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깨닫지만 걸으면 보이는 게 정말 많다.
그저께 좌천동 가구거리로 향하던 길에 발견한 범일동의 이중섭 거리만 해도...
조성년도는 2014년이다.
그동안 출. 퇴근 길목이었음에도 까맣게 모르고 있다가 퇴직 후 걷기 시작하면서 무려 7년여 만에 우연히 발견한 표지판.
오늘, 발광하는 7월 중순의 용광로를 머리에 이고 그 거리로 들어섰다.
기상청 예보대로라면 7월 들어 절반의 날은 비가 왔어야 했다.
착실히 백팩에 우산을 넣었다 뺐다를 반복할 동안 비는커녕 낯빛 좋은 해만 들락날락했던 날들.
‘부산·울산·경남지역의 날씨는 오늘 천둥.번개 동반한 강한 소나기 주의,’
이게 출발 3시간 전의 예보였지만 걷는 내내 햇볕은 모자를 뚫고 내 머리까지 홀라당 벗겨 먹을 기세로 덤벼들더구만.
‘사후에도 지속적으로 대중의 관심을 가장 많이 받고 있는 한국의 예술가는 아마도 이분이 유일하지 않을까... 해서 자칫 한 마디만 잘 못 거들어도 화사첨족이 되어버릴 것 같다.’는 나의 생각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읽다가 끅끅거리며 울었던 김춘수님의 시.
당시 이중섭의 절절한 그리움과 비통한 기다림이 고스란히 전해져 왔다.
내가 만난 이중섭 / 김춘수
광복동에서 만난 이중섭(李仲燮)은
머리에 바다를 이고 있었다.
동경(東京)에서 아내가 온다고
바다보다도 진한 빛깔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눈을 씻고 보아도
길 위에
발자욱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 뒤에 나는 또
남포동 어느 찻집에서
이중섭(李仲燮)을 보았다.
바다가 잘 보이는 창가에 앉아
진한 어둠이 깔린 바다를
그는 한 뼘 한 뼘 지우고 있었다.
동경(東京)에서 아내는 오지 않는다고.
희망 100계단.
희망 100계단을 올라 서면,
왼쪽으로 이중섭 전망대와 굿즈매장, 공방 등이 위치해 있다.
전망대 아래의 공방.
그의 작품과 흔적을 따라가다 보면 100계단은 금방이다.
그러나 뜨거운 한여름 대낮에, 그것도 100개의 가파른 계단을 타고 오르며 집중하는 것은 역시 힘이 드는 일.
선선한 가을 어느 날, 오롯이 이중섭의 궤적만을 따라가며 그의 삶을 한 번 더 되새겨 보고 싶다.
아직 볼 일이 남았다.
이중섭 거리 건너편, 영화 ‘친구’의 배경이 되었던 육교를 넘어 애정하는 자유시장의 꽃시장으로....
그리고 서면 다이소에서 줄자 구입 후 지하도로 이동, 부전시장까지 갈 거다.
자유시장 돌다 군침 도는 가구를 발견했다.
원탁....110만원, 지금 살 거면 80만원에 넘겨 줄 수 있단다.
저 돈 없어요오~~~^^;;
자유시장 3층 꽃시장에서 데리고 온 라임스파트필름과 형광스킨답서스.
흠머, 이뻐 죽겠다. ^^
우째 이리도 색이 고울꼬.
무쟈게 좋아하지만 너무 비싸서 선뜻 손이 가지 않던 체리.
최근 부전시장에서 자주 보인다.
물론 헐값이지.^^
그치만 요즘은 어떻게 재배하는지 체리 고유의 향은 거의 없다.
그 옛날 내가 환장하던 그 향.......
챙겨 봐야 할 일은 완벽하게 마스터한 하루.
근데 왤케 마음이 묵직할까나.
아직도 마음은 이중섭 거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이 지독한 이입감.
하필 이 저물녘
긴 그림자를 끌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한 그루 나무처럼
우두커니 서서
사람을 그리워하다.
오인태 ‘사람을 그리워 하는 일’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