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끝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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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덤/영화, 프레임 속의 세상

소설 태백산맥 속으로....

헬로우 럭키 찬! 2015. 10. 1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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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 발행일이 1986105일이니까 무려 30년에 근접하는 세월이군요.

이번 곡성 여행 중 품게 된 생각이, 이 가을 저물기 전에 전라도행 기차를 한 번 타야겠다는 거였습니다.

그리고 떠오른 것이 바로 소설 태백산맥의 거점이 된 벌교였어요.

당시 얼마나 몰입해서 읽어내렸는지 지금도 기억 속의 느낌은 펄펄 뛰는데

정작 지명이나 등장인물의 성격은 뒤죽박죽입니다.

해서, 지금 30여 년 만에 다시 완독을 목표로 책을 꺼내 들었습니다.

돋보기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눈은 독서시간을 길게 허락하지 않아 예전만큼의 속도를 기대할 수 없지만,

30여 년의 긴 시간 동안 변화무쌍한 곡선을 그려 온 제 의식세계를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기도 합니다.

격동기 사회적 조류와 맞물려 더 강한 감동으로 남았던 그 시절의 기억이 밥버러지가 된 오늘의 제게는 어떻게 새겨질까 또한 궁금하기도 하네요.

소설 속 그들에 대한 단편적인 기억만으로도 벌써 가슴이 저려오기 시작합니다.

문순태씨의 '피아골'과 함께 격동기 현대사를 관통하면서, 살아 남은 남도의 상처를 가감없이 보여 준 ...

한국 대표 문학작품 태백산맥 속으로 들어가 보렵니다.   

 

조정래씨가 작품에 부쳐 하신 말씀입니다.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시대를 흔히들 민족사의 매몰시대‘ ’현대사의 실종시대라고 한다.

그것은 곧 그 시대가 그만큼 치열했고 격랑이 심했으며, 분단사 속에서 또 그만큼 왜곡과 굴절이 심했음을 의미한다. 그 시대의 진실과 참모습을 얼마나 객관적으로 복원하고 되살리느냐가 바로 분단 극복이고 통일지향일 것이다. 그 시대의 복원은 바로 오늘을 푸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 작업을 위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여러 현장을 찾아다녔다. 소설은 단순히 상상력의 산물일 수만은 없으며, 엄연한 역사 사실 앞에서 소설을 쓰는 자는 제멋대로일 수가 없는 것이다.

태백산맥에 나오는 수많은 이야기들은 그렇게 증언을 토대로 하고 확인을 거친 것들이다. 그 이야기들을 소설로 엮으면서 나는 시대정신에 냉정하고자 했고, 우리의 오늘을 투영하고자 했다.' 

 

 

벌교 정보를 찾다가 태백산맥의 배경이 된 장소를 친절하게 설명 붙여 올려 주신 아래 분의 글을 발견했습니다.

http://danjiboard.realestate.daum.net/gaia/do/estate/totalDanji/read?bbsId=danji&articleId=470409

복사 떠서 보기 편하게 살짝 편집했고요.

   

소설 태백산맥에 묘사된 벌교 지명 찾아가기

 

참고 : 소설 태백산맥에 묘사되는 장소는 실제와는 약간씩 다를 수도 있습니다.

필자가 초딩 때의 기억을 더듬고 일부 자료와 소설내용을 활용해서 작성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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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태백산맥 문학관 : 벌교 버스 터미널 옆 조정래 문학관

 

진트 재(진지 재) : 벌교계엄사령관 심재모가 구룡에서 이 고개로 와 벌교를 보았던 곳.첨부이미지

                                  (벌교역->순천방향 약 3km 정도 : 진지 재 아래는 기차 터널이 있음)

       정: 주변에는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식당과, 모텔이 있습니다(2012년 기준)

 

진트 재 터널 : 안창민과 하대치가 이 터널입구에서 군용열차를 습격 탈취 했던 곳.

                           70년대 초반까지 증기기관차 터우와 미카(석탄 기차)가 다녔던 곳.

 

회정리 3(장양리) : 외서댁이 살았던 마을/ 중도방천 이전 까지 마을 앞이 개펄.

                                      (벌교역->순천 방향/857번 도로[옛길] 2.5km 정도)

                                     (진트재->벌교 방향/857번 도로[옛길] 500m 정도)

현부자 집 : 현부자 집(필자의 초등시절에 소풍장소였고, 제각이라고 했음.)

                      (벌교역->시내 도로 약 1km 정도 : 조정래 문학관 옆)

                       (벌교공영버스 터미널에서 순천 방향 200m 좌측)

    정보 : 봄철에 입구 길은 온통 벚꽃길에, 뒷 쪽으로는 제석산 등산로가 있으며,

              주변에 카페도 있습니다.(2012년 기준)

 

소화의 집 : 무당의 딸 소화의 집첨부이미지

                      (벌교역->시내 도로 약 1km 정도 : 조정래 문학관 옆)

 

회정교회 : 서민영이 야간 학교를 열었던 곳/ 이지숙과 이근술

                     (벌교역->시내 도로 약 1km 정도 : 공영터미널에서 문학관 반대방향)

    정보 : 이 곳에서 부용교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벌교 꼬막식당 길"이 있으며,

              약 4km 거 리에 낙안민속촌과 낙안온천이 있습니다.

 

조정래 생가 : 조정래 작가가 국민(초등)학교 4~6 학년 무렵 살았던 집.

                           (벌교역->시내 도로 약 1km 정도 : 회정교회 건너편 국민아파트 옆)

 

중도 방천 : 일본X 중도가 주축이 되어 여자만 개펄을 농토로 만들었던 방천뚝.

                      벌교역->벌교대교 끝 우측부터 선수까지의 뚝

                     (벌교역->버스터미널/벌교대교 방향 시내 도로 약 500m)

    정 보 : 방천뚝을 따라서 여자만 개펄을 구경할 수 있고,

               뚝 끝 쪽(호동마을)에 꼬막정식 집과 여름철 짱뚱어탕 식당이 있습니다.(2012년 기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성벽 쌓는 것인디... 더 힘든 것은 개펄 일이여"

"죽지 못해 하지라..!" "개 돼지 맹크롱 천대받아 감시롱 허제이~~~!

소작민, 민초들의 한이 어려 있는 곳.

 

중도의 집 : 간척지를 만들기 위해 방천뚝 공사를 주도했던 고리대금업자 중도가 살던 집.

                       (중도방천길 따라서 철다리 건널목 건너 좌측)

 

철다리 : 염상구와 깡패 땅벌이가 오야붕 자리를 놓고 기 싸움을 했던 곳.

                  벌교역에서 문학관 방향의 시내길 약 400m 우측.

                 우측동쪽은 중도방천길/ 서쪽 철길 아래는 벌교포구(계엄군 숙소)

                (벌교 <--> 순천 경전선 구간 : 벌교에는 보성 방향에도 철다리가 있음)

 

선창(철다리 밑 창고?) : 포구이면서, 경찰 토벌대와 계엄군의 숙소가 있던 곳.

                                          벌교역->시내길 부용교 건너기 전 우측 철다리 밑.

                                          벌교역에서 문학관 방향의 시내길 약 400m 우측

 

차부 : 벌교역에서 나오면서 좌측(고흥방향)으로 약 100 여 미터.

              현재 벌교 우체국 자리.

남원장(요정) : 유지들의 모임장소, 토벌대장과 경월 이야기, 정현동의 은밀한 흥정 장소

                            벌교역전 삼거리에서 벌남교 가는 길 중간 좌측.

                           벌교역에서 벌교초등학교 방향의 시내 약국샛길 약 150m 좌측

 

술도가(양조장) : 주인 정현동의 욕심.... 결국 소작인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되고...

                              역에서 벌남교 쪽 직진후 삼거리 지나 오른쪽으로 10m 우측.

 

남도여관 : 경찰토벌대장 임만수와 부하들이 숙소로 쓰던 곳.(벌교남교 정문 왼쪽)

                      벌교남교 들어가면서 왼쪽 건물(필자 초등 때는 보성여관)

 

남국민학교 : 인민재판을 구실로 무고한 양민에게 총살결정을 내렸던 곳.

                        필자 초등 때 벌남교 건물은 대부분 목재였음.

 

포목점 : 양효석의 아버지 양병갑의 가게 광주상회(벌남교를 나와서 왼쪽 첫째 사거리)

                 현재 신협 벌교 본점 있는 곳.(벌교역에서 약 400m)

 

북초등학교 : 염상진과 좌익세력이 인민재판 하던 곳.

                       포목점 사거리에서 산쪽(용현사)으로 가다 오른쪽(현 벌교여중)

              

"인민재판인가 몬가 끝나고 굿판이 벌어지는디...." 웨메~~~!!!!"

" 그 질로 소화다리로 끌고 가서 사람들 귀경시키듯이 줄줄이 세워 놓고 죽이..

 

용연사 : 문기수가 야산대장 염상진의 "최후명령"을 접수하러 불도신자를 가장해서 간 곳.

                 벌교 여중 뒷산 중턱에 있는 절(벌교역 2.8km)

    정보 : 가는 중간에 공원과 채동선 선생관련 기념물이 있습니다.

              또한 애절한 부용산의 노래에 관련된 부용산이 있습니다.

 

M1고지 : 벌교포구 계엄 사령관 심재모가 종합지휘소를 꾸민 곳.(용연사 뒷산)

                   세망동 뒷쪽=벌교읍지역 대부분/낙안읍성 및 들판/금정산/

                   제석산/ 중도방천 여자만과 섬 등을 볼 수 있는 천연 요새지

 

벌교 금융조합 : 송경희의 아버지 송기묵이 조합장이었지만 좌익세력에 죽임을 당했다.

                             광주상회(포목상)에서 읍사무소 방향으로 약 150m 왼쪽(건물 현존)

 

경찰서 : 반란사건으로 불 타 없어져 버린 경찰서(반란군의 임시 본부이기도 했음)

                  벌교역-> 소화다리 가는 길의 전화국 건너 건물(시내길 약500m)

           

"작은 서방님, 읍에 생난리가 나부렀당께요.“

어지께 밤에 좌익 시상이 되야부렀당께요.”

순사란 순사는 다 도망을 가불고 빨갱이들 손에 경찰서가 불타 불고.."

 

벌교 소화다리 : 14연대 반란사건과 우익, 좌익의 죄목 하에 무참히 처단되었던 곳.

                             현재 이름은 제 1부용교 임.(시내길 1km)

      정보 : 지도에는 이름이 부용교로 나와 있으며,

               다리 건너기 전 조그마한 식당에서 옛날 그 맛 그대로.. 팥죽을 먹을 수 있습니다.(2012년 기준)

         

"소화다리 밑에 시체가 질펀허니 널렸는디...!!"

"사람 쥑이는 거 날마둥 보자니께 환장 허것구만요.!!! "

 

읍사무소 : 계엄사령부와 불타 없어진 경찰서가 더부살이 했던 곳.

                     금융조합 앞쪽 50m-삼거리 좌측으로 150m 대로 좌측

    정 보 : 주변에 채동선 선생님 관련 시설물이 있습니다.

 

청년단 : 벌교 청년단 근거지.(염상구가 윤옥자를 탐해 마누라 삼은 자리이기도 함)

읍사무소 뒷 쪽 M1고지 올라가는 계단 옆(벌교역에서 800m)

정보 : 과거 기억으로는 그 곳이 실제는 목욕탕인듯 싶은데,,,,,

아무튼 지금은 주변이 정비사업으로 모두 없어졌습니다..

 

벌교 장터 : 장터거리(읍사무소->홍교다리 가는길 좌측 주변)(시내길 약 1km)

                       어릴 적에 웃 장터라 했으며, 현재 장터는 벌교역 주변(농협 쪽)

    정보 : 벌교장터는 벌교역에서 문학관 방향쪽의 농협 옆에 커다란 "벌교시장" 간판이 있어서 찾기 쉽습니다.

              있는 것 다 있고, 없는 것은 없는... 끝자리 4,9일이 장날.

             평일에도 새벽에서 이른 오전까지 장이 형성되며, 시장과 길거리 주변 점포는 하루 종일 영업을 하는데,

             이곳에서 벌교 참꼬막을 살 수도 있고 값이 저렴한 세꼬막도 살 수 있 습니다.

자애병원 : 안창민이 총상을 입고 찾아간 곳.(후생병원)

                       읍사무소에서 홍교다리 가는 중간 지점(현 어린이 집)

 

홍교다리 : 하대치 등 빨치산들이 지주들의 쌀을 빼앗아 소작인들에게 주기 위해 쌓아둔 곳.

                     3분의 2는 없어져서 신축(857번 도로 혹은 시내길 1.5km)

     정보 : 홍교다리는 과거 홍수로 약 삼분의 일이 없어지고 새롭게 다리가 보수되어 현존하고 있으며,

               이 길은 과거 낙안읍성 가는 통로였습니다.

 

김범우 집 : 김사용의 아들인 인민군 장교 김범준과 빨갱이로 몰린 김범우의 본가.

                       홍교다리 북쪽 끝 길 건너 마을 입구(시내길 약 1.6km)

     정보 : 홍교다리 건너편 봉림리(야트막한 산자락 아래 마을)에 있습니다.

 

들몰 마을 : 하대치의 처 들몰댁의 친정 마을.(전동/들몰 마을이라고 한다)

                      홍교다리에서 광주방향 (15번국도로 약 1.5km)

     정보 : 벌교 시내 <-->광주방향 홍교다리 지나 첫 동네이며, 전동리라고 합니다.

               벌교도마교 및 석비(지방유형 173)가 있습니다.

 

고읍마을 : 벌교남교 교사이자 빨치산인 안창민의 고향.

                    들몰에서 광주방향 (15번 국도로 약 800m 좌측 산자락 밑 마을)

     정보 : 벌교 시내 <-->광주방향 들몰(전동)마을 지나서 좌측 산 아래 있는 마을입니다.

               이 곳에 는 "고읍은행나무"(지방기념물147)가 있고,

               입구 쪽에는 "취송정"(문화재 자료136: 별 당형 정자)이 있습니다.

               고읍마을에서 징광리 쪽으로 계속 가면 징광사지(절터)와 옹기장과 녹차밭이 있으며

               그 마을의 뒷산이 존제산입니다.(2012년 기준)

 

주릿재 : 해방구로 묘사된 율어 가는 고갯길(벌교역에서->추동저수지 약 7km)

                  벌교역-15번 국도 낙성(추동저수지)-주릿재->율어

     정보 : 벌교-조성 방향으로 가는 방법 외에 벌교에서 율어 가는 길입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잘 사용하지 않는 길(필자도 가보지 못했습니다)

 

석거리재 : 벌교계엄사령관 양효석이 빨치산을 막기 위해 진지를 구축한 곳.

                      벌교에서 15번 국도 따라 외서면 가는 고갯길(벌교역에서 약 7km)

     정보: 도로가 구불구불 운전에 조심해야 합니다.

             현재 벌교에서 주암 까지 직선도로 공사가 진행되고 있습니다.(2012년 기준)

 

대밭골 : 염상진 권유로 김범우가 문서방 집으로 피신 갔던 마을(벌교역에서 약 4km)

                  벌교역->벌교여고 앞->무만동->월곡->대밭골

     정보 : 과거에는 차량통행이 불가능 했으나, 현재는 장좌리->무만동->월곡-> 대밭골로 통하는 포장도로가 있습니다.

              벌교에는 "월곡" 마을이 두 곳.(장좌리 월곡과 벌교리 월곡이 있음)

 

열가재 : 벌교에서 2번 국도를 따라서 조성 가는 고갯길.

 

마동재(송장고개) : 심재모가 염상진를 토벌하기 위해 넘어 갔던 고갯길.

                                  벌교역<->조성 간 경전선 기차 터널(필자도 어렸을 적 작은집 갈 때 이 터널로..)

     정보 : 구전에 의하면 이 터널공사를 하면서 많은 사람이 죽어서 " 송장고개" 라고 했답니다.

               마동리에서 조성으로 넘어가는 기차 터널입니다.

 

첨산 : 벌교에서 뱀골재 지나 고흥 가면서 우측(수동마을)에 삼각뿔 모양의 산.

               또 다른 첨산은 벌교->순천 가는 길 우측(별량에 있음)

 

뱀골재 : 고흥방향으로 가기 위해 넘던 고갯길(벌교역에서 약 2km)

                   고갯길 우측에 지금도 주인 없는 무덤이 많음(공동 묘지)

      정 보 : 벌교에서 고흥방향으로 가는 지름길 2차도로 고개입니다.

                 현재는 척령리에서 고흥 가는 4차선이 있어서 편리합니다.

 

차 부 : 벌교역에서 나오면서 좌측 길로 약 100m 우측 편(선근다리 방향)

     정보 : 현재의 벌교 우체국자리. 과거 시외버스 주차장이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