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씨의 새 책이 나왔습니다.
‘내 심장을 쏴라’, ‘7년의 밤’, ‘28’에 이어 3년의 공백을 메꾸어 줄 ‘종의 기원’입니다.
예약 판매를 꾸욱 눌러 일찌감치 받아 볼 수 있었죠.
정보 전무의 상태에서 첫 장을 열기 위해 관련 기사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았어요.
제목만으로 주제나 소재를 유추해 가상의 시놉시스를 나열해 보는 것도 한 맛입니다.
그리고 전작의 캐릭터들에 대한 근원적 모색에 포커스를 두고 상상 스토리를 엮어보며 가벼운 마음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아!!!
어쨌거나...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종’이 출현한 것은 맞습니다.
전작 캐릭터들의 집합체로 보이는 괴물, 사이코패스 최고 레벨인 ‘프레데터’ 유진이 발작적으로 자신을 변명하며 제 머리 속을 원상복구 불가 상태로 헤집어 놓았던....
사진출처http://blog.naver.com/silver1ne/220504365552
정유정씨의 소설을 읽다보면 과도한 몰입의 부작용인지 세상 모든 인간들이 정신 앓이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왜 이런 걸 계속 보여 주고 싶어 하나.....
작가 曰왈,
밝은 들판에 나와 있는 이야기는 저한텐 매력 없어요. 저는 어두운 숲을 좋아해요. 시기, 질투, 성, 육체적인 것, 증오, 분노… 이런 악이 인간 마음에 잠재되어 있다가 어떻게 점화되어 타인의 삶을 망가뜨리는가. 그게 제 관심사지요.”
-살인에 죄의식이 없는 사이코패스라는 존재를 이해하는 게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줄까요? 왜 우리가 1인칭 시점으로 그를 바라보아야 합니까? 신기한 건 주인공 한유진이 “내 인생은 두 여자가 깔고 앉은 방석이었다"라고 독백하며, 엄마와 이모 등을 존속 살인할 때 그 과정에 기이하게 동참하게 되더라는 거죠. 물론 동조는 아니었습니다만, 자유 의지가 억압될 때 저런 식으로 왜곡된 폭발을 할 수도 있겠다는 식의... 어쨌든 살인범이며 수사관이고 동시에 변호인이기도 한 1인칭 기술자는 다소 위험해 보입니다.”
저와 생각이 같았던 김지수 기자의 날카로운 질문에
“소설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해요. 작가나 소설이 하는 일은 세상의 불길한 징후를 읽어서 보여주고 주위를 환기해주는 것뿐. “이것은 나쁜 짓이니 하지 마.”라고 하면 그건 문학이 아니라 선동이에요. 저는 독자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질문을 던지는 거예요.” 라는 대답입니다.
‘종의 기원’이 출간되던 그 즈음, 예를 보여주듯 강남의 한 술집 화장실에서 ‘묻지마 살인’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곧 바로 검거된 범인은 주인공 유진과 마찬가지로 조현병 치료 중 약을 중단한 상태에서 살인을 저질렀다더군요.
2010년 여중생 성폭행 살해 사건의 범인 김길태를 예로 들자면, 1차와 3차에서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 외에는 정신질환이 없다는 판정이 나왔지만 2차 감정에서는 ‘측두엽 뇌전증(간질)’진단을 받았다는데요, 측두엽 뇌전증은 잠시 동안 기억을 잃고 반복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대표적인 증상이라고 합니다.
악은 어떻게 존재하고 점화되는가.....라면서....
서양철학자들의 관점과 크게 다르지 않은 맹자의 성선설, 순자의 성악설, 고자의 성무성선절 이후....1801년 순자의 주장을 뒷받침 하는 프랑스 정신과의사 필립 피넬의 사이코패스 이론이 대두됩니다. 표면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 어느 날 희대의 살인마로 세상에 드러나는, 지금까지의 이론으로 설명되어지지 않는 변종이 등장한 거죠. 생물학적 연구 결과로 ‘악인’은 타고 난다는 겁니다.
유진과 마찬가지로....
비밀의 문을 먼저 열어 본 게 탈이었습니다.
마지막 몇 페이지를.....
변명을 하자면 이런 유혹에 빠질 수밖에 없는, 도저히 참아지지 않는 전개였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상황묘사가 탁월한 예의 디테일함에 더 나아가기 힘들어 일단 도중하차하고 말았습니다.
잠시의 호흡이 필요했어요.(완독까지 시간이 좀 흘렀습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등장한 ‘악’에 눌려 질식할 것만 같았거든요.
이런 식의 진화라면 작가의 다음 작품에 지금처럼 와락 덤벼들지는 못 할 것 같습니다만.....
"악이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유일한 조건은 선한 사람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하여,
스스로 악에 빙의하면서까지, 숨겨진 인간의 본성을 세포까지 찢어 보여준 작가의 고통스런 도전에 깊은 박수를 보낼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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