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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파시즘/선은 어떻게 살육의 무기가 되었나

헬로우 럭키 찬! 2013. 5. 5.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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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으로, 종교가 인간의 욕망과 결탁했을 때 벌어졌던 끔찍한 사건은 헤아릴 수가 없습니다. 특히 중세 유럽의 종교적 폐해는 극에 달하여 서민들은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극악무도한 폭력 앞에 그저 속수무책 목숨까지 저당 잡힐 수밖에 없었지요.

다시 한 번 느끼는 것이지만, 역시 종교란 세상을 지배하기 위한 도구로, 공포유발자로 손색이 없는 괴물입니다. 종교 외에 맹신, 맹종이 가능한 어떤 조직을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싶기도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독교보다 불교에 관대할 수 있었던 것은 강제성이 없다는 것과 누구나 마음 하나로 붓다가 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 때문인 것 같았습니다.

헌데......참선에 의해 닦여진 그 ‘마음’이 가장 이기적인 형태로의 변질도 가능하다는 것을 오늘 알았습니다. 어떤 교리든 선동을 작정한 사람에 따라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입니다.

내용에 더 깊이 들어가는 것에는 솔직히 짜증이 나기도 하였고......

그냥 몇 개의 리뷰를 통해 알아 낸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서 퍼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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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 파시즘/선은 어떻게 살육의 무기가 되었나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 지음

 

일본 파시즘과 불교의 은밀한 유착

베일에 가려져 온 일본 군국주의와 불교의 공모를 밝히는 충격적 보고서다. 불교학자이자 오랫동안 수행한 선불교 승려인 저자는 불교의 가르침이 교묘하게 일그러져 ‘오남용’된 역사를 날카롭게 고발한다. 전쟁에 가담한 승려들, 불교를 신봉한 군인들의 무섭도록 생생한 목소리를 발굴하여 지울 수 없는 과오의 증거로서 제시한다. 인류 역사상 끊임없이 자행되어 온 종교와 정치의 위험한 결탁에 매서운 경종을 울린다. 앞으로 또 다시 벌어질지 모를 ‘성전’을 막기 위해, 저자는 불교를 포함한 전 세계의 모든 종교에 더욱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윤리가 구축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예로부터 불교는 비폭력과 평화의 종교로 널리 인정받아 왔다. ‘불살생(不殺生)’을 가장 중요한 계율로 가르치며, 기독교나 이슬람교와는 달리 종교를 내세워 전쟁을 일으킨 일이 없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이다. 하지만 제국주의 야망이 점령한 전시의 일본에서 불교는 전쟁을 정당화하는 ‘정신적 무기’가 되었다. 이름 높은 선사들이 자진해서 군대의 나팔수로 나섰고, 극우파와 손잡고 천황 숭배를 부르짖었다. 종교의 교리와 역사가 거침없이 왜곡되고 살생을 금하는 계율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이처럼 이 책에는 에는 일본 불교계마저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전시 불교의 타락을 보여주는 증거가 가득하다.《불교 파시즘》이 고발하는 일본제국 군대와 승려들의 유착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반성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평화의 종교가 어떻게 전쟁 이데올로기로 변신했을까?

깨달음의 교리가 어떻게 윤리와 양심을 마비시켰을까?

일본 파시즘과 불교가 맺은 은밀한 유착을 파헤친다!

 

집착을 버리라는 가르침에 힘입어 병사들은 자신의 목숨을 버렸다. 생(生)과 사(死)가 다르지 않기에 슬퍼할 필요가 없었다. 죽음은 그가 쌓은 업(業)에 의해 예정된 일이었고, 전사한 병사는 내세에서 다시 태어날 것이었다.

제국주의 야망이 점령한 전시의 일본에서 불교는 전쟁을 정당화하는 ‘정신적 무기’가 되었다. 이름 높은 선사들이 자진해서 군대의 나팔수로 나섰고, 극우파와 손잡고 천황 숭배를 부르짖었다. 종교의 교리와 역사가 거침없이 왜곡되고 살생을 금하는 계율은 철저히 무시당했다. 불교의 무아관(無我觀)과 생사불이론(生死不二論)이 뒤틀리고 타락하면, 군국주의 파시즘의 광기와 유착해 대량 학살과 집단 자살의 아수라로 빠져들 수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사례다.

전쟁을 지휘한 군 수뇌부도 불교를 적극 받아들여 ‘활용’했다. 병사들은 스님이 쓰는 공양 그릇을 본뜬 밥그릇으로 식사했다. 돌격을 앞둔 자살 특공대는 절에 가서 선을 수행하며 두려움을 잊었다. 패전 뒤 사형수가 된 전범들은 과거를 반성하는 대신 정토 왕생을 꿈꾸며 구원을 기대했다.

《불교 파시즘》은 베일에 가려져 온 일본 군국주의와 불교의 공모를 밝히는 충격적 보고서다. 불교학자이자 오랫동안 수행한 선불교 승려인 저자는 불교의 가르침이 교묘하게 일그러져 ‘오남용’된 역사를 날카롭게 고발한다. 전쟁에 가담한 승려들, 불교를 신봉한 군인들의 무섭도록 생생한 목소리를 발굴하여 지울 수 없는 과오의 증거로서 제시한다. 인류 역사상 끊임없이 자행되어 온 종교와 정치의 위험한 결탁에 매서운 경종을 울린다.

 

일본 불교계조차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미국인 승려의 충격적 고발

불교는 비폭력과 평화의 종교로 널리 인정받아 왔다. 왔다. ‘불살생(不殺生)’을 가장 중요한 계율로 가르치며, 기독교나 이슬람교와는 달리 종교를 내세워 전쟁을 일으킨 일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불교 파시즘》이 밝히는 20세기 일본 불교의 부끄러운 역사는 ‘평화의 종교’라는 불교의 자부심을 무색하게 만든다. 전쟁과 살인을 지지하고 나라를 위해 죽기를 권장한 어두운 과거를 일본 승려들은 오랫동안 외면해 왔다.

한국 조계종의 전신이자 베트남 반전 운동을 벌인 틱낫한 스님이 속한 임제종은, 중국 선종 5가 중 하나로서 일본 불교계에서도 손꼽히는 유력 선불교 종파다. 임제종이 태평양 전쟁 당시 일본제국에 협력한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한 것은 전쟁이 끝난 뒤 50년 이상의 세월이 지난 2001년. 이들이 뒤늦게 지난날의 과오를 돌아보게 된 계기를 제공한 이가 바로 그 자신도 승려인 《불교 파시즘》의 저자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다. 40여 년 동안 종교와 정치의 관계를 연구한 학자이기도 한 그는 불교와 일본 군국주의의 공모를 고발하고 분석하여 서구와 일본 불교계에 큰 충격과 논쟁을 불러왔다. 임제종의 최대 분파인 묘신사파는 2001년 10월 9일에 발표한 성명에서 이 파란 눈의 승려에게 전쟁 책임 문제를 환기해준 데 감사의 뜻을 표했다. (《불교 파시즘》 407쪽 ‘후기’ 참조)

 

난징 대학살도, 가미카제 특공대도 불교가 뒷받침했다

《불교 파시즘》에는 일본 불교계마저 스스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전시 불교의 타락을 보여주는 증거가 가득하다. 지금도 널리 존경받는 일본의 선사들 중에는 병사로서 전쟁에 참전하고 나서도 희생자들에 대한 죄의식을 평생 느끼지 않은 승려가 있는가 하면(36쪽), 자신이 운영하는 사찰을 군대를 위해 아낌없이 제공하고(182쪽), 천황 중심 사회를 만들기 위한 쿠데타에 가담해 몸소 칼을 쥐는 등(99쪽) 국가 폭력에 저항하기는커녕 적극 협조했던 승려들이 무수히 많다. 이러한 사례들이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 당시 일본 불교계 대부분을 지배한 경향이었음을 이 책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승려들이 저지른 만행의 배경에는 그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오용된 불교의 교리가 있었다. 자비, 깨달음, 무아(無我), 업(業), 열반, 정토 왕생, 생사일여(生死一如)와 같은 불교의 핵심 교리들이 전쟁과 살인을 옹호하기 위한 도구로 둔갑했다. 이를테면 난징 대학살을 필두로 하여 일본군이 각지에서 자행한 중국인 학살은 “그들에게서 ‘번뇌’를 없애주는 불교의 자비심의 표현”(42쪽)이라고 설명되었다. 가미카제 특공대의 자살 공격은 “개인적인 자아를 부정하고 스스로 역사의 짐을 떠맡은 영혼의 재탄생”이며 곧 “완전한 깨달음에 도달한 것”(250쪽)이라고 칭송받았다. 이러한 가르침을 바탕으로 하여 숱한 일본제국 군대 장교와 병사들이 적군을 죽이고 자신의 목숨을 버렸다. 그들은 전쟁터에서도 불경을 놓지 않은 신실한 불교도였으면서도(294쪽), 아니 오히려 그랬기 때문에 자신이 하는 일의 정당성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교리에 기대 죽고 죽이다

“나는 죽을 준비를 갖추고 여기 서 있다!”(244쪽)고 외치며 돌격하는 일본 병사들에 직면하여 당시 그들의 적수였던 미군은 물론이고 많은 서구 학자들이 당황했다. 일본인이 아닌 사람들의 눈에 기꺼이 죽기를 원하는 일본 병사들의 태도는 지극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저자는 이 ‘사무라이 정신’의 배경에 존재하는 것이 바로 불교의 생사관이었다고 지적한다.

군인들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살인에 대한 양심의 가책을 지우는 데는 불교에서 말하는 생사일여, 즉 삶과 죽음은 하나라는 가르침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생사일여의 가르침은 선종 불교의 역사에서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당나라 때 승려 원규가 죽음의 위협 앞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기록이 대표적이다. “나는 본래 태어나지 않았으니 당신이 어떻게 나를 죽일 수 있겠는가? 내 몸은 허공과 같으며, 나는 나 자신이 당신과 다르지 않다고 보는데, 당신이 어떻게 허공을 없애거나 당신 자신을 파괴할 수 있겠는가?”(247쪽) 일본 국사(國師)였던 14세기 승려 간잔 에겐은 생사관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내겐 처음부터 생사가 없었어!”라고 소리를 질렀고(227쪽), 17세기의 유명한 고승 하쿠인 에카쿠는 깨달음의 순간 “죽음은 좋은 것이고, 삶은 훨씬 더 좋은 것이다. 삶은 좋은 것이고, 죽음은 훨씬 더 좋은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210쪽)

 

조국을 위해 명예롭게 죽기를 권한 불교

일본제국에서 ‘전쟁의 신’으로 추앙받던 육군 장교 스기모토 고로는 생사일여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많은 일본 군인 중 한 명이다. 그는 군인으로 복무하면서 10년에 가까운 오랜 시간을 절에서 수행한 선불교의 재가 제자였다. 스기모토가 중일전쟁에서 전사한 뒤 나온 그의 글 모음 《대의(大義)》는 전쟁 동안 일본에서 10만 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였는데, 제국 군인과 고위 관료들은 물론 승려들에게도 높이 평가받았다. 《대의》에서 스기모토는 거듭 선불교의 생사관을 강조한다.

 

“선은 제국 군대의 참된 정신이 된다.”는 스기모토의 말은 육군대신 도조 히데키에 의해 실현되었다. 도조 히데키가 1941년에 공표하여 일본제국 군대의 모든 병사에게 배포한 야전 규정집 《전진훈(戰陣訓)》은 “전시의 다른 어떤 문서보다도 ‘죽기 아니면 살기’ 식의 일본 군인 정신을 잘 요약”(195쪽)해놓은 책이었다. 《전진훈》은 장병들의 필독서였을 뿐 아니라 민간에도 널리 영향을 끼쳤다. 《전진훈》을 일반 독자 대상으로 해설한 책이 여러 출판사에서 우후죽순 출간되었고(230쪽), 승려들은 불교의 생사관을 가르치는 교재로서 《전진훈》을 ‘역수입’했다.(234쪽)

선불교의 가르침을 그대로 가져온 《전진훈》을 읽고 “일본 군인(적어도 잘 세뇌된 군인)은 전쟁터에서 죽을 결심을 확고하게 했다. 일본 군인에게 유일한 문제는 어디서, 어떤 상황에서 죽을 것인가, 즉 자신과 가족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고 죽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239쪽)

 

**** 저자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

저서 (총 3권)브라이언 다이센 빅토리아는 모든 계를 다 받은 소토선의 승려이다. 후부키 현에 있는 다이혼잔 에이헤이사에서 수련하였으며, 사이타마 현의 조쿠인 사의 전임 주지인 아사다 다이센에게 불법을 전수받았다. 도쿄에 있는 소토선 소속의 코마자와 대학에서 불교학으로 석사학위를 템플대학의 종교연구학과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가장 최근의 저작 '선 전쟁 이야기'(Zen War Stories, 2003) 외에 빅토리아의 주요 저서로는 1971년에 출판된 '가이진 데 아리, 젠 부주 데 아리'(이방인으로서, 선승으로서)라는 일본어 제목의 자전적인 저작과 아이치가쿠인 대학의 요코이 유호 교수와 함께 쓴 '도겐 선사'(1976) 그리고 사토 코지의 저작 '선 생활'(The Zen Life, 1972)을 번역한 것이 있다. 빅토리아는 현재 앤티오크 대학 일본 프로그램의 불교학 주임으로 봉직하고 있다.

역사/문화33%  종교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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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리뷰

2013.05.03

전쟁은 증오와 살생, 폭력을 전제로 한다. 반면에 종교는 깨달음에 바탕한 평화와 화해를 추구한다. 이렇듯 정반대를 지향하는 듯한 전쟁과 종교는, 실제 역사 현장에서는 한몸인 경우가 많았다. 중세 십자군전쟁이 대표적이다.<불교 파시즘>은 군국 일본 시절 전쟁(파시즘)과 종교가 어떻게 가장 끔찍하고 완벽하게 결합해 있었는지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수많은 일본 선승들이 천황주의를 옹호했다. 뒷날 미국에 선(불교)을 전하는 데 핵심적 구실을 한 조동종 선사 야스타니 하쿠운은 "대동아 공영권 확립은 세계에서 사악한 정신을 몰아내고 전 인류를 위한 영구적인 평화와 행복의 실현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설파한 광적인 군국주의자였다. 하와이에 큰 사찰을 세운 임제종의 저명한 승려 오모리 소겐도 "천황폐하의 자비로운 어심이 만백성에게 쏟아져 내릴 것"이라며 극우파 쿠데타에 가담하기도 했다.사람만이 아니다. 속세의 가치관과 개념의 초월을 주문하는 선은, 군대에서 나를 초월해 국가에 모든 걸 바치도록 하는 이데올로기로 활용됐다. 탈세속적인 태도로 질서 있는 생활을 하는 수행승은, 군인들 몸가짐의 살아 있는 전범이었다. 생과 사가 다른 게 아니니(생사일여), 적군을 죽이거나 내가 죽어도 별게 아니었다. 공양 그릇을 본떠 군인들의 식기가 만들어질 정도로, 불교와 군은 적극 결합했다.그런데 전쟁과 종교의 야합이 그뿐이겠는가. 천주교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침묵했고, 수천년 핍박을 받아온 유대교(이스라엘)는 오늘날 팔레스타인 민간인에 대한 살상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지은이는 문제 해결을 위해, 신자들이 자신의 국가와 신앙이 역사적으로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종교는 좀더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윤리를 내세워야 한다고 말한다.이순혁 기자hyuk@hani.co.kr<한겨레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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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는 '불살생(不殺生)'을 가장 중요한 계율로 가르치는 비폭력과 평화의 종교다. 석가모니 붓다는 <법구경>에서 "모든 것은 폭력을 두려워하고 평화로운 삶을 사랑한다. 이 이치를 자기 몸에 견주어 남을 죽이거나 죽게 하지 말라"고 설파했다. 대승불교의 경전 <범만경>은 '보살이 되고자 하는 신자들은 전쟁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그런데 20세기 초 일본 불교는 전쟁을 정당화하는 '정신적 무기'가 됐다. 일본 선승들은 대부분 '검선일여(劍禪一如)'라는 미명하에 일본 군국주의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고승들은 자진해 군대의 나팔수로 나섰고, 극우파와 손잡고 천황숭배를 외쳤다. 살생을 금하는 계율은 철저히 무시됐다. "자비심으로 생명을 빼앗는 것보다 더 나은 보살행은 없다"(선승 난텐보), "열심히 싸워 적군을 모두 죽여야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심과 효행을 완벽히 수행하려면 선을 돕고 악을 벌할 필요가 있기 때문"(선승 야스타니 하쿠운)이라는 궤변마저 서슴지 않았다.일제 군 수뇌부도 불교를 적극 활용했다. 병사들은 스님이 쓰는 공양 그릇을 본뜬 밥그릇으로 식사를 했다. 돌격을 앞둔 자살 특공대는 절에 가서 선을 수행하며 두려움을 잊었다. 패전 후 전쟁 책임의 죗값을 치르게 된 군 수뇌부는 죽음의 두려움을 또다시 불교를 통해 씻어냈다. 야스쿠니 신사에 위패가 보관된 A급 전범 도조 히데키와 관동군 사령관 도이하라 겐지는 전범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뒤 정토종으로 개종했다. 정토종은 누구든지 "아미타불"만 염불하면 서방정토에 다시 태어난다고 가르친다.저자는 1961년 미국 감리교 선교사로 일본에 왔다가 불교에 귀의해 승려가 된 뒤 40여년 동안 불교가 군국주의와 유착한 이유와 배경을 분석하는 작업에 천착하고 있다. 이 책은 <전쟁과 선(禪)>(1997)에 이은 그의 두 번째 보고서로, 붓다의 가르침에서 멀어진 일본 불교를 경책하는 장군죽비다. 붓다는 "전쟁터에서 죽으면 지옥에 떨어지거나 동물로 태어나리라"고 말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려는 저자의 메시지가 아닐까.

권대익기자 dkwon@hk.co.kr[ⓒ 인터넷한국일보(www.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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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2차대전을 일으켰을 때, 일본의 종교 특히 불교는 무엇을 했을까. "모든 사람이 부처님"이니까 전쟁과 살생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렸을까. 한때 일본 선불교 최대 종파인 조동종 승려였으며, 현재는 환속해 종교학자가 된 미국인 브라이언 다이젠 빅토리아는 놀라운 사실을 전한다. 일본의 불교는 전쟁을 말리기는커녕 부추겼다. 이것은 당시 불교계 일부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라 일반적 경향이었다. < 불교 파시즘 > 은 자비의 종교가 전쟁 이데올로기로 전락한 참혹한 풍경을 폭로한다. 개별 사건과 인물의 이야기를 풍부히 제시함으로써 군국주의와 불법의 결탁을 생생하게 전한다.불교의 핵심 교리는 전쟁을 옹호하는 이데올로기로 바뀌었다.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생사일여'의 가르침은 군인들의 정신 교육용으로 사용됐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살인을 거부해서도 안된다는 논리였다. 육군대신 도조 히데키는 선불교를 아전인수로 해석해 녹여넣은 야전 규정집 < 전진훈 > 을 모든 병사에게 배포토록 했다. < 전진훈 > 을 읽은 병사들은 자신과 가족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고 언제 어떻게 죽을지 궁리하도록 교육 받았다.승려 도모마쓰 엔타이는 진주만 공습 며칠 후였던 1941년 12월25일 소책자 < 유족 독본 > 을 출간했다. 전사자 유족을 '위로'하는 형식의 이 책에는 "단 한 발의 탄환도 적으로부터 우연히 날아오는 일은 없다. 그것은 명백히 업의 작용이다"라고 적혀 있다. 전쟁에 나간 남편이 죽은 것은 전쟁을 시작한 정치인도, 진격 명령을 내린 군수뇌부의 책임도 아닌, 그저 자업자득이란 뜻이다. 종전 후 법의 심판대에 선 전범들 역시 자신의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불교에 기대 마음의 평온을 찾으려 했다. 도조 히데키는 대포를 의미하는 '캐넌'에서 '간논'('관음'의 일본식 발음)을 연상하면서 관세음보살의 현현에 감사했다. 사형선고를 받은 뒤 그는 누구든지 깊은 신앙심을 갖는다면 생전 어떤 일을 했건 상관없이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치는 정토종으로 개종했다.많은 종교는 전쟁을 뒷받침한 어두운 역사를 갖고 있다. 중세의 십자군, 현대 탈레반들의 지하드도 그렇다. 저자는 "전 세계 여러 종교의 사려 깊은 신자들이 자신들의 국가가 시작한 전쟁과 자신들의 신앙 사이에 존재하는 역사적 관계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