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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파가니니 /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소나타 작품 2

헬로우 럭키 찬! 2015. 7. 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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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wing by Pierre-Auguste Renoir

 

Niccolo Paganini (1782~1840)
Sonata for violin & guitar, op. 2 [MS26]

파가니니 /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소나타, 작품 2

 

(제1번 ~ 제6번)

전곡(6) 이어듣기 (23:26)

 

György Terebesi (죠르즈 테레베시), violin
Sonja Prunnbauer (소냐 프룬바우어), guitar

죠르즈 테레바시-소냐 프룬 바우어

 

파가니니는 바이얼린(기타 반주가 없는)곡보다 기타곡을 많이 작곡했다.
기타 독주를 위한 소품들이 104곡에 달하며 기타가 참여하는 트리오를 4곡, 바이얼린, 비올라, 기타, 첼로를 위한 4중주곡을 15곡 썼다. 파가니니의 생전에 전부 다섯 번의 작품 출판을 하였는데 그중 작품 하나만 기타를 포함하지 않은 유일한 것이다. 작품 2와 3은 각각 바이얼린과 기타를 위한 소나타를 6개씩 담고 있으며 모두 두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작품 4와 5는 바이얼린, 비올라, 첼로, 기타를 위한 4중주곡이다.
오늘 게시하는 작품 2와 3은 지금까지 자필 원고가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1821년 출판된 악보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악보이다.

 

"Sonata Per Novene" No 1 in A major (04:27)
(1. Minuetto, Adagio - 2. Polenese, Quasi Allegro)

1번 소나타는 두개의 무곡(미뉴엣과 폴로네이즈)으로 이루어져있다.
미뉴엣(아다지오)에서는 느린 템포를 유지하면서 32, 64분 음표로 이루어진 페시지로 아름답게 장식한다.
포로로네이즈(알레그로) 부분에서는 간단한 형태를 취하고 있으면서 좀 더 무곡적인 분위기로 이루어져있다.

 

 
No 2 in C major (02 : 32) (1. Larghetto espressivo - 2. Allegro Spiritoso)


2번 소나타는 작지만 매우 풍부한 표현의 악장이다.
라르게토 6/8 박자의 메로디는 기교적인 두개의 악구로 시작된다.

 

 
No 3 in D minor  (05 : 03)
(1. Adagio maestoso - 2. Andantino galantemente)

 

3번 소나타는 아다지오 마에스토조의 악장으로 바이얼린 협주곡의 악장같은 느낌을 주며 이런 기교적인

연주회용 소품들은 당시 유행하던 형식을 취하고 있다.

 

 
No 4 in A major (02:39)
(1. La Sinagoga, Andante calando - 2. Andantino con brio)

4번 소나타는 조용한 안단테로 시작하며 더블스토핑 주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파가니니는 이곡에 '유대교회(La Sinagoga)'라는 제목을 붙였다.

 

No 5 in D major (03:34) (1.Andante Moderato - 2.Allegro spiritoso)

 

5번 소나타의 중심이 되는 악장은 매우 화려한 패시지로 이루어져 있고 안단테 모데라토에서는 두개의 파트가 반복되다가 6/8 박자 론도 형식의 알레그로로 끝맺는다.

 

No 6 in A minor (05:10)
(1.Largo con precisione - 2.Tempo di Walzer)

6번 소나타는 기교적인 연주회용 소품의 전형을 따르고 있는데 첫악장 라르고는 두개의 부분으로 나뉜다.
왈츠풍의 종결악장은 매우 표현이 풍부한 A 장조의 간주부분을 지나 A 단조로 9마디가 연주된 후 끝맺는다.

 

 

Niccolo Paganini (1782~1840)

1782. 10. 27 이탈리아 제노바~ 1840. 5. 27 프랑스 니스.

19세기 이탈리아의 뛰어난 바이올린 연주자, 작곡가.

 

인기를 한몸에 받는 우상이었던 그는 명인들이 지니는 낭만적이고 신비한 분위기를 풍겼으며 바이올린 연주 기교에 일대 변혁을 가져왔다. 처음 얼마 동안은 아버지로부터 바이올린을 배웠고 그뒤로 지방의 바이올린 연주자 G. 세르베토에게, 그다음에는 유명한 자코모 코스타에게 지도를 받았다. 1793년에 데뷔했고 그후 파르마에서 알레산드로 롤라와 가스파레 기레티에게 배웠다. 1797년 아버지와 동행하여 롬바르디아 순회연주를 했는데 연주회가 거듭될수록 그의 명성이 높아졌다. 곧 아버지로부터 독립했으나 도박과 연애에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한 번은 빚 때문에 바이올린을 저당잡히기까지 했고 그 소식을 듣고 그에게 구아르네리 바이올린을 빌려준 프랑스의 상인 덕택에 겨우 연주회를 가질 수 있었는데 그 상인은 그의 연주를 듣고 그 바이올린을 파가니니에게 주었다.

1801~07년 그는 새로운 특징이 돋보이는 기교를 선보인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24곡의 카프리치오,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6곡의 소나타 작품 2, 작품 3을 썼다. 1805년에는 다시 이탈리아로 와서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나폴레옹의 누이 엘리자 보나파르트 바치오키의 추천을 받아 피옴비노의 음악감독으로 선출되었다. 후일 이탈리아 여러 지방을 돌며 자신이 작곡한 곡들만으로 연주회를 개최했고, 1815년에는 무용가 안토니아 비안키와 오랜 친분을 맺게 되었다. 1828년 빈에서 대성공을 거두었으며 1831년 파리와 런던 공연도 대성공이었다. 1832년에 가진 영국과 스코틀랜드 순회연주로 부자가 되었다. 1833년 파리에 정착해 베를리오즈에게 교향곡 〈이탈리아의 아롤드 Harold en Italie〉를 쓰도록 의뢰했으나 그는 이 곡의 비올라 독주 부분이 그리 훌륭하지 못하다고 생각하여 연주하지 않았다. 그가 투자했던 도박장 카시노 파가니니가 실패하자 1839년 마르세유로, 나중에는 니스로 옮겨갔다.

파가니니의 낭만적인 성격과 모험심은 그가 살던 시대에 메피스토펠레스 같은 인물에 얽힌 전설을 만들어 낼 정도였다. 그가 악마와 결탁하고 있다거나 살인죄로 감옥에 갔다 나왔다는 등 소문이 무성했으므로 그가 죽은 뒤에도 정식으로 묘소에 묻히기까지 5년간이나 세월이 흘렀다. 그는 오랫동안 욕심쟁이 수전노로 여겨져왔으나, 그에게 의존적이며 그의 너그러움을 이용해 끊임없이 도움을 요구하던 추종자들로부터 벗어나고자 애썼던 그의 열망을 헤아려본다면 그를 좀더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던 작곡가 베를리오즈에게 그가 2만 프랑을 선사했던 것은 별 특징도 없는 관대함으로 볼 수도 있지만, 아마도 파가니니는 '베토벤의 후계자' 베를리오즈의 가치있는 재능을 인식하고 그 작곡가를 도와주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주로 카프리치오, 바이올린 협주곡, 일련의 변주곡 등에 바탕을 둔 그의 바이올린 기법은 운지법과 심지어 조율에서조차 새로운 피치카토 효과와 화성을 폭넓게 사용했으며 눈부실 정도의 즉흥 연주를 보여주었다. 또한 1~2개의 바이올린 현을 끊어버리고 나머지 현 위에서 작품을 계속 연주하는 것 같은 재주를 부렸던 훌륭한 연예인이기도 했다. 그가 혁신적으로 바꾸어놓은 바이올린 기법은 후대 거장들, 특히 파블로 사라사테와 외젠 이자이 등이 모방했다. 그밖의 작품들로는 제1곡인 D장조 협주곡이 특히 인기를 모았던 바이올린 협주곡 6곡, 바이올린과 기타를 위한 소나타 12곡, 바이올린·비올라·첼로·기타를 위한 4중주 6곡이 있다. 그가 일으킨 기법상의 영향은 피아노 음악뿐만 아니라 관현악에도 미쳤고 특히 그가 리스트에게 끼친 영향은 막대했다. 카프리치오의 주제들은 리스트·슈만·브람스·라흐마니노프의 작품에도 영감을 주었다.

 

György Terebesi (죠르즈 테레베시) 

 

죠르즈 테레베시(Gyorgy Terebesi)는 헝가리 바이얼린 학교에서 Ede Zathureczky를 사사했고 뛰어난 학생이었으며, 이후 20년 동안 그의 열정과 수업은 'Franz Liszt Academy', 'Ede Zathureczky (에데 자투레츠키)', 'Léo Weiner (레오 바이너)', 'Zoltán Kodály (졸탄 코다이, 1882~1967)', '파리 음악원의 Line Talluel' 을 거치며 충분히 쌓고... 'Frankfurt Radio Orchestra'의 콘써트마스터를 거치며 활발히 이어져 나갔다.

솔리스트로서 초청되어 유명한 지휘자들 'Eliahu Imbal','Milan Horvath', 'Louis Frémeau' 과 같이 했고 Badura-Skoda(바두라스코 , Henryk Szeryng(헨릭쉐링), Maurice André(모리스 안드레) , Jean-Pierre Rampal(장-피에르 랑팔)등과 같이 협연하며 갈채를 받았다.

Prunnbauer(소냐 프룬 바우어)와 함께한 레코딩,"파가니니 바이얼린과 기타를 위한 작품 모음집 (works for violin and guitar of Paganini'은 최고의 레코딩으로 비평가들에게 인정받고 있다.

그는 1981년 캐나다 동부의 1981년 Quebec(퀘벡) 시의 'Faculty of Music of Laval University' 교수로 재직하며 솔리스트로도 활동하고 있고...
그의 실내악에 대한 지속적인 열정은 1982년 'Laval Quartet' 을 결성한다.
이 앙상블은 캐나다에서 많은 음반을 발표해 인정받고 있고 훌륭한 작품들을 재창조해내고 있다.

 

Sonja Prunnbauer (소냐 프룬 바우어)


 

1948년 독일 함부르크 출생 여류 기타리스트...
13세부터 기타를 배우기 시작하였고 Eike Funck에게 처음으로 전문적인 수업을 받기 시작하였다. Eike Funck는 빈의 유명한 Karl Scheit를 4년동안 사사했던 사람이다. 소냐 프룬 바우어, 그녀는 1972년에 표창과 함께 정식으로 독주자 인증을 받았는데 1974년에는 함부르크 고등 음악원에도 초빙되었다.

독일 연방 젊은 연주가 콩쿠르에서 입상하기도 했던 그녀는 유럽, 미국, 아시아를 여행하며 독주자, 실내악 연주자, 그리고 오케스트라 협연자로서 활동하고 있으며 독일 국내외 기타 세미나에도 정기적으로 참가하고 있다.

출처 : 박연서원
글쓴이 : 박연서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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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아름다운 곡입니다.

들으면서 눈물 주룩주룩 흐를지도 몰라요.^^

파가니니 할아버지 thank you so much!!!!