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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덤/영화, 프레임 속의 세상

2012년, 김기덕 감독의 황금사자

헬로우 럭키 찬! 2012. 9. 9.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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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이 관객에게

'피에타'는 극단적인 현대 자본주의에 대한 이야기이다. 자본주의 중심인 돈이라는 것에 의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불신과 증오와 살의가 어떻게 인간을 훼손하고 파괴하며 결국 잔인하고 슬픈 비극적 상황을 만들어 가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다. '피에타'를 통해 돈이면 다 된다는 무지한 우리의 현주소를 돌아보고 더 늦기 전에 진실한 가치로 인생을 살기를 깨닫기를 기원한다.

 

공식 상영된 이후 관객과 평단의 관심이 증폭되는 가운데 폐막식 전날까지 세계 유력 통신사들은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와 폴 앤더슨 감독의 '더 마스터'를 수상작으로 꼽았다고 한다. 영국 출신 폴 앤더슨은 <모탈 컴뱃>으로 미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적도 있었고, 조금 난해하기도 하였으나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영화라 극찬 받았던, 러닝타임 장장 3시간 짜리 영화 '매그놀리아'를 감독했다. 그 외 '레지던트 이블'시리즈 등 다수 작품의 관심도로 봤을 때 미국을 대표하는 감독이라 하여도 넘치지 않는 그를 뛰어 넘은 김기덕 감독....그의 '피에타'가 정말 궁금하다.

 

90년대 후반부터, 국제적으로 명성이 높은 베니스는 물론 베를린과 칸 까지 아우르며 호평을 받았던 김기덕표 영화는 결국 2012년에 와서 최고의 상을 거머쥐었다. 덩달아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의 영화 한 편으로 전 세계 영화인들이 한국영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업적'이라 할 만하다. 하여서 이렇게까지 김기덕 감독의 작품들에 열광하는 유럽의 관객들에게 문득 호기심이 발동했다. 그의 작품들이 화제를 몰고 다닌 것 치고 한국 박스오피스 순위로는 한참 바닥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다 건너 유럽이 김기덕 감독에게 엄지 손가락을 치켜 든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영화가, 감독이 자신의 시선으로 본 삶의 본질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한 그의 말이 맞다면 삶에 있어 본질의 공감대가 한국보다는 서구인들에게 더 맞아떨어진 것일까?

 

솔직히 나 역시도 그의 영화 대여섯 편을 통해 느꼈던 것은 곱씹기가 불편할 정도로 뒷맛이 씁쓸하고 개운치 못 하였다. 쉽지 않은 소재를 선택해, 애써 끄집어 낸 주제의 강도를 의도적으로 눌러버린 것 같은, 더 큰 폭발을 기대한 시점에서 불발로 끝이 나 버린 것 같기도 한.....

그러나 늘 그의 새 작품에 촉각이 곤두서는 것은 몇 개의 작품을 통해 얻었던 흔치 않은 이질감이 묘한 중독성을 가져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암튼, 2004년에 발표한 한 문화비평가의 글을 보면서 잠시 생각을 환기시켜 보려고 한다.

 

『김기덕 감독은 데뷔하면서부터 좋은 소리를 듣지 못했다. 비평가들마다 김기덕 감독을 비판하는가 하면 심지어 페미니즘 진영에서도 최악의 감독과 영화의 순위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그가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면서 비판을 하는 이들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해외에서 상을 받으면 해외 콤플렉스가 있는 한국인들인 바에야 꼬리를 내려야 한다. 영화 선진국이라는 데서 상을 받아오는데 무슨 간판으로 일개 한국 비평가들이 김기덕 영화를 비판하겠는가.

이제 김기덕 감독을 비판하면 오히려 욕을 먹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외에서 극찬을 받는 감독을 네가 뭔데 비평가라 깝치며 욕하느냐고 신물나게 쓴 소리를 듣는다. 왜 그럴까? 반드시 해외에서 영화상을 받아왔기 때문일까?

김기덕을 옹호하는 이들의 논거 중에 대표적인 것은 이런 거다.

비주류 장벽과 자본, 인맥 카르텔을 넘고 자기만의 영화세계를 구축해온 감독이라는 말이다. 이 말에 100% 동의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김기덕은 약자이고 그를 비판하는 사람은 폐쇄적인 한국 영화권력 속의 강자가 되어버렸다. 약자를 옹호하는 한국인의 착한 심성 때문인지 그의 해외 수상은 약자가 강자들을 물리치고 당당하게 승리하는 것으로 비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그의 영화는 해외에서는 호평이지만 어떻게 된 것인지, 한국에서는 죽을 쑨다.

베를린에서 감독상를 받은 <사마리아>는 국내에서는 별 볼 일 없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해외에서 100만 명이나 보았고 미국에서만 27억 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등 한국 영화 사상 경이적인 기록을 세웠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2만8천명밖에 보지 않아서 서구인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영화 권력자들이 외면하는 것은 당연하다지만 원인이 한국의 대중들이 수준이 낮아서일까?

 

김기덕의 영화는 서구인들의 고민의 대상과 닿아있다. 서구인들은 근대성 이후의 지점에서 사회문화, 인간, 삶을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근대성 안에서 고민하고 근대성이 정립도, 채 시작하지도 않았다.

예를 들어 김기덕의 초기 영화들은 폭력과 여성 학대를 영화 곳곳에 배치하면서 오히려 ''초월''해 있었다. 이러한 ''초월''은 서구적 근대성 논의가 어느 정도 이루어진 다음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한국은 근대성 개념의 폭력과 페미니즘조차 성립이 되어 있지 않다. 그러니 당연히 공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생소할 뿐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은 서구인들이 아주 좋아할만한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들은 이미 근대의 물질문명을 화려하게 구가하고는 이제 싫증을 느끼면서 무소유의 선(禪)의 세계에 빠져 있다. 그것을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이 충분히 충족시켜준 것이다.

거꾸로 한국은 이제 근대 물질문명에 맛을 들여가고 있다. 오히려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의 내용은 별로 새로울 게 없다.

이러한 근대성, 근대 이후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한국이 후진국이라고 지적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혹은 김기덕이 시대를 앞서간 감독이라는 찬사를 보내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논점을 벗어난 것이다.

반복하지만 이 땅의 사람들의 고민을 김기덕은 채워주고 있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서구인들의 고민과 갈증을 채워주고 있다. 분명 김기덕의 영화는 근대성 이후의 서구적 고민을 동양스런 모습으로 모색하고 있다.

이 때문에 서구인들이 더욱 열광한다.

그들은 항상 정신적으로 동양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으니 오죽하겠는가. 하지만 이 땅은 그들과 같지 않다.

흥행이 모든 것을 대변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대중의 고민과 맞닿아 있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이번 수상작인 <빈집>도 흥행은 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예술영화가 흥행하는 것 보았느냐는 문제가 아니다. 국내에서도 성공한 <올드 보이>는 서구인들과 이 땅의 사람들이 가진 고민이 적절하게 버무려져 있기 때문이다.  서구인들의 잣대인 ''근대성'' 개념 이전에 우리 대중들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지만 그러한 고민들을 풀어주는 점을 김기덕의 영화에서는 별로 찾을 수 없다. 이 때문에 국내외면, 해외호평이 반복되어 왔다. 이제 어쩌면 아무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상을 두 개나 받은 감독의 작품이니 억지로라도 많이 볼지는 모르겠다.

''김기덕 논쟁''이 완전히 김기덕의 승리로 끝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서구와 서구인들의 아픈 경험을 비추어 우리가 근대성의 늪에 빠지기 전에 탈근대로 가야 하는 시점이라면 해외 영화상이 모든 것을 합리화 줄 수는 없다.

김기덕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증후군에서 우리 수준이 후진 근대의 틀 안에 있다거나 선진의 서구 영화들이 이미 근대를 벗어나고 있다는 일방향적 발전사관에 빠져 있지도 말아야 한다.

김기덕 감독은 이제 영화 실력을 인정받고 독자적인 세력을 형성했으니 대중들의 고민으로 돌아와야 한다. 대중의 고민에서 출발해 해외를 부지런히 두드리고 있는 임권택과는 반대 방향으로 말이다.

 

* 덤

이렇게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작품인데 아직 감상 전이라 포스터만 봐서는 딱히 상상할 수 있는 있는 스토리가 떠 오르지 않고, 오히려 조금 코믹한 느낌이.... 다만 미술 주제로서의 관점으로 유추해 봤을 때, 큰 줄기는 아들과 어미의 갈등, 그리고 아가페...ㅎ

감독의 인사말에서 얻을 수 있는 건 현재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자신의 시선 안으로 끌어 와, 역시 그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 냈겠지 하고. 

 

많은 사람들이 음악으로, 그림으로, 조각으로 아들을 잃은 마리아의 비통한 심정을 예술로 승화시켜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데 각각의 작품들이 주는 느낌이 거의 비슷한데다 안목 없는 내게는 그다지 큰 감동으로 오지 않았다.  많은 '피에타' 중 내게 확 꽂힌 작품은 바로 케테 콜비츠의 '피에타'이다.

인간(자신)의 비통한 심정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 아들의 죽음 이후 홀로 견뎠을 고통의 시간들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케테 콜비츠의 '피에타'

 

 

독일의 나무 '피에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세부)

 

 

아비뇽의 '피에타'(15c)

 

 

레바논 하리사의 '피에타'

 

 

두보로브니크 교회 문 장식 '피에타'

 

 

로기에르 반 데르 베이덴의 '피에타'

 

 

15c 기도서의 '피에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