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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과 EBS를 통해 본 한국의 교육제도

헬로우 럭키 찬! 2014. 11. 19.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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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블로그에서 퍼 온 글입니다.

DAUM 블로그로 바로 퍼 올 수가 없어 복사 편집했고요.

좋은 내용의 글이라 일회적으로 넘겨버리기엔 아까웠습니다.

첨부이미지

 

 

[교육] 일본식 교육제도 vs 미국식 적성시험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mysig21&logNo=220164306782

안녕하세요. 이원준 강사입니다.

이 글은 예고 드렸던 대로 한국의 후진적이고 비합리적인 국어 교육에 대한 비판글 입니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전에는 일본의 강력한 영향을 받았고, 해방 이후에는 미국의 강력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2009년에 좌측보행이 우측보행으로 바뀐 것도 일본식을 버리고 미국식을 채택한 결과입니다.

한국의 국어 교육도 마찬가지로 두 나라의 영향을 받아 상호 모순적인 두 제도가 병존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실용주의적 적성평가와 일본의 민족주의적 교육제도가 모순적으로 공존하는 것이 한국의 국어교육입니다.

우선, 미국의 실용주의를 살펴보겠습니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추구하는 교육개혁은 국제 경쟁력 강화요약할 수 있습니다. 해외에서 경쟁을 하더라도 지지 않는 인재를 만들겠다는 것이지요. 이를 위해 CCSS라고 하는 평가 기준을 만들어서 단계적으로 학생들을 교육시키겠다는 것이 미국식 교육제도의 핵심입니다. 완전 실용주의적이지요.

 

오바마 교육정책의 핵심 : 모든 학생들이 대학과 직장에 진출했을 때 성공적 삶을 살 수 있도록 세계적 경제 체제에서 경쟁의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교육시키기 위한 공통핵심성취기준(common core standards)의 구축과 이에 근거하는 평가 체제(assessment system)의 구축

 

방식의 장점은 학년 간 비교를 통해 이 학생이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절대평가 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학생들의 학업 성취도를 꾸준히 관리해줄 수 있다는 것은 뒤떨어진 학생에게 다시 부족한 부분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는 의미도 됩니다.

교육학적으로는 '인지적 구성주의'와 연결됩니다.

이 시스템에서는 학업적성평가와 업무적성평가가 종단적으로 통합되어 있고, 학교 교육과 직업 교육이 자연스럽게 통합적으로 연계됩니다.

국어교육과 관련해서는 읽기 교육이 가장 기초가 됩니다. 각 교과목은 읽기의 하위 영역에 위치하게 됩니다. 그래서 미국 수능인 SAT1은 교과목을 시험보지 않고 읽기 능력을 측정합니다.

 

 

이제 서구 대학제도에는 없었던 국문과가 탄생하는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일본에서 국문학의 성립은 민족 이데올로기와 결부되어 있습니다. 도쿄대학에서 영어영문과, 불어불문과, 독어독문과가 설치되던 시기에 한문학과 통합되어 있던 일본문학은 1889'국문학과'로 독립합니다.

 

메이지 일본의 국립대학에 성립된 국문학은 바로 일본인들을 사상적으로 하나의 국민으로 통일시키는 민족주의적 담론의 한 형태였다. (황종연, 문학이라는 역어)

 

 

일본식 교육제도는 인간의 정신을 지성,정서,양심으로 나눈 후에 정서에 문학을 할당합니다. 그리고 또 문학을 각 국가별로 과를 나눕니다. 당연히 일본 문학에도 한 과가 할당되지요. 일본어로 쓰여진 문학을 통해 일본인으로서의 민족적 자아를 만들겠다는 것이 바로 서구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국어국문과'의 탄생이었던 것이지요.

 

사실 일본어는 언어학에서 담당하면 되고 일본문학은 문학에서 담당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런 서구적 학제를 무시하고 국문과, 영문과, 독문과, 불문과라는 특수한 학제를 창안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학제는 그대로 우리나라에도 도입됩니다.

문제는 해방이 되고 나서도 국문학의 본질에 대한 이론적 체계화 없이 그동안 일제 시대에 일본어로 된 문학작품을 가르쳤던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한국어로 된 문학작품을 가르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게다가 공통교육교과목으로 국영수가 강조되면서 국문과와 국어교육학과는 상당한 특권을 얻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국어 교육에 대해 고민할 소중한 기회를 한번 놓쳤습니다.

1952~1982년까지 국문학과 국어교육은 학문적 발전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이 시기를 연구자들은 좋은 말로 '경험과 행동의 시기'라고 부릅니다. 다시 말해 학문적 고민 없이 그냥 자기 경험을 기준으로 삼아 가르치던 대로 가르치던 시기입니다.

그럼 1983년부터는 학문적으로 발전했을까요?

국어교육과의 박사과정이 한국에서 최초로 생긴 것이 1986년입니다.

뭔가 막 이루어질 것 같지요?

안타깝게도 이 때가 되면 우리나라 대학에서 미국의 실용주의에 따라 변신을 꾀하기 시작합니다.

당연히 국문과 내부에서도 치열한 권력다툼이 일어났지요.

그래서 연구자들은 이 시기를 좋은 말로 '침묵과 모색의 시기'라고 부릅니다만 까놓고 말해서 민족주의가 사라지고 나니 이제 국문학이 뭔지조차 애매해진 시대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1993년 수능과 논술이 시작되면서 김영정 교수 등 철학과 교수들의 주도로 시험의 기틀이 마련됩니다. 그리고 이 두 시험이 미국의 시험을 모방했기 때문에 국문과는 큰 도전을 받게 됩니다.

 

아까 미국식 실용주의 교육에서는 공통 핵심 성취 기준(CCSS)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렸지요?

학교가 무작정 학생들을 고3 끝까지 통제하고 붙잡아두는 것이 아니라 일정 정도 이상 성취한 학생들은 빨리 월반시키거나 대학에서 배울 전공을 미리 준비할 수 있게 하는 데에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CCSS입니다.

우리나라 국문과도 실용주의 적성시험이 도입되자 업무에 필요한 능력을 먼저 파악한 후에 교육과정에서 어떤 능력을 어떻게 가르칠 것인지 기준을 마련해서 빠진 부분이 없도록 보완해야 할 순간이 온 것입니다. 그리고 가장 바람직했을 방향은 실용논리학을 접목시키는 것이었어요.

국문과식 수업과 수능, 논술이 서로 연계가 안 되다보니 해결책으로 등장한 것은 뭘까요?

 

바로 꼼수 중의 꼼수인 EBS연계이지요.

그 결과, 국어 수업은 수능 국어 영역과 논술과의 연계성이 매우 희박하고 낭비적인 교육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때 국문과는 인문학의 위기를 타파할 수 있는 결정적인 순간을 또 한번 놓치고 맙니다. 그 덕분에 대학 교양 국어는 가장 진부한 수업이라는 악명을 계속 유지하게 되지요.

 

아직까지 교육부에서 논술교과에 대한 공식적인 지침이 주어진 적은 없었다.

2006년부터 각시도별 교육청에서 시행하고 있는 논술교사연수과정을 보더라도 거기에서 일관된 방법을 찾기는 어렵다. 마치 형체를 알 수 없는 괴물과 벌이는 싸움처럼 논리적 사고와 글쓰기라는 이름 아래 온갖 방법이 전수되고 있을 뿐이다.(김진하, 프랑스와 한국의 논술 개념 비교)

 

EBS 연계교재는 사실상 국정 교과서의 기능을 합니다.

한해 수익이 500억이 넘는다는군요.

그 결과로 학습지 출판으로 연명하던 출판 시장이 고사상태가 되면서 인문학 서적은 단행본을 내기가 극히 어려워지게 되었습니다.

국문과의 나태함이 부메랑처럼 인문대 전체로 돌아온 것이지요.

사실 중요한 것은 내용상의 연계가 아니라 사고 방식(형식)의 연계인데 주입식 교육으로 사고력 시험을 대비하려니 교육내용을 문제로 환원해서 시늉만 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교육내용에 기준이 없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점이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EBS 연계 교재 A형과 B형이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수준별 차이가 아니라 그냥 무질서입니다.

또한 시험 자체가 기준이 없다보니 학교에서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도 분명하지 않습니다. 시험 위주로 교육이 진행되면 배운 내용이 반복되고 낭비적이 될 수밖에 없으며 시험의 기반이 되는 이론을 교사들이 모르다보니 정작 시험의 목적인 진단도 안 됩니다. 학생이 어떤 부분이 부족한지 제대로 진단해내지도 못하고 시험 순위 자체가 목적이 될 뿐입니다. 그러니 학생 개개인의 특성에 맞춘 '맞춤형 교육'은 완전 먼 나라의 이야기가 될 뿐이지요.

그러다보니 수능 국어 시험을 잘 본 학생도 "찍었다"고 하고 못 본 학생도 "찍었다"고 합니다. 시험을 설명할 개념과 지식을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밖에 표현을 못하는 것이지요. 무의미하게 문제집만 반복해서 풀다보니 학습흥미도도 떨어지고, 효율도 저하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민족주의적 색채도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습니다.

해방 이후 지금까지 계속 한국의 학생들은 관동별곡을 외우고 선생님들의 해석까지 달달 외우고 있지만 그것은 '민족주의적'이지 '실용주의적'이지 않습니다.

관동별곡을 외울 수 있다고 해서 대학이나 사회에서 정보처리를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만일 우리나라도 일본식 교육제도에서 벗어나 제대로 읽기 교육의 기준을 수립한다면 어떤 변화가 가능한지 느낌이 올 수 있도록 구체적인 변화를 예로 들어드리겠습니다.

(1) 수능이 여러 번 시행될 수 있고, 수능 점수 유효 기간이 2년이 될 수 있습니다. (토익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2) 매주 평가(weekly test)를 통해 학생이 대학 및 사회에서 성공할 수 있는 능력이 향상되었는지 알 수 있습니다.

(3) 서술형 등 다양한 평가 방식을 사용할 수 있어서 형식에 지나치게 구애받지 않아도 됩니다.

(4) 논술도 대학별로 형식이 달라지지 않고, 통일된 양식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됩니다. (2016년 미국 SAT에 논술 도입됨)

(5) 유치원 교육부터 대학교육까지 연계성이 확보됨으로써 낭비적이지 않은 교육 체제가 성립됩니다.

(6) 학년별 수업이 아니라 능력별, 전공별 수업이 가능합니다.

(7) EBS 연계 교재 따위는 없어져도 됩니다.

(8) 전공자도 낯선 고전문학작품 따위는 공부할 필요가 없어집니다.(SAT1에 문학 없음)

 

하지만 교육과정평가원의 수능 국어 팀장인 남민우에 따르면 아직도 우리나라는 갈 길이 멉니다.

 

국내의 경우 성취수준 설정 작업은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를 제외하고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상대평가 방식의 수준 설정(수능)이 지배적일 뿐, 절대 평가적 관점에서 교육과정과 연계된 성취수준 체계는 시도된 적이 없다. 이런 까닭에 선진화된 교육평가 체제의 구축도 장애받고 있는 형편이다.(남민우, 국어과 평가 체제의 재구성과 국어교육의 미래)

 

교육의 낭비로 인해 한국인들의 고도문해능력은 OECD 최하위권입니다.

학력이 높을수록 세계 선진국과의 격차는 더 커졌습니다

 

 

*****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국어교육의 미래가 전개될까요?

업무적성검사가 곧 학업적성검사인 것이 실용주의 교육이 추구하는 수직적 연계입니다.

회사가 요구하는 인재에 맞게 대학이 변할 것이고, 대학의 요구에 맞게 고등학교 국어 교육도 변할 것입니다. 그 때에는 하나의 교과로서 문학이나 문법이라기보다는 기초 능력으로서의 읽기 교육에 가깝게 변하겠지요.

이건 비교교육학적으로 보더라도 전세계적으로 일어나는 불가항력적인 흐름입니다.

저는 한국이 워낙 경제적 압박이 크고 다이나믹한 나라이기 때문에 교육의 국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이러한 변화가 곧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