한 이들과 농촌에서 공장에서 노동현장에서 고되게 일하는 이들 등 ‘영혼의 불안’으로 흔들리는 수많은 젊음 앞에 바치는 마음의 약속인 것이다.

 

 

 

선을 넘지 마라/시부야 쇼조

 

- 꼬인 실타래 풀어주는 ‘영역’ 알기

미리 말하지도 않고 동료의 컴퓨터를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는 행동, 애인의 휴대전화 통화내역을 살펴보는 것, 친한 친구니까 뭐든 숨기지 말자고 강요하는 행동 등 아무리 가깝게 지내는 친한 사이라 해도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넘어서는 안 되는 물리적, 심리적 ‘선’이 있다.

선, 다시 말해 영역이란 타인에게 아무런 간섭도 받지 않고 각 개인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범위이자 장소를 말한다. 하지만 나의 영역이라 해서 그것이 온전히 나만의 것은 아니다. 영역은 사람들끼리 서로 겹치는 부분이 있는데, 이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선을 넘지 마라≫는 인간관계에서 생기는 수만 가지 문제들이 상대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이 원하는 거리’가 아닌 ‘상대에게 편안함을 주는 거리’를 기준으로 자신의 말과 행동을 조율하는 것이 좋은 인간관계를 맺는 포인트다. 그런 관점에서 생각하면, 자신은 미움을 받고 있는 게 틀림없다고 믿고 필요 이상으로 거리를 두는 사람도 눈치 없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상대의 곁으로 다가가려 하지 않는 소극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상대는 자신을 싫어한다고 느낄 것이다. 회사의 상사와 부하직원 관계의 경우, 부하직원이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으면 상사는 의욕이 없거나 자신감이 부족하다는 느낌을 받게 될 위험성이 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잘 모르는 사람이 지나치게 가까이 다가오면 불쾌해한다. 불편한 사람, 어려운 사람과도 가까이 있고 싶어 하지 않는다. 심지어 가족이나 친한 친구, 상사나 편한 동료라 하더라도 자신의 영역 안으로 들어와도 좋다고 허락하지 않았는데 마음대로 선을 넘어오면 불쾌해지는 건 마찬가지다. 이런 감각은 모든 사람들에게 존재하는데, 이게 바로 영역감각이다.

이처럼 상대의 영역을 존중해주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다 하더라도 성공하지 못한다. 상대의 영역을 존중한다는 것은 사회생활에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다. 그만큼 상사와 부하직원, 동료와 동료, 남녀, 부부관계 등 모든 인간관계에서 선을 지킨다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다면 인간관계 속에 숨어 있는 영역의 비밀을 무엇일까?

주어진 일을 해내는 것이 비즈니스맨의 본분이라 한다면, 상사는 부하를 관리하는 것이 상사의 영역을 지키는 일이다. 반면 상사가 지시한 일을 구체적으로 행하고, 상사의 입장을 존중하며 체면을 세워주는 것이 부하직원으로서의 도리이자 전략이다. 그런데 상사의 발언이나 결정에 대해 대놓고 반대할 경우 상사로서는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보고, 연락, 상담은 비즈니스맨의 기본이다. 진행 상황을 보고하고 절차를 하나하나 밟는 것은 분명 부하직원으로서는 내키지 않는 귀찮은 작업이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을 때를 대비해 위험을 최소화하려면, 미리 보고하는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부하직원이 하는 일 전부를 파악하고 싶다는 게 상사들의 심리다. 그런데 부하직원이 제대로 보고하지 않으면 상사는 자신(혹은 상사의 영역)이 무시당했다고 여긴다. 사소한 것이라도 미리 상사에게 귀띔을 해줘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대를 자신의 영향권으로 끌어들인다는 의미에서 훔쳐보고자 하는 욕구는 영역의식으로 볼 수 있다. 타인의 영역에 멋대로 들어가 그 사람을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고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려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 같은 이야기는 미스터리 소설이나 영화에 그치길 바란다. 문제는 악의는 없다고 해도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타인의 영역에 멋대로 들어가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행복한 직장생활, 유쾌한 직장생활을 위해 영역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선을 ‘일부러’ 넘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각자의 고유 영역을 지켜주기만 한다면 관계의 진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관계를 유연하게 하고,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일부러라도 상대의 영역을 침범해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기본 전제는 모든 사람에게는 그만의 영역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따라서 의도적으로 영역을 침범할 때는 역효과가 나지 않을 정도의 선에서, 그리고 조급해하지 말고 상대의 반응을 탐색하면서 조심스럽게 다가가야 한다.

책은 직장생활에서 나아가 일상생활에까지 적용될 수 있는 영역의 역학관계를 다양한 사례를 통해 알려주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방법을 담고 있다.

 

 

김치 애국주의 / 최석영

-한국언론 과연 공정한가

우리나라 사람들의 적잖은 수가 왜 그토록 일본이라고 하면 분노의 대상으로, 배타적이 되는 걸까?

≪김치 애국주의≫는 우리나라 일부 언론이 만들어내는 ‘반일 감정’과 배타적 애국주의를 보여주는 언론 보도 사례들을 모아 분석하고 있다.

책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 상당수는 스포츠 경기가 끝난 뒤 ‘일본 반응’이 궁금해 한다. 일본 열도에 지진이 나면 피해를 걱정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심지어 묘한 ‘통쾌함’을 느낀다. 또 우리나라에 우호적인 인터뷰를 들으며 뿌듯한 기분이 들곤 한다. 지은이 최석영은 이런 ‘반일 감정’과 ‘배타적 애국주의’에 대해 우리 언론의 책임을 묻고 있다.

만약 ‘동해’라는 명칭을 정착시키려면 중국과도 ‘일전(一戰)’을 치러야 한다는 사실이다. 중국은 대륙의 동쪽 바다, 세계가 ‘동중국해’라고 부르는 바다를 ‘동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중국이 각기 ‘다른 바다’를 ‘같은 이름’으로 부르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한국 사회가 ‘반일 교육’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지만 정작 반일 감정을 형성하는 것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이루어지는 ‘한국의 교육’보다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한 ‘한국의 언론’이기 때문이다. 지난 1923년 관동대지진이 일어났을 당시 일본 언론이 내보낸 오보와 1931년 만보산사건에 대해 우리 언론이 내보낸 오보 때문에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보게 됐는지 돌아보면, 오늘날에도 유사한 잘못을 반복하는 역할을 언론이 자처하고 나서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우리의 대표 음식 김치. 김치는 곧 한국이 됐고, 한국에 대해 비판하거나 단점을 말하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일종의 ‘금기’가 됐다. 지은이는 바로 이런 사회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언론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때론 오류를 범하는 대중에게 쓴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할 언론이 그 역할을 외면하고 대중이 좋아할 만한 보도만을 선별하거나 돈이 되는 일에 앞장서기를 자처하는 것. 지은이는 그 대표적인 모습이 바로 언론의 ‘반일 보도’이며 이러한 대중의 성향을 아는 북한, 정부, 정치인, 기업들은 ‘반일 감정’을 적절히 이용해 자신의 단점을 감추고 대중이 올바른 판단을 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 사회는 고아 수출로 해외에 팔아넘기다시피 한 아이들이 성장했을 때는 ‘한국인’이라는 것을 그리워해 주길 바란다. 미식축구 선수 하인즈 워드에게 같은 것을 기대했듯이. 그리고 외국인들이 김치와 깍두기에 반해,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 반해, 한국인으로 귀화하는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도 한국인들이 외국 국적을 취득하면 가롯 유다를 보듯 경멸의 눈초리를 보낸다.

오역과 오류를 비롯해 피해자 만들기, 침묵하기, 분노 만들기 등 우리 언론이 주로 사용하는 반일 보도 방식을 각각의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 분석한다. 지은이는 반일과 배타적 애국주의에 집착하는 언론 보도로 말미암은 피해자는 바로 ‘독자’라고 말한다. 이제 독자 스스로 이러한 언론의 생리를 이해하고 보도 내용을 의심해보면서 진실을 가려내려 노력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책은 반일과 함께 배타적 애국주의가 얽혀 있는 오늘의 한국, 그 속에서 언론이 쏟아내는 금기와 분노의 저널리즘을 이야기하고 있다.

 

옛것에 대한 그리움 / 김종태

 

-“그래....그땐 그랬었지.”

우리는 양적으로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다. 이렇데 된 것의 중심엔 과학기술이 자리하고 있다. 과학기술이 그동안 인간의 생활을 다방면에서 편리하게 해줬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인간에게 힘들고 어려운 것들을 기계와 도구들이 대신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편리한 세상인가.

그러나 그 편리함 뒤에 감춰진 문제점들이 속속 우리의 의식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인생의 행복은 무엇이며, 삶의 가치란 무엇인가 하는 등 고민들이 문득 떠오를 때 우리는 너무 빨리 달려오지 않았나 하는, 그래서 무심코 잊어버린 것들에 대한 것들과 마주치게 된다. <옛것에 대한 그리움>은 이렇게 사라져가는 풍경들에 안겼던 우리 부모 세대와 자신의 이야기다.

맷돌질은 동양에서는 음양의 결합으로 남녀의 성적 결합을 의미하기에 맷돌질은 풍요와 생산을 상징한다. 춘향전에서 이도령은 춘향과 어우러지면서 <너는 죽어 독매(맷돌) 위짝이 되고 나는 죽어 밑짝이 되어 슬슬 두르면 나인 줄을 알려무나>라고 희롱하고 있다. 서양에서 맷돌은 사물을 변화시키는 것 또는 숙명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 맷돌은 형벌, 부활, 순교 등을 상징한다. 우리는 퍼질러 앉아 일도 노는 것처럼 찧고 빻고 으깨고 갈고 문지르면서 세월에 깎이면서 온몸으로 세상을 살았다. 인생은 결코 칼로 자르는 것이 아니다. 인생은 가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몸이 편한 것만을 추구하지는 않았다. 고된 시집살이로 파김치가 된 며느리에게 저녁 지을 쌀 한 되를 내주며 시어머니는 뉘 한 주먹을 섞어 주었다. 며느리는 고단한 몸으로 일부러 섞은 그 뉘를 하나하나 골라냈다. 누군가는 이를 두고 비인간적이고 비생산적이고 비합리적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고된 날의 연속이었던 그네의 일상을 생각하면, 뉘를 고르는 일은 쉬는 시간이나 다름이 없다.

 

지금은 과거가 준 귀한 선물

우리나라 사람들은 싸울 때 먼저 상대방을 때리지 않는다. 팔을 걷어붙이고 "말리지 마”하면서 말싸움을 한참 한 뒤 겨우 멱살이나 잡고 실랑이를 한다. 그러면 대부분 옆의 친구가 싸움을 뜯어말리고 양쪽은 말리는 사람한테 서로 자신이 옳다고 주장을 하는 이상한 싸움을 한다. 말리지 말라는 말은 말려 달라는 말이다. 둘만 있을 때는 좀처럼 싸우지 않는다. 누군가가 옆에 있어 싸움도 말리고 중개도 할 때 시비를 거는 습성이 있다. 둘이 싸워서 옳고 그른 것을 판결 내리는 서구식의 맞대결문화가 아니라 제 3자를 끼워 넣어 자신이 옳다는 것을 제 3자가 판단하여 주기를 바라는 복덕방문화인 것이다.

지은이 김종태는 그동안 우리가 변해가는 것에 대해 너무 무심했다고 아쉬워한다. 우리는 후진국이란 딱지가 싫어서 무조건 외국의 변화를 눈감고 좇아 왔다. 세계에 내놓고 자랑할 만한 우리의 문화유산도 비합리적 비생산적, 비효율적이란 누명을 씌워 파괴해 버리고 신사대주의를 따랐다. 인간의 생활, 가치, 정신문화를 자로만 재려고 들었다. 선진국의 모든 제도는 합리적이고 효율적이고 가치 있고 교육적이란 속단 아래 여과 없이 도입하고 추종했다. 그는 물질의 편리함 뒤에 숨은 정신의 황폐화를 지적하며 “우리의 것을 올바른 눈으로 다시 보고 가치를 찾고 맥을 이어 자랑할 만한 것은 세계에 널리 알리고 가슴 떳떳한 긍지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렇다고 옛것이 무조건 좋고 그리운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우리 조상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모른 채 무턱대고 현재의 물질만을 향유하는 것은 문화적으로 세련되지 못하다는 지은이의 이야기다.

 

 

2차대전의 숨은 영웅들 / 토머스 J.크로웰

 

-꼭 기억해야 할 사람들

한 생명을 구했다면, 그것은 온 세상을 구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 탈무드.

전쟁영웅이란 어떤 사람일까?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는 장군이나 지휘관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전부는 아니다.

독일인 실업가 오스카 쉰들러(Oskar Schindler). 자신의 뿌리가 유대계였던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지난 1993년 제작한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한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1000여 명의 유대인을 자신의 공장에 고용해 그들의 목숨을 구해준 위인으로 널리 아려져 있다. 그러나 당시 목숨을 잃을 위험에 빠진 다른 사람들을 구한 이들은 쉰들러 외에도 많이 있다. 대부분 이러한 영웅들의 이름은 사라지거나 잊혀졌지만, 이들에 관한 몇 가지 이야기는 아직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2차대전의 숨은 영웅들>은 쉰들러와 마찬가지로 전쟁의 참화에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 노력한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책엔 너무나도 유명한 스웨덴 외교관 라울 발렌베리(Raoul Wallenberg)를 비롯해 유대인들이 나치 점령 지역을 탈출해 중립국으로 떠날 수 있도록 비자를 발급해준 두 외교관 스기하라 지우네(杉原千畝)와 아리스티데스 데 소사 멘데스(Aristides de Sousa Mendes), 불시착한 연합군 비행사들을 구해준 세르비아 농민들, 중국 어부들, 덴마크 시민들, 심지어 보르네오(Borneo)의 머리사냥꾼들도 있다. 남편을 게슈타포(Gestapo)의 손아귀에서 구출하려는 뤼시 오브락(Lucie Aubrac)의 대담한 계획 등 개인적인 이야기도 있다.

책에 담겨진 이야기들은 불시착한 연합군 조종사들을 구출하거나, 유대인 아이들의 안전을 확보하거나, 극단적으로 포로수용소 전체를 해방시키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뿐 아니라 뛰어난 지략도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평범한 남녀가 생면부지의 타인을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때로는 희생도 감수한다는 점은 경외스러움 그 자체다.

 

위대한 용기는 어디로부터?

“사람들이 짐승처럼 취급당하는 모습을 참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들이 살해당하는 것을 못 본 척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책은 ‘평범한’ 사람들이야말로 2차대전의 진정한 영웅들이라고 말한다. 분노와 공포, 연민과 증오, 관용과 잔혹, 기쁨과 슬픔 등 인간이 느낄 수 있는 모든 감정이 가장 극단적인 양상으로 나타나는 전쟁과 폭력 앞에서 용기를 발휘한 의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큰 감동을 안겨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은이 토머스 J. 크로웰은 이러한 그들의 이야기들이 감동에서 나아가 “반드시 그들을 기억해야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책은 나치 치하 유럽에서 생명을 위협받는 유대인들을 구하는가 하면, 포로가 될 위기의 연합군 병사들을 집으로 돌려보낸 사람 등 자유를 구속당하고 위협 속에 살아가던 또 다른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죽음도 불사했던 선량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무대에 올랐다 / 김해영

 

-예술가들의 아름다운 꿈

지난 2008년 중국의 명감독 장이머우가 연출을 맡은 베이징 장애인 올림픽 폐막식의 하이라이트는 중국장애인예술단의 공연이었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극한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공연에 관객들은 잠시 숨 쉬기를 잊었다. 그 천상의 아름다움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진실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다큐멘터리 감독 김해영이 500여 일의 밀착 취재에 뛰어들었다.

<샹그릴라를 찾아서> <록키~안데스 아메리카 대탐험> <남극점을 가다> 등 오지와 극지에서 인간 냄새 물씬한 이야기를 담아온 김해영 PD은 EBS 다큐멘터리<천상의 춤, 기적의 무대 천수관음>을 통해 장애에 대한 편견을 무색하게 하는 단원들의 아름답고 장렬한 삶을 가감 없이 담아냈다. 이 다큐멘터리는 시청자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시각․청각․지체장애인으로 이뤄진 중국장애인예술단원들이 선보이는 금빛 찬란한 무대 뒤편엔 더 깊고 감동적인 인간 드라마가 펼쳐졌다.

김해영 PD는 2008년 봄, 올림픽 준비에 한창인 베이징을 찾았다가 우연히 중국장애인예술단의 ‘마이드림-천수관음’ 공연을 보고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베이징 장애인올림픽 개폐막식 공연을 맡아 보안이 더 철저해진 장애인예술단의 촬영 허가를 얻는 일은 쉽지 않았지만, 결국 단원들의 무대 뒤편의 삶에 동참할 수 있었고, 1년 반의 동고동락 끝에 다큐멘터리를 세상에 선보였다.

1987년 중국의 장애인 청소년 서른 명이 장애인예술단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13년 동안 순수 아마추어 동아리 활동을 해나가던 그들은 ‘무용계의 기인’으로 불리는 중국의 대표적 무용예술가 장지강을 연출자로 맞아들이며 새로운 변신을 모색한다. 2000년 여름, 열두 명의 여성 청각장애인 단원들이 미국에서 ‘천수관음 - 나의 꿈’을 선보였다. 장지강은 작품을 이렇게 설명했다. “당신에게 선한 마음이 있어 그 속에 사랑이 깃든다면, 두 팔을 벌려 다른 이들을 도와줄 수 있다. 당신에게 선한 마음이 있어 그 속에 사랑을 간직한다면, 천 개의 손이 당신에게 자비의 손길을 뻗을 것이다. 이런 세상이 바로 태평성세이다. 이것은 중국장애인예술단 모두의 꿈이며, 곧 나의 꿈이기도 하다.”

큰 찬사를 받으며 공연을 마친 뒤에도 장지강은 끝없이 ‘천수관음’을 갈고 다듬었다. 열두 명이었던 무용수는 남자 단원까지 추가돼 스물한 명으로 늘어났고, 중국 최고의 작곡가와 조명감독, 패션디자이너, 무대미술가 등 수많은 대가들이 ‘천수관음’에 합세해 신화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이후 중국장애인예술단은 중국인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는 예술단이 되었고, ‘미의 사자’, ‘세계 6억 장애인들의 사절’, ‘유네스코 평화 예술가’라는 찬사를 받기에 이르렀다. 30여명으로 출발한 예술단 식구도 150명을 훌쩍 넘었고, 대표 공연인 천수관음 이외에도 ‘황토지’, ‘새싹친친’, ‘삼차구’ 등 다양한 소공연이 만들어져 마침내 ‘나의 꿈’이라는 하나의 거대한 공연이 탄생했다. 지금까지 세계 60여 나라에서 430회가 넘는 공연을 치르는 동안 장애인예술단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꾼 경이로운 사람들’의 대명사가 됐다.

“안 괴로운가?”, “장애가 힘들지 않은가?”, “제일 많이 울었을 때가 언제인가?” 다큐 제작진이 집요할 정도로 묻고 또 물었지만 황양광은 시종일관 미소 지으며 고개를 젓기만 했다. 김해영 PD는 ‘새싹친친’ 공연의 주역인 양팔이 없는 무용수 황양광을 취재하며 그가 지나칠 정도로 낙천적인 것에 당황했다. 극 구성을 지닌 다큐멘터리 영화를 구상했던 만큼 큰 장애를 지닌 이에게서 눈물과 한과 절망의 모습을 충분히 담아낼 수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하지만 ‘믿었던’ 그에게서 오히려 큰 웃음과 유머, 농담과 희망밖에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이러다간 눈물도 한숨도 하나 없는 ‘즐거운 장애인 다큐’가 될 것 같은데?”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고 회상한다.

“황양광 씨가 왜 자꾸 자기 그림을 보여주려 하는지 아세요?”

“그러게, 왜 그런 거지?”

“그림을 팔아야 하니까요.”

나는 동작을 뚝 멈추고 말았다.

“화가는 그림을 팔아서 생활하잖아요. 황양광 씨는 자신을 화가로 생각하는 거예요. 장애인화가가 아니라 진짜 일반인 화가 말이에요. 그만큼 정당하고 냉정하게 평가받고 싶은 겁니다.”

“그런데 저 사람, 무용수잖아? 그것도 아주 유명한…….”

 

“언제까지 무용수로 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B팀 무용수들은 자꾸 치고 올라오고, 공연수당 받을 기회도 점점 적어지고 있어요. 저 사람, 넉살좋게 웃고는 있지만 사실은 매순간이 전쟁이에요. 야오족 후손답게 끝없이 생존 방법을 찾는 중이죠. 게다가 황양광 씨한테 그림이란 플랜 B입니다.”

“플랜 B?”

나는 돈을 찾아 다시 자전거에 오르는 황양광을 말없이 지켜보았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그는 또 씩 웃어보이고는 신나게 자전거를 몰기 시작했다. 스텝들은 또 다시 분주하게 그를 뒤쫓았다.

<그리고 그들은 무대에 올랐다>는 다큐멘터리 <천상의 춤, 기적의 무대 천수관음>을 엮은 것으로, 다큐멘터리에서 미처 다 보여주지 못한 에피소드와 후일담도 사진과 함께 실었다. 예술단의 주역인 타이리화를 비롯해 양 팔이 없는 춤꾼 황양광, 베이징 장애인 올림픽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청각 장애 소녀 왕이메이 등 동정의 대상이길 거부하며 치열한 예술인이자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단원들, 운명을 바꾼 아름다운 승리자들의 이야기가 가슴을 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